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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신 정권의 몰락 === {{쌤통}} 한편 [[1973년]] 중동에서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이 터져 석유 수출이 중단되어서 세계 경제가 흔들린 적이 있었다. [[1978년]]에는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나 팔레비 왕조가 축출되고 [[1979년]]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원리주의 정권이 들어서며 또 석유가 막히고 세계경제가 침체되었다. 이 사건을 [[오일 쇼크]]라고 부른다. 박정희의 집권은 지속되었지만 세계 경제가 흔들리면서 국내 경제도 침체되었다. 마침 [[1979년]]에 오원춘 농민 납치 사건이 터져 민심이 나빠지고 국내 경제 침체는 YH무역 농성 사건을 일으켰다. 유신 정권의 한계가 전국적으로 터져나오자 [[김영삼]]이 유신을 디스했다. 그리고 헬조선도 이란 꼬라지가 난다고 또 깠다. 노발대발한 반인반신은 사상 최초로 김영삼 국회의원을 제명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전국적으로 시위가 터져나왔고 먼저 반발한 곳은 공교롭게도 박정희의 지지기반인 경상도의 부산과 마산이었다. 정확히는 들고일어난 곳은 PK이고 박정희 지지기반은 TK라는 차이기 있긴 하지만 믿었던 경상도에 발등 찍혔다고 생각한 반인반신은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부마민주항쟁]]을 무력진압하기로 했다. 역사가 아이러니한 것은 분명히 20년 전만 해도 자유당 떨거지들을 쓸어버리고 찬사를 받았던 박정희가 이승만과 같은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정희는 이승만과 다른 최후를 맞이했다. ==== 10.26 사태 ==== {{대국적}} 이때 정부의 관료들과 박정희가 부마민주항쟁을 처리하기 위해 의논했으나 도저히 답이 없다고 판단, 박정희를 애널써킹하던 [[차지철]]이 탱크를 들고 모조리 찍어누른 다음 절대독재체제로 가자는 헛소리를 하자 [[김재규]]가 반사적으로 차지철의 대가리를 총으로 날리고, 뒤이어 박정희까지 쏴서 죽였으니 바로 [[10.26 사태]]이다. 멀쩡하던 머통령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자 나라는 갑자기 혼란스러워졌고 [[최규하]]가 권한대행으로 들어서긴 했지만 YWCA 위장결혼식 사건 등 민주화 세력이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0.26으로 긴급조치들이 전부 해제되었으며 [[대한민국 제10대 대통령 선거]]가 국민회의에서 개최되어 최규하가 당선되며 나라가 안정을 되찾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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