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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big>탈퇴 이후</big></big>=== [[파일:Take+That+Nobody+Else+480922.jpg]] {{인용문|'''<big>우리가 쉬는 10년 동안, 나는 롭의 곁을 지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건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뒤통수를 친 것보다 나빴다.</big>'''|<big>제이슨 오렌지. 2006년 Q매거진 인터뷰에서...</big>}} <big>영국 최정상 그룹이었던 테이크 댓의 갑작스러운 해체는 수많은 팬들에게 충격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굳이 알기쉽게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의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당시의 영향이 한국보다 몇 배는 더 큰 국토 면적을 가진 영국에서 수십 수백 배가 넘는 팬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보면 될 듯 싶다. 혹은 그 이상일수도. 영향은 팬들에게만 미친 것이 아니라 멤버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는데. Take That이라는 그룹이 출발 할 당시 다들 어린 나이에 서로 동거동락 하면서 말 그대로 가족처럼 지내왔기 때문에 서로를 진짜 형제처럼 생각하면서 서로 의지하면서 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막내 새끼가 안 좋은 길로 빠져서 가족이 붕괴가 된 것인데. 첫 째로 가족이 붕괴 된 것에 대한 충격도 있지만 형들이 되서 막내를 제대로 관리해주지 못해 나쁜 길로 빠지게 했다는 사실이 죄책감으로써 많이 괴로웠다고 한다. 이 당시 상황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어서 팬들의 잇따른 자살 시도가 사회 문제로까지 대두되자 이들을 위한 전화 상담 서비스까지 마련이 될 정도였고, 심지어 그룹 멤버였던 하워드 도널드는 자살 시도까지 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었다.</big> <big>해체 이후 멤버들은 각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는데 먼저 팀의 리더였던 [[게리 발로우]]는 우수한 작사, 작곡 실력<ref>90년대 당시 Take That의 모든 노래중 단 2곡을 제외하곤 전부 [[게리 발로우]]의 작품이다. </ref> 과 노래 실력 그리고 ㅆㅅㅌㅊ는 외모로 모두가 예상했듯이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고 좋은 성적을 거두리라 예상하였다. 첫 시작은 순조로웠다. 데뷔 싱글인 Forever Love과 데뷔 앨범인 Open Road 둘 다 UK 차트 1위에 등극 하였고 2번째 싱글은 마돈나가 작곡 한 Love Will not Wait도 차트 1위를 달성하였고 So Help Me Girl는 미국 시장에서도 성공을 거두며 성공적인 솔로 활동을 하는 듯 싶었으나......2번째 앨범인 Twelve Months, Eleven Days의 처참한 실패<ref> 최고 성적 35위였고 이후 84위로 떨어지다가 그리고 차트 아웃 이 모든 일이 앨범 출시 후 단 3주만에 벌어진 일이다.</ref> 그리고 라이벌(?)이었던 [[로비 윌리엄스]]의 유명한 사건 이었던 엔젤 대폭발<ref>1997년 [[로비 윌리엄스]]가 발표한 4번째 싱글 Angel로 전세계 200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는 등 엄청난 성공으로 [[로비 윌리엄스]]를 단숨에 영국 최고의 락스타로 부상하게 해준 사건.</ref>로 압살 당한데다 팀을 뛰쳐나간 막내와 팀의 리더의 대결 구도를 재미있게 보고있던 영국 언론들의 참전까지 더해져 영국은 팀의 막내인 [[로비 윌리엄스]]에게 주목하게 되었고 팀의 리더였던 [[게리 발로우]]는 관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big> <big>두 번째로 [[마크 오웬]]은 그룹 멤버들 중 가장 먼저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마크 오웬은]] 당시 왕자님이란 별명을 가질 정도로 신사적인 외모와 게리 발로우 만큼은 아니더라도 수준높은 보컬실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솔로 활동에도 기대를 가질 수 있었고 출발 또한 청신호였다. 첫 데뷔 싱글인 Child와 두 번째 싱글인 Clementine은 UK차트 3위를 기록하며 솔로 활동의 순조로운 출발을 하나 싶었으나... 첫 데뷔 앨범인 Green Man은 33위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고 이 후 두 번째 앨범인 I Am What I Am은 29위의 성적에 그치면서 계약사인 BMG 레코드와 계약을 해지하게 되었고 역시 관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big> <big>팀 내에서 춤만 잘 추던 하워드 도널드와 제이슨 오렌지 2인조는 어떻게 되었냐 하면 하워드 도널드는 다시 클럽으로 돌아가 그룹 참가 전부터 해왔던 DJ일을 다시 시작하였고 다른 멤버들과는 다르게 성공했다. 실력은 좋은 편인지 아직도 영국 클럽에서 DJ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big> <big>제이슨 오렌지는 음악계를 떠나 배우로써 무대에 오르며 활동했지만 성공에 실패하여 오디션에 오르는 일도 뜸해지게 되는 등 솔로 활동은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의외로 대학교에서 심리학 생물학등을 가르치는 교수로 활동하며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big> <big>그리고 팀의 해체에 지대한 공헌을 한 막내 새끼인 [[로비 윌리엄스]]는 어떻게 되었느냐? 이 막내 새끼의 솔로 활동에 대한 얘기는 너무나도 길지만 재미있는 부분이 있는데, 탈퇴 이후 초기에는 아직 방탕한 삶에서 헤어나지 못하여 언론에서는 "보이밴드 출신의 뚱땡이 댄서" 라고 조롱하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그룹 활동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될만큼 살도 찌는 등 그냥 돈에 찌들린 전형적인 추락하는 졸부의 삶을 살고 있었다. 또 당시 인기있던 락밴드 [[오아시스]]와도 기묘한 인연이 있는데 로비 윌리엄스가 록큰롤을 배우려고 리암을 따라다니면서 같이 방탕한 생활을 했었다는 사실이며 더욱 재밌는 사실은 이 당시 로비에게는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로비와 같이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기회를 노리던 [[리암 갤러거]]가 로비의 여자친구를 빼앗았고 후에 결혼까지 했는데 이 여자가 바로 리암의 전처였던 니콜 애플턴이다. 이 사건으로 [[로비 윌리엄스]]와 갤러거 형제는 서로 원수지간이 되었으며 뒤만 졸졸 따라다니던 놈이 솔로 활동 하더니 자기보다 더 인기를 얻게되면서 시상식에서 서로 디스를 하는 등 사이가 진전 될 확률은 없어보인다... 솔로 활동에 대해 자세히 적기에는 너무 길어서 적기 힘들고 간단히 설명하자면 뭐 이런 저런 사건이 많았지만 어쨋든 정신차리고 제대로 솔로 활동을 하고 영국 최고의 락스타에 등극하면서 성공적인 솔로 활동을 하게됫다는 것이다.</big>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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