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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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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 {{고인드립허용}} {{정의구현}} {{고인}} {{기분좋은것}} [[파일:폭파조센총독부.jpg|섬네일|사망]] 일본이 조선총독부 건물이 역사적인 명소라면서 정부 차원에서 일본이 사비를 들여서라도 영구 대여하겠다고 요청하자 바로 다음날 김영삼 대통령 각하께서 보란 듯이 철거해버렸다. 사실 김영삼도 처음에는 그냥 다른 곳으로 이전도 고려해봤는데 일본이 독도 망언을 터트려서 희대의 명언인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라고 발언하며 바로 철거 개시했다. [[1995년]] [[3월 1일]]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겠다고 선언했고 [[8월 15일]]부터 철거를 개시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6년]] 초에 완전히 철거되었다. === 철거해야 했는가? ===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 존나 잘한 일이다. 당시 총독부는 일본 관광객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철거 당일에는 많은 일본인들이 안타까워하며 주춧돌에서 사진 찍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보자면 많은 일본인들은 자기 나라의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하기보다는 자기 나라의 제국주의뽕에 빠져 딸딸이치기 위해 오는 것이었다. 만약 이를 보존해서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쪽빠리들이 와서 잘도 반성하겠다. 부수는 게 맞는 거라고 본다. 솔직히 외관상으로도 없는 게 낫다. 경복궁 앞을 떡하고 가로막은 총독부 청사가 있던 사진과 없는 현재를 비교해보면 속이 뻥 뚫린다. 사실 최초로 조선총독부 철거 계획이 세워졌던 건 이승만 정권 1공화국 당시였다. 6.25 전쟁 중 서울을 다시 수복했을 때 이승만이 "저 망할 놈의 건물을 헐어버려야지."라며 박살을 낼 계획을 세웠으나 당시 나라가 거지도 그런 상거지 국가가 없던 터라 헐어버리겠다고 일단 미군 지원을 받아서 불도저까지는 빌려왔는데 크레인이나 돌을 나르는 도구 자체가 아예 없어서 사람 손으로 줍고 지게꾼을 이용해서 돌을 날라야 하는 판이었다. 그래서 해체한다는 건 말도 안 되고 폭파한다고 해도 건물 잔해를 치울 능력 자체가 안 되어서 그저 내버려뒀다. 그렇게 그냥 뒀다가 1982년 다시 철거 계획이 세워졌었으나 6.25 전쟁 당시 서울 수복의 상징 건물인데다가 이미 근현대사의 상징이 되어버려서 박물관으로 개조하는 걸로 바꿨다. 그냥 [[혹부리우스]]병신 새끼가 전쟁만 안 일으켰다면, 아니 [[신탁통치 오보사건]]이 안 터져서 통일 한국이 되었다면 누가 머통령이 됐든 바로 철거했을 거다. 생각해보면 건물 자체는 멋있다. 레고로 한 번 만들어보고 싶을 정도로. ㄴ 내가 근대전축물 볼 줄 몰라서 그런가, 크기만 존나 크고 생김새가 단조로워서 솔직히 별로 멋 없어 보인다. 어떤 건축가는 일뽕이 의심될 정도로 빨아대고 어떤 건축가는 존나 까는데 도대체 이 건물의 매력이 뭐냐. 다만 아깝다고 생각되는 건 대한민국 수립 선포를 했던 곳도 이 건물 중앙 홀이고 중앙청으로 쓰던 역사가 총독부 시절의 역사보다 훨씬 길었다. 6.25 때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 탈환해서 태극기 걸었던 곳도 중앙청이었다. 총독부 시절 걸러도 대한민국 역사에서 중요한 건물이었단 얘기다. 하지만 조선총독부 철거는 분명한 업적이다. 서울 종로의 광화문 앞을 안 가본 새끼들이 아픈 역사 운운하며 헛소리를 씨부려놨는데, 지금 경복궁이 떡하니 있는 모습에 비해 조선총독부 청사가 앞에 가리는 것은 경관상 아주 좋지 않았다. 