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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 ====[[뤄양]]==== 그 낙양맞다. ====싼먼샤==== '''{{Lang|zh|三门峡}}''' [[고사성어]] '가도멸괵'에서의 괵에 해당하는 괵나라가 있던 곳이다. 진나라가 하서군 털고 위나라의 절반을 먹어치운다음 이곳에다가 함곡관을 세웠다. 2천년동안 낙양의 위성도시가 되는 일도 있고 [[섬서성|산시성]]의 일부로 남는 일도 있고 그랬다. 공산화 이후 [[중국 공산당]]이 황허의 치수를 위해 이곳에 싼먼샤댐을 때려박아서 시 이름이 저렇게 되었다. ====정저우==== '''{{Lang|zh|郑州}}''' [[주나라]]가 낙양으로 빤쓰런을 한 뒤 하남지역으로 이주한 정나라가 신정에 자리잡으면서 개발이 시작되었다. 정나라를 멸망시킨 [[한나라]]가 양책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기기도 했다. [[진나라]]가 한나라와 주나라를 멸망시킨 뒤 낙양과 세트로 묶여 삼천군이 설치되면서 송나라까지 낙양의 위성도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서쪽으로는 바로앞에 낙양이 있고, 동쪽에는 연주의 중심지인 복양, 남쪽에는 예주의 허도와 형주의 남양, 북쪽에는 기주의 중심지인 업으로 통하는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에 후한말(그러니까 [[삼국지연의]]에서 초반부)에 큼직큼직한 전쟁이 몇차례나 터졌다. [[조조]]를 화북의 1인자로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한 관도대전도 이곳에 있는 중모현에서 발생했다. 위나라때는 이런 교통의 요지는 특별히 관리해야 한다고 형양교위로 잠깐 독립하기도 했다. 서진대가 되야 제대로 독립이 되었지만. 송나라때 대륙의 중심지가 개봉으로 옮겨지면서 동부와 서부가 각각 개봉과 낙양의 위성도시로 분리되었다. 그래도 개봉, 낙양, 등주, 대명부, 복양등 인근에 대도시들이 많이 있어서 교통의 요지위치는 유지했다. 이 인근도시들이 세트로 몰락하는 금~원대에 깡촌으로 강등당했다. 수백년뒤 청나라말 대륙 북경과 광주를 잇는 거대한 철도와 서안과 청도를 연결하는 또 거대한 철도가 만나는 교차로로 선정되면서 예전 교통의 요지로서의 위상을 되찾았고 중국 공산화 이후 허난성의 수도로 올라갔다. [[한비자]]가 태어난 곳이다. ====쉬창==== {{삼국지}} '''{{Lang|zh|許昌}}''' 중원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어서 서주시대부터 사람이 많이 살던 곳이다. 전국시대 [[한나라]]의 핵심지역이었는데, [[진나라]]가 한나라를 멸망시킨 후 위나라땅이었던 장사현과 스까되어 지금의 평정산과 함께 영천군({{Lang|zh|潁川郡}})을 설치했다. 후한말 [[이각]]과 [[곽사]]에 의해 군전역이 초토화 되었다. [[헌제]]를 [[장안]]에서 탈출시킨 [[조조]]가 [[동탁]]이 불태워버린 낙양의 대체재로 이곳에 있던 '허(許)'땅에 도시를 세웠고 이도시가 한나라의 마지막 수도가 되는 허창이 되었다. 하지만 낙양이 복구된 뒤로는 전주같은 그래도 국가 정체성에서 이름값은 하는 지방도시로 강등당했다. 서진대에는 서부지역이 양성군({{Lang|zh|襄城郡}}, 평정산 시의 전신)으로 분리되었고 남쪽에 있던 여남군과 엮여 여남국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영가의 난]]이후로는 그냥 깡촌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최근 조조가 깔아놓은 도시유적이 조금씩 발굴되고 있어서 재기를 도모해보는 것도 괜찮을듯? [[조조]]의 최측근 대부분이 태어난 곳이다. [[순욱]]일가<ref>지금 허창중심지(영천군 영음현)출신.