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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 {{재앙}} ===화재=== 화재는 에도의 불꽃놀이로 불렸다. 특히 일본의 건축물은 목조건축이 주를 이뤘고, 일본 대도시들의 인구밀집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제곱킬로미터당 인구가 2만에 이르거나 혹은 넘었기 때문에 화재는 종종 대규모 참사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1657년에 일어난 메이레키 화재는 에도 시가지의 70%를 날려 버렸고 10만명에 달하는 인명 피해를 냈다. 막대한 타격을 입은 막부 당국은 시가지를 재건 및 재편하는 한편, 상설소방대를 창설하였고 운하망을 강화하여 이에 대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대책을 강구해서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이후의 대화재들은 메이레키 당시의 화재보다는 피해 수준이 훨씬 떨어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기와 같은 근본적인 한계 때문에 전근대 일본 도시사회에서 화재는 고질적인 재앙 중 하나로 남았다. ===기근=== 18세기 기상이변의 여파로 일어난 텐메이 대기근(天明の大飢饉)은 에도 시대 최악의 재앙으로 꼽히며 에도시대 4대 기근(혹은 3대 기근) 중에서도 그 피해 수준이 독보적이었는데, 이는 토호쿠 지방의 피해가 가장 극심한 피해를 입혔다. 텐메이 대기근으로 인해 일본의 호적상 인구가 100만명 증발했다. 호적상의 인구는 인구의 사망 이외에도 유랑으로도 줄어들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텐메이 대기근으로 인해 20~50만명 정도의 인명피해가 난 것으로 추산하며 이는 당시 일본 인구의 1~2%에 달하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신전개발이 한계점에 달한 이후에 일부 번이나 농민들에 의해 무리하게 진행된 추가 경지개척으로 인한 기존 농지들의 생산성 저하에 그 원인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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