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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사전 === 부친은 제갈규로 한나라 말 연주 태산군 군승을 지냈는데 제갈량은 어려서 고아가 되었다. 이에 숙부인 제갈현이 제갈량 형제들을 수습하여 키웠는데 이후 제갈현이 원술에 의해 예장태수로 임명되자, 제갈량과 제갈량의 동생 제갈균을 데리고 부임했다. 때마침 한나라 조정에서 다시 주호를 에장태수로 뽑아 제갈현을 대신하게 하자 제갈현은 친분이 있던 유표의 도움으로 형주로 이전하였다. 사실 제갈량은 서주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조조]]가 [[서주대학살]]을 일으키는 바람에 제갈씨 일족도 피난을 가야만 했는데, 제갈근은 손책에게 취직해서 손책의 가신이 되었고 제갈량이 일족의 수장이 되어 일족들을 이끌고 제갈현이 있는 형주로 피난갔다. 위빠 놈들은 왜 제갈량이 그 좋은 조조를 버리고 유비 나부랭이한테 취직했는지 의아해 했을 건데 조조가 저딴 개짓을 저질렀으니 누가 제갈량이라 하더라도 조조와 불구대천이 되는 건 필연적이었다. 이때 제갈량의 일가가 [[채모]]같은 채씨가문, 괴씨가문, 황씨가문, 방씨가문같은 형주호족들과 통혼하면서 제갈량의 형주 인맥이 형성되는데 이거 가지고 제갈량의 족보가 존나 짱짱하다고 하니 제갈량 가문빨이라고 한다. 근데 시발 과거제도 없고 '''오직 천거제와 군공으로만 관직에 오를 수 있었던''' 한나라 시절은 출세하려면 결국 자기 PR 존나게 잘하고 명성 올리고 혼맥을 다져서 유력 인사에게 천거를 받아야 관직에 오를수 있는 시대였다. 괜히 날이면 날마다 [[허소]]의 집에 선비들이 엄청 길게 줄서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허소는 인물평을 전문적으로 해줬는데 여기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그걸 들고 유력 인사에게 제출하면 즉각 천거를 받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게 일종의 '''보증 제도'''라서 천거 한 번 할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했다. 자기가 천거한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면 문제 일으킨 사람과 그 사람을 천거한 사람이 같이 처벌받게 되어있었다. 일례로 [[손견]]이 죽은 이후 [[환계]]는 혼자 목숨 걸고 유표에게 찾아가서 손견의 영구를 찾아왔는데 이는 손견이 환계를 효렴으로 천거했기 때문이고 환계는 이런 손견이 미치도록 고마워서 죽음을 무릅쓰고 손견의 영구를 찾아온 것이다. 물론 뼛골까지 선비(士)인 유표는 손견의 영구를 그냥 내주라 해서 비교적 쉽게 찾아오긴 했다. 게다가 후한 말기에는 거의 대부분 천거로만 관직에 올랐고 군공으로 관직에 오른 이가 [[장거]] [[장순]]의 난을 진압한 바 있는 [[유비]]나 구성의 난, 허창의 난을 진압하고 해결사로 명성이 자자했던 [[손견]] 정도에 불과했다. 무슨 후대처럼 과거제도로 올라가는 시대가 아니었다고. 거기에 제갈가문은 근본이 서주에서 탈탈 털려 도주하고 예장군에서 도주한 떠돌이 집안이다. 형주 호족들이 이런 외부에서 굴러들어온 가문을 뭐 좋다고 무조건 하하호호하고 받아들였을거라고 생각함? 형주로 굴러들어온 제갈량 형제의 숙부 제갈현이 그만큼 사바사바를 잘했고 제갈량 장인 황승언이 그만큼 형주 제갈가문의 후계자격인 제갈량을 유망하게 보지 않았다면 성립할 수 없는 일이다. 양주로 간 제갈량의 형 제갈근이 괜히 오나라 양주 호족들의 눈치를 존나게 보면게 아들인 제갈각 새끼한테 '씨발놈아 제발 쟤네들 눈밖에 나게 나대지 마라' 한게 아니다. 그만큼 토착 호족들에게 좋게 보이지 않으면 찍히기 쉬운 굴러들어온 돌이라서 그렇다는 거다. 어쨌거나 당시 인맥을 보면 다음과 같다. *채풍에게는 1남 2녀가 있었다. 순서대로 큰채씨, 작은채씨, 채모다. *큰채씨는 황승언에게 시집갔다. 슬하에 황씨라는 딸을 낳았다. *존나못생긴황씨는 존나잘생긴제갈량에게 시집갔다. 제갈량이불쌍하다... 사실지가원해서간거긴하다 :ㄴ 근데 사실 황씨는 그렇게까지 못생긴 건 아니다. 그냥 피부가 시커멓기만 할 뿐이었다. 당대에는 미의 기준이 '''시체처럼 창백한 피부 색깔'''이었을 뿐이다. 실제로도 [[하진]]의 여동생 [[하태후]]는 진짜 시체처럼 피부가 창백했고 키가 매우 컸다. 그래서 [[영제]]가 하태후를 황후로 삼은 것이다. 오늘날 기준으로도 마찬가지로 못생긴, 모든 시대 통털어 다 못생긴 [[가남풍]]과는 다르다. *작은채씨는 유표에게 시집갔다. 여기까지만 종합해보면 채모가 제갈량의 처외삼촌 유표가 제갈량의 처이모부이다. *제갈규에게는 3남 2녀가 있었다. 순서대로 제갈근, 제갈량의 큰누나, 작은누나, 제갈량, 제갈균이다. *제갈근은 손권의 가신이다. *큰누나는 방덕공의 아들인 방산민에게 시집갔다. 방산민과 방통이 사촌형제다. *작은누나는 괴기에게 시집갔다. *괴기는 괴량, 괴월 등 형주의 유력자들과 친인척이다. 하여간 제갈현이 죽고 청년이 된 제갈량은 몸소 밭이랑에서 농사지었으며, 양보음(梁父吟)이라는 노래를 부르기 좋아했다. 제갈량은 '''신장 8척으로 얼굴이 준수하고''' 영웅의 그릇이었으며 늘 자신을 제나라의 재상 관중과, 연나라의 악의에 비교했으나 당시 사람들은 이를 수긍하지 않았다. 오직 친한 벗으로 지내던 기주 박릉군 출신의 최주평, 예주 영천군 출신의 [[서서]](자 원직)들만이 그를 인정해 주었다. 참고로 위에 볼드체 친 제갈량 외모 미남-위너 인증은 정사 삼국지 쓴 진수 오피셜 인증임, 비슷하게 정사 공식 미남 참모로는 위나라의 [[순욱]], 오나라의 [[주유]]가 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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