</ref>, [[종요]]일가<ref>허창시 장갈현(영천군 장사현)출생. [[종회]]도 여기출신이다.</ref>, [[구품관인법]]을 만들었던 [[진군]]<ref>허창현(영천군 허현)출신.</ref>, [[곽가]]<ref>허창시 우주(영천군 양책현)출생.</ref> 이곳 출신이었다. [[원세개]]<ref>허창시 양성현출생.</ref> 가 태어난 곳이다. 그래서 이 지역 사람들은 조조의 후손들을 끝내주게 좋아한다고 한다. ====핑딩산==== '''{{Lang|zh|平顶山}}''' 전국시대 농경민이던 한족들이 살던 중원에서 특이하게 독수리를 토템으로 삼았던 응나라({{Lang|zh|鹰}})가 있었던 곳이다. 이 나라는 한나라한테 개털리고 망했다. 망하고 난뒤에는 근처도시였던 허창이랑 세트로 취급되어서 한나라때는 핵심지역, 진나라때는 영천군 서부에 해당하는 지역이 되었다. 위나라 말엽쯤에 영천군에서 양성군이 분리되었는데, 이군이 천칠백년동안 개조되면서 내려온게 지금의 핑딩산이다. 안타깝게도 양성군의 치소가 있던 양성현은 개조되면서 허창쪽으로 넘어갔다. 좆본군에 의한 양민학살이 벌어졌다는 평정산과는 이름만 같지 완전히 다른 곳이다.<ref>좆본군이 학살한 핑딩산은 [[랴오닝성]] 푸순근처에 있던 야산을 가리킨다.</ref> 여기에 불천사({{Lang|zh|佛泉寺}})라는 절이 있는데, 거기에는 러산대불이라고 128m높이에 달하는 가히 대륙수준의 불상이 존재한다. 참고로 세계최고높이의 인물조각상이라고 한다. ====뤄허==== '''{{Lang|zh|漯河}}''' 본래 허창보다도 못한 깡촌이었지만 이지역 출신의 식품회사 '샹휘'가 소시지 공장을 때려박아서 1986년에 독립했다. 지금은 식품공업, 경공업, 전자산업으로 먹고살고 있다. ====난양==== '''{{Lang|zh|南阳}}''' 왕년에 중국 내전의 화약고로 악명이 높았던 남양군이 있던 곳이다. 소위 중원이라 불리는 여타 허난지방과는 산으로 분리되어 있음은 물론, 수계도 장강 지류중 하나인 한수의 지류쪽 수계에 해당하기 때문에 [[송나라]]때까진 [[후베이성]]일대와 생활권을 공유했다. 하지만 [[금나라]]때 허난지방에 설치된 행정구역 남경로에 소속된 이후 허난성과 생활권이 묶여 그래도 허난성으로 편입되었다. [[중의학]]의 거성중 한명인 [[장중경]]({{Lang|zh|張仲景}})의 고향이라 장중경기념관까지 세워졌지만 [[문화대혁명]]때 기념관에 전시된 유물들이 털리는 수모를 겪었다고 한다. 하지만 남은 걸로 꾸역꾸역 기념관을 유지했는지 지금도 운영되긴 한다... 현재 중공 국방부 장관인 창완취안이 여기 출신이다. ====상추==== '''{{Lang|zh|商丘}}''' 춘추전국시대 송나라가 여기 있었다. 송나라때는 여기가 남경이었고 응천부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금의 난징은 강녕이라 불렸음. 덕분에 북송시대에 존나 잘나갔다. 물론 북송이 화북털리고나선 저기 남쪽동네에 난징이랑 응천부란 이름을 다뺏기고 깡촌행. 하지만 송나라때 세워진 응천서원은 송나라 멸망이후에도 잘 남아 중국 4대서원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여담으로, 지금 대만의 한류었던 국민당 전 가오슝시장 한궈위({{Lang|zh-tw|韓國兪}})의 본적지가 여기다. ====카이펑==== {{망함}} '''{{Lang|zh|开封}}''' 한대의 그 유명한 진류군은 여기 옛이름이다. 송나라의 수도였던 곳으로 지금도 수로를 통한 무역이 활발하다. 근데 수로때문에 수공/홍수에는 얄짤없이 ㅈ망했다. 중화민국때까지는 그런대로 잘나가는 곳이었는데, 공산화되고나서 좆망했다. http://mnews.jtbc.joins.com/News/Article.aspx?news_id=NB11140355 이곳 마을에서 농민들과 부자들이 거대한 황금 마오후동상을 만드는 장대한 병신짓을 저질렀다. 