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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있었음== 사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함 써봄. 박정희가 유신헌법으로 종신 대통령이 되자 입장 차이인지 얼마 안 가서 총리직을 사퇴하고 관료 출신인 최규하한테 넘겼는데 박정희가 총에 맞고 죽자 최규하가 대통령이 되어버린다. 결국 역사적으로 박정희-최규하-전두환 순서를 탔는데 만약 김종필이 총리직 안 넘기고 계속 있었다면 이 양반이 대통령 됐을 수도 있었다. 그럼 박정희-김종필-? 인데 만약 전두환 입장에서는 지지 세력이 없던 최규하보다 오랜 경력으로 주위에 지지 세력이 있던 김종필을 끌어내리고 자기가 대통령 하려고 했으면 아마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의 군정치 블러드 콥스 파티가 일어났을 것이다. ㄴ 보통 사람도 대통령 되는데 JP가 못될 건 없었겠지 ㄴ 먼 개소리야 김종필은 이미 '''1969년 권오병 해임건의안 가결 사건'''으로 반인반신한테 찍혀있었다. 윾신 개헌할 때 총리직 사퇴한 건 이미 그 이전부터 찍혔기 때문이지. 권오병 사건은 박정희가 3선 개헌을 하려고 준비할 때 야당에서 [[필리버스터]] 대용으로 권오병 문교부(현 교육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냈는데, 김종필이 뭐에 빡쳤는지는 몰라도(지금까지도 왜 이걸 했는지 김종필이 말 안 하고 있다) 반인반신한테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 때 김종필이 [[민주공화당]] 내 자기 계파 42명한테 권오병 해임건의안을 찬성하라고 하면서 정말로 권오병 해임건의안이 가결, 반인반신은 개빡쳐서 거부권을 행사하기로 했지만 권오병 본인이 장관직을 사직하면서, '''정말로 장관직에서 짤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1969년 4월 8일에 해임건의안이 가결됐는데, 이 다음날 '''김종필은 [[중앙정보부]]로 끌려가서 [[코렁탕]]을 한달동안 마시고 재무부 장관이 총리직을 대행하게 된다'''. 이거 가결 선포됐을 때 야당 지도부였던 김영삼과 김대중 표정이 '''지네들도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으니까(당연히 부결될 거라 생각했겠지) 김종필의 반란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 가지? ㄴ 솔까 이때 박정희가 김종필을 완전히 숙청하고 김종필은 야당 인사로 변한 상태가 되고 만 것. 3년 동안 총리직을 유지한 건 반인반신이 유신 체제 이전에는 김종필을 데리고 있긴 해야 해서 그런 거임. 이때 중정 갔다 오고 김종필은 총리업무에서 사실상 손을 떼고 반인반신한테 사표를 냈는데, 매번 반인반신이 사표를 거부했음. 김종필계는 전부 민주공화당에서 출당시킨 뒤였지만 김종필만 명목상으로 남긴 거고. 당연히 윾신체제 들어서니까 김종필 이용가치는 제로가 되고, 완전히 숙청당한 것. ㄴ 박정희때 말고 김영삼 김대중 다음에 대통령 됬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긴함. 아 물론 김영삼이 김종필을 밀어줌으로써 김영삼과 김종필이 끝까지 간다는 전제하에 ㄴㄴ 무리다. 대선때 상황을 보면 노무현과 이회창은 홍준표와 함께 법조계 3톱이다. 3순위였던게 월드컵 유치성공한 정몽준이고. 문민정부 들어서면서 군사정권 병신짓 튀어나오는 중에다 그거 주도한새끼를 굳이 찍어줄 이유가 없다. 하다못해 영남권이기라도 하면 가능성이 좀 있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노무현+정몽준이라는 혼종 탄생. 이렇게 되면 정몽준이 지지하는 노무현 상태가 되어 어떤 후보가 나와도 이렇게 업그레이드된 노무현을 낙선시킬 방법이 없었던 거다. ㄴㄴㄴ 전두환다음에 노태우가 대통령된 사례가 있는데 안될게 뭐있냐? ㄴㄴㄴㄴ 불가능하다. 김영삼이 생각하는 박정희와 전두환이 어떤 사람이었는데 박정희의 친인척을 진심으로 밀어줄 수 있을까? 김영삼이 노태우를 실제로 배신하기도 했는데 김종필과 끝까지 가는게 될까? 절대 안된다고 본다. 3당 합당에서 김영삼이 낄 때 이미 김종필의 대통령의 꿈은 깨졌다. 김영삼이 유신의 '유'자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인데 김종필과의 동맹은 언젠가는 반드시 깨지게 되어 있었다. 사실 김종필 대통령 가능성은 총리 사퇴하면서부터 날라갔고 13대 대선에서 JP가 몇표 받았는지 세어보면 대충 답 나온다. 노태우, YS, DJ가 각각 36%, 28%, 27%정도 득표했는데 김종필은 꼴랑 8% 득표했다. 사실상 압도적 꼴지다. 결국 JP본인도 선거로는 대통령 못할걸 알고 있었는지 DJ한테 붙어서 국민내각제 하자고 제안했다, 물론 씹혔지만. 그리고 민주투사 이미지가 있는 [[양김]]과는 달리 JP는 박정희 따까리 이미지가 강한데다, [[충청도]]출신 [[보수]]의원은 이미 [[이회창]]이 있기에 굳이 종필이를 찍을 필요는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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