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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대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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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일록에 보면 신립의 정예병 500이 충주강물에 빠져 익사했다나옴. 선조수정실록엔 신립이 평소 직속 철기 500을 거느리고 치돌을 즐겨했다나온다. 상촌집에도 신립이 탄금대전투 때 철기 500을 거느리고 단월역 인근 평원광야에서 치돌하다 전부 뒤졌다고 나온다. 어떤 모습의 철기였을까? 이일의 병력 징집 장면 이일이 경상도순변사가 되어 경상도로 가려하는데. 기마장교 40명 궁수장교 20명을 비변사에서 받음. 그리고 도성의 금군 300명을 호위병으로 데려가려하는데. 군적을 보니 유생,역관들이 전부 차지하고있었음. 병역비리의 끔찍한 현장을 본 이일은 한숨을 쉬고 유생,역관들은 안끌려가려고 지랄하다가 결국 별장 유옥에게 전부 끌려가는데. 별장 유옥의 장교들이 집들을 일일히 뒤지며 숨은 유생,역관들을 끌고가는데 시간이 걸림. 유생,역관들은 하도 기생한테 돈을 탕진해서 말도 없이 노비들이랑 함께 걸어감. 그때 이일은 먼저 기마장교 궁수장교 60명과 함께 도성을 출발해 경기감영을 지나며 금군 300명을 호위할 조례(서울아전) 4천명을 호위병으로 징집함. 이때 호위병들의 짐을 싣고 같이 가줄 보인들도 하나씩 뽑음. 그렇게해서 전병력이 8천 300 이상이 되었을것이라 추정됨. 그렇게해서 상주로 내려갔는데. 문경을 지나면서 곡식창고 다 털음. 그리고 상주에 도착했는데. 이일은 함께 온 귀족종사관 2명과 함께 상주 읍성 북쪽 시냇가 북천으로 상주의 민병 800과 상주에 모인 경상도 장사 2천명을 데려와서 자기가 데리고온 조례병4000 보인종자 4000 장교 60 금군 300과 합체시켜 전투병 6000 이상 , 보인종자 6000이 됨. 4월 25일 충청도 조령을 방어하는 방어사 겸 조방장 변기와 종사관 1명이 충청도군현병 8천을 이끌고 이일을 후원하러 상주로 와서 이일과 합류했는데. 이들 중 민병 800만 북천시냇가에서 진법훈련을 시키는척하며 왜군의 밥으로 내어준후 나머지 군사는 전부 뒤편 숲속을 통해 변기의 도움 하에 무사히 퇴각시킴. (4월 25일) 고니시 유키나가는 이때 상주에서 이일 변기의 연합군병력 2만을 만났는데. 이 2만 중 1천만 격파하고 나머지는 놓침. 이일이 떨구고간 역관 1명이 고니시 유키나가를 만나 조선조정이 4월 28일 충주에서 항복하기로했으니까 어서 오셈하고 유인함. 이일과 변기는 함께 총병력 2만을 이끌고 조령을 지나 단월역 근방으로 오던 중에 급히 오는 신립 김여물과 만나서 급히 '조령작전회의'를 염. 이 때 신립이 왜군의 형세를 물어봤는데 이일은 적은 신병이라서 무조건 강하다는 병신개소리를 싸질렀음. [[분류:임진왜란]][[분류: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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