다행히도 개념있는 중국인들이 욕폭격을 날린덕에 철거됬다고 한다. ====[[안양시|안양]]==== '''{{Lang|zh|安阳}}''' 전욱과 제곡이 통치를 한 곳으로 이들의 능이 내황현에 있다고 전해진다. [[은나라]]가 이곳에 마지막 수도인 은허를 두었다. 그래서 은나라 유물들이 아주 많다. 은나라가 좆망한 뒤에는 서주시대 최대 제후국중 하나였던 위나라({{Lang|zh|卫}})가 있었다. 이 안양 시와 [[허베이성]] 한단시 임장현 사이에 위나라가 공들여서 세운 도시가 바로 업({{Lang|zh|邺}})이다. 이 업은 남북조시대까지 하북지방 최대도시에 올랐기 때문에 그 근처였던 안양은 업의 위성도시로서 아주 잘나갔다. 업이 좆망하고 난뒤 한단시 대명현에 세워진 대명부덕분에 어째어째 살아났지만 그 대명부도 망하니까 같이 좆망했다. 1949년 5월 6일 [[중공군|인민훼방꾼]]에게 점령되었고 한단시, 요성시와 함께 공산화 이후 중공이 신설한 [[핑위안 성]]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이 핑위안성은 몇년만에 폐지되었다. ====허비==== '''{{Lang|zh|鹤壁}}''' 은나라 최후의 수도였던 조가가 있던 곳이다. 안양에서 분리된 곳이라서 연혁은 안양과 거의 같다. ====푸양==== '''{{Lang|zh|濮阳}}''' 한자를 보면 알겠지만 삼국지에 나오는 그 복양맞다. 본래 동군 관할이었지만 서진대에 복양군으로 독립했던것이 이래저래 바뀌면서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다. 수조원단위의 거금을 빼돌린 [[방산비리]] 끝판왕 구쥔산이 태어난 곳이다. ====저우커우==== '''{{Lang|zh|周口}}''' 진({{Lang|zh|陈}})이라고 불린다. 이곳에는 진나라라는 제후국이 있었지만 초나라에게 멸망했다. 초나라가 인간도살자 [[백기]]에게 수도인 영성(형주)를 털리니까 이곳으로 수도를 옮겼다. 하지만 여기도 털리니까 옮긴 마지막 수도가 바로 수춘. 회수의 바로 북쪽에 있어서 회양이라고도 불렸다. 지금의 주구시 시가지쪽은 한나라땐 여남군 여양현이었다. [[원본초|원소]]가 태어난 그 여남군 여양현 맞다. ====주마뎬==== '''{{Lang|zh|驻马店}}''' 바로 밑에 있던 동네와 함께 여남군으로 묶여있었다. 이지역과 신양의 경계지역에 회수가 흐른다. 광주에서 낙양에 이르는 역참이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촉나라]]말기의 재상이었던 [[진지]]가 이지역 출신이었다. ====신양==== '''{{Lang|zh|信阳}}''' 춘추전국시대를 불러온 나비효과의 나라인 '신'나라가 여기 있었다. 허난성에서 가장 존재감이 종범인곳. 회수가 시를 거의 남북으로 반띵하고 있다. 덕분에 전쟁이 많이 벌어진 곳이기도 했다. 신양사태라고 [[대약진운동]]때 여기서 공산당이 정신나간 수준의 대학살을 벌인적이 있다. ====자오쭤==== '''{{Lang|zh|焦作}}''' 하내사마씨 할때 하내가 이동네이다. 실제 [[사마의]], [[사마사]]를 비롯한 사마씨 일가들이 이동네에 있는 온현에서 태어났다. 중국이 짱깨가 되는 시작점인 악명높은 [[대약진운동]]의 시험장이었다. 그리고 마오후-쩌둥쩌둥이 심심하면 이곳에 시찰을 왔기 때문에 마오쩌둥과의 악연이 매우 깊은 곳이다. ====지위안==== '''{{Lang|zh|济源}}''' 자오쭤에서 분리된 신도시. 간혹 따라 황하의 본류가 되기도 하는 제수가 여기서 발원한다고 수나라때 제원이란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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