그리고 총독부 청사는 서양에는 흔해 빠진 건물인데 굳이 분위기도 매치가 안되는 서울에 저딴 건물을 계속 존치해놓는다? ㅋㅋㅋㅋ 아픈 역사를 기억하자 운운했다가 오히려 아픈 역사를 조롱하는 새끼들의 성지가 되어서 밀어버린 것인데 당시 상황도 모르고 근대 건축물이니 아픈 역사 기억이니 씨부리는 새끼들은 [[1995년]] 이전의 서울로 보내줘야 한다. 아픈 역사를 그리 간직하고 싶으면 느그들 집에나 잘 간직해라. 첨탑은 아직 [[독립기념관]]에 잘 남아있으니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용도로 잘 쓰이고 있다. 그래도 '아픈 역사'에 미련을 못 버린 새끼들에게 덧붙인다면, 아픈 역사는 이런 식민시대의 잔재 건축물 짓자고 헐어버린 광화문 안의 건물들만으로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건물은 완전히 철거됐지만 건물에 속한 장식물들은 독립기념관의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기념 공원에 전시되어있다. 일제 시절이 그리운 일뽕 새끼들은 한번 갔다 와라. 그 전시된 물건 중 하나가 돔 정상부의 첨탑인데 광복 50주년 기념으로 이 첨탑 철거를 생중계 했다. 첨탑 철거 아이디어는 일본 건축가가 재안했다고 하는데 패배한 스모선수는 상투를 자르는 의식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참고로 이 첨탑은 독립기념관에 있는데 침을 뱉어도 된다고 하니 갈 일이 있으몈 침이나 뱉고 오자. 일본이 우리나라의 IMF 외환위기 때 이 일로 복수했다는 낭설이 있는데 반박할 가치도 없는 헛소리이다. 오히려 동병상련으로 일본도 당시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고 당시 대통령인 김대중도 일본에 친화적이어서 일본이 먼저 한국에 손을 내밀 정도로 협력했다. 애초에 일본 입장에서 쓰잘데기도 없고 한국 관광객만 늘려주는 건물 존치해봤자 뭔 도움이 되겠냐? 가끔 역센징들이 반일하면 한국 망한다는 예시로 이걸 들고 오는데 당시 일본도 증권사 여럿 파산해서 딴 나라에게 외환 빌려주기 힘들었고 당시 미국 성님이 일본에게 외국에게 자본 빌려주지 말라고 했다. 1999년 동아일보에서 당시 미국인 경제학자가 플라자 합의 이후 지속된 미국과 일본의 경제적 대립으로 한국이 IMF행 밖에 없었다는 내용을 실었고 애초에 일본 돈으로 해결되지 않을 정도로 땡삼이가 환율정책을 조져놓은 상태였다. 당시 다른 어떤 기관과 나라도 한국에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일본이 돈 빼고 나서 미국 자본이 나갔다는 개소리는 미국이 일찍이 1997년 초부터 한국의 경제가 불안하다는 것을 예의주시하고 관련 자본에 철수하라는 조언을 내렸다는 게 문서로 확인되며 나가리 되었다. 미국 자본 나가니 불안한 일본도 철수한 거다. 땡삼이 외교도 조선총독부 철거는 일본에서 딱히 큰 반감을 가지지 않았다. 자기네 국토에 있는 거 철거니 일본으로서는 아쉬워도 반감 가질 일은 아니었다. 버르장머리도 실은 저거 철거 하고 3개월 뒤 일본 정치인들이 일제강점기 개꿀데스요~ 라고 개드립 치니 한 말이고 일본은 표준어로 표현해 달라고 말한 거 외에는 항의도 없었다. 가끔 역센징들이 박지원과 당시 외교대사 말 가져와 ㅈㄹ 하는데 박지원은 당시 실무자도 아니었을 뿐더러 외교대사는 외교에 주요 문제를 찾으니 자기 주관으로 판단한 거 뿐이다. 물론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 이후 외교 사이가 좋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일본이 옆에 있는 경제적으로 중요한 나라 망하라고 돈 안 빌려줬다는 것은 국제관계를 초딩 수준으로 판단하는 초딩 정신을 가진 ㅅㄲ들의 주장이니 무시해주자. 일본이나 한국이나 서로가 필요한 마당에 일본이 한국 망하라고 돈을 안 빌려준다? 동해에서 해자대가 중공군 항공모함과 원잠을 볼 수 있게 된다. 한편 그전 용도로 쓰이던 국립중앙박물관은 용산 미군기지 아래에 새로 건물을 지어 이사 갔다. ===재건?=== {{각도기}} 윤석열 정부가 재건한다는 소식이 돌고 있는데, 청사가 아니라 관저를 모형으로 복원하겠다는 소리였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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