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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략 == 삼략(三略)은 진시황(秦始皇) 말기에 황석공(黃石公)이 태공망 여상의 병법을 한나라의 장량(張良)에게 전수해 준 책으로 여겨지고 있다. 삼략 자체는 전술이나 계책을 의미하고 다른 의미로는 상략, 중략, 하략으로 나뉜 책의 구성을 뜻하기도 한다. 삼략의 저자는 책이 씌인 시대순으로 "수서 경적지, 당서(唐書) 예문지(藝文志)나 송사(宋史) 예문지(藝文志) 등에 황석공 3권, 하비신인(下邳神人)지음"이라고 써있다. 무슨 뜻이냐면 삼략은 황석공이 하비성 흙다리 위에서 장량에게 준 책이라는 뜻이다. 당나라 때의 이위공문대에서 이정은 "장량이 배운 것은 육도와 삼략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당연히 근거가 있다. 그 근거는 모두가 아는 사마천의 사기이다. {{인용문|뒤에 탁월한 전략가로 천하에 이름을 떨친 장량은 자가 자방(子房)이며 원래 진시황에게 멸망당한 한(韓)나라 재상의 후손이었다. 그가 아직 젊을 시절의 일이다. 그는 전부터 시황제를 암살하여 부모와 조국의 원한을 풀려고 기회를 엿보며 돈을 탈탈 털어서 어쌔신을 고용했다. 그리하여 기원전 218년 진시황이 동쪽을 순회할 때 박랑사(博浪沙)에서 철퇴로 암살을 기도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자 현상수배가 내려진 장량은 하비성으로 도주하여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한가로이 산책을 하던 장량은 변두리의 흙다리 위에서 허름한 틀딱충을 만났다. 그런데 그 노인은 가스통 꼰대인지 자기가 신고 있던 신발을 다리 밑으로 던지고 줏어오라고 똥개훈련을 시켰다. 장량은 당연히 짜증났겠지만 줏어다 줬다. 그러자 이번엔 신겨달라는 것이었다. 살인사건이 일어날 뻔했지만 노인은 원하는 대로 신발을 신었다. 그리고는 그냥 가버렸다. 잠시 후 그가 돌아와서 장량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가르침을 받을 만 한 놈이네. 닷새 뒤 아침에 여기로 나와라." 닷새 뒤 아침. 장량은 그 다리로 나갔는데 노인은 이미 있었다. 그러고선 넌 날 기다리게 했으니 실격이다 ㅉ 가라. 하고 그냥 갔다. 다시 닷새 뒤에 닭이 울자마자 나갔는데 또 있었다. 아니 노친네가 새벽잠 없는걸 어쩌라고? 어쨌든 장량은 한밤중에 다리로 나가 캠핑을 했고, 그 덕분에 노인보다 일찍 나와 있을 수 있었다. 다가온 노인은 책을 한 권 주면서 말했다. "이 책을 잘 읽으면 너는 제왕의 스승이 될 것이다. 또한 10년 뒤엔 새 왕조가 시작될 것이며 13년 뒤에 제북(濟北)의 곡성산(穀城山) 기슭의 누런 돌을 볼 것이다. 그게 나다." 하고는 그냥 갔다. 날이 밝은 후 책을 펴 보았는데 그것은 태공병법이었다. 장량은 언제나 그 책을 가지고 다니며 공부했다고 한다. 사기(史記) 유후세가(留侯世家)}} 삼략의 저자도 강태공이 되긴...하지만... 찜찜하기 그지없다. 실제로 삼략을 읽어보면 육도와 문체나 어감이 확실히 다르다. 옛날하고야 다를 수도 있지만, 문답으로 이루어진 육도에 반해 삼략은 군참이 어떻고... 하면서 그걸 해석하는 식이다. 물론 군참이 뭔지는 모른다. 기록이 없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보아 황석공의 주작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생각해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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