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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인-기호인 관계|기호(경기도+충청도) vs 서북(평안도)]]=== [[서울특별시|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기호 지방과 [[평양직할시|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서북 지방 사이의 지역감정이다. 머한민국 역사상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 때는 수도를 [[개성]]에 뒀지만 [[고려]] 자체가 [[고구려]] 계승을 내세운 나라여서 고구려를 선대의 나라로서 취급했고 고구려의 수도였던 서경([[평양직할시|평양]])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고 애지중지했다. 그래서 당시 [[평양직할시|평양]] 사람들이 자기들이 사는 서경에 대해 자부심이 굉장히 컸다고 한다. 서경별곡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묘청의 난이라는 큰 반란이 일어나고 점차 [[평양직할시|평양]]은 나라에서 애지중지하는 곳에서 수도를 위협하는 제 2의 도시가 되어 수도와 라이벌 관계를 벌이는 곳이 되어갔다. 조선시대 때도 제2의 도시였는데, 근처에 넓은 평야와 큰 강을 끼고 있고 중국과 교역하기 편리해서 이 당시에도 엄청 붐비는 도시였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 조정은 [[평양]] 세력들을 은근히 견제했고, [[평안도]] 출신들이 과거에 많이 합격해도 벼슬길에 오르는데 많이 차별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홍경래]]의 난같은 반란이 일어났을까... 당시에는 다른 지역의 노비들마저도 [[평안도]] 사람들을 평안도놈이라고 낮춰부른다고 [[평안도]] 사람들이 자기네 지역 좀 그만 차별하라고 난을 일으켰을 정도였다. [[일제강점기]] 때도 경성(서울)과 많이 대립했다고 한다. 심지어 같이 단합해야할 독립운동가들 마저도 기호파(경기도, 충청도 출신)와 서북파(평안도 출신)가 서로 대립할 정도였다. 오죽하면 [[윤치호]]가 "지역감정 하나로만 봐도 조선은 독립할 자격이 없다."라고 말할 정도였을까... 이렇게 서울(+충청도)과 평양이 싸우는데 밑의 영남이니 호남이니 남부지방 찌끄레기 촌놈들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한마디로 지금 지역감정에서 제일 조용한 경기충청이 이때는 제일 지랄맞았다는 소리. 현재도 [[6.25 전쟁]], [[남한]]의 수도 [[서울특별시|서울]] vs [[북한]]의 수도 [[평양직할시|평양]]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최대 지역감정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통일된다면 다시 부활할 가능성도 있을 듯? 밑에 나올 동서독이나 남북월남처럼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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