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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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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의 위기=== 북서유럽에서 발발한 백년전쟁은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군주들로 하여금 막대한 군자금을 필요로 하게 만들었다. 잉글랜드의 국왕은 런던에 지점을 운영하고 있던 피렌체 은행들로부터 200만 플로린에 이르는 막대한 군자금을 대출하였다. 이는 당시 잉글랜드 왕실의 경제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채무규모였고, 당연하게도 떼 먹히게 된다. 이로 인해 피렌체 금융가가 공황상태에 빠졌고, 이에 따라 피렌체의 금융 중심지 지위가 위태로워졌다. 게다가 1347년 이탈리아에 상륙한 흑사병의 영향으로 도시 인구의 30% 이상이 사망하는 참사까지 겹쳤다. 흔히 흑사병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질병 자체로 인한 피해보다는 질병 확산에 의해 패닉 상태에 빠진 폭도들에 의한 인한 인명 피해가 더 컸다. 가뜩이나 금융업 침체로 인해 부침하던 공화국 정부는 흑사병으로 인한 치안유지활동을 위해 민병대 인원을 증원할 수 밖에 없었고, 이를 위해 증세 정책을 실행하여 대중의 불만을 사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공화국은 1362년 피사와의 전쟁을 치렀으며, 1375년에는 교황령의 확장주의 정책에 경계심을 느낀 피렌체의 공화국 정부가 밀라노, 시에나와 연합하여 교황령과의 '8성인의 전쟁'에 돌입하였다. 8성인의 전쟁 당시 교황령은 피렌체 공화국을 파문하였다. 피렌체 공화국은 이에 대한 응수로 피렌체 내의 교회재산들을 압류하여 교황 용병대의 대장인 존 호크우드(John Hawkwood) 매수에 유용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성직자들과 열성적인 카톨릭 신도들의 불만까지 사게 되었다. 결국 공화국 정부에 염증을 느낀 시민들은 1378년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를 치옴피의 난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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