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스탈린그라드== 1942년 1월. 발터 폰 라이헤나우는 원수로 승진하며 제6군을 떠났고 파울루스는 기갑대장으로 승진했다. 라이헤나우가 제6군 사령관으로 있었을 당시 게으르지만 결단력과 카리스마가 있는 라이헤나우와 우유부단하지만 성실한 파울루스는 죽이 잘 맞았다. 그 덕분에 라이헤나우가 공을 많이 세우고 원수로 진급한거고. 1942년 1월 17일. 라이헤나우가 뇌경색으로 사망했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1월 20일. 파울루스가 제6군 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대대까지밖에 지휘해 본 적 없는 주제에. 히틀러는 동남 공격을 위해 부대를 둘로 나눴고 스탈린의 이름을 딴 도시를 공략할 부대로 제6군을 지명했다. 상병놈 히틀러가 짠 작전답게 제6군은 측면 가드도 없이 스탈린그라드로 달렸고 온 여름을 시가전에 소비했다. 히틀러는 11월 8일 뵐게르트브라우켈러에서 라디오 연설을 통해 스탈린그라드의 거점적 중요성을 말했다. "스탈린의 이름이 붙어있어서 점령하려는 것은 아니다!" 라고 말했지만 누가 그 말을 믿었겠는가. 물론 T-34의 주요 생산거점의 하나였으니 틀린 말은 아님. 육군본부에서 히틀러가 스탈린그라드 한복판에 파란 색연필로 전선을 그었다. 하지만 실제론 건물 하나를 점령하기 위해서 몇 개월이 걸리는 힘든 싸움이었다. 그 때문에 병력 손실이 많아졌고 겨울이 왔을 때 보다 유연한 작전을 벌일 수 없었다. ===포위=== 소련군은 천왕성 작전으로 스탈린그라드를 포위했고 파울루스는 히틀러에게 퇴각요청을 보냈다. 그리고 대차게 거절당했다. <ref> 나무위키에선 이 당시 히틀러가 퇴각하지 말랬다고 했다고 파울루스를 있는 힘껏 쉴드치는데 파울루스 재량으로 얼마든지 퇴각할 수 있었다. 루마니아에서 프리스너도 명령을 무시하고 퇴각했고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 티펠스키르히 "대장"도 히틀러를 무시하고 퇴각했는데?</ref> 생존에 필요한 명령은 퇴각이었다. 그러나 퇴각은 일어나지 못했고 만슈타인의 겨울폭풍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 구출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히틀러는 파울루스에게 '프로이센 원수는 포로가 되지 않는다.'며 원수로 명예진급을 시켜줬다. 그러나 파울루스는 "보헤미안 상병 주제에 누구한테 명령이야?" 그러면서 진급 다음 날 소련군에게 항복했다. 그래도 스탈린그라드에서 후퇴도 항복 안하고 존버한 덕분에 클라이스트가 지휘한 A집단군은 가까스로 탈출했음. 결국 6군은 항복했지만.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