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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 선사시대 [[일본 열도]]에는 죠몬인들이 살고 있었다. 죠몬인들은 수렵, 채집과 조잡한 농업을 경제기반으로 하여 살아가던 종족이었다. 이후 북방계 야요이인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파일:초대 천황 진무.jpg|400픽셀|섬네일|오른쪽|일본을 건국한 첫 천황인 [[진무 덴노]]. 일본 애들 말로는 150년 가까이 살고 95년 동안 제위했다는데 글쎄... 진실은 저 너머에...]] 기원전 7~8세기경 국가가 성립되었으며 이 때 최초로 천황(덴노)라는 것이 등장했다. 첫 덴노는 진무({{Lang|ja|神武}}) 덴노라고는 하지만 사실 일본 내에서도 일본의 첫 덴노로 알려져 있는 진무 덴노가 실존 인물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말이 많다. 일본 역사학자 대다수도 10대 덴노인 [[스진 덴노]](BC 148~AD 29 : 그나마 역사적으로 실존했다는 스진 덴노조차 180년을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는게 일본의 고대사이다)로 보는 것이 주류이고, 1~9대 덴노는 [[이주갑인상]]등을 하기 위한 주작으로 보는 것이 대부분. ㄴ '''는 건 완벽한 개소리 of 개소리이고, 실제로 일본에서 천황(덴노)이 등장한 건 [[중국]](당나라)으로부터 [[천황]] 칭호를 수입해서 본격적으로 쓴 게 정설이다.''' 그 이전까지 일본에서는 닥치고 대왕({{Lang|ja|大王 - おおきみ}}, 오오키미)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ㄴ 알았으니까 출처좀. 개소리 of 개소리라고 할만큼 확신에 찬 반박을 한다면 출처 정도는 껌이겠지? 그럼 출처 내놔바바. ㄴㄴ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하늘의 '황제'라는 칭호가 처음 나온 국가가 중궈니 일본이 천황이란 칭호를 사용한다는 것은 일본이 중궈애들 왕 칭호를 배껴 썼다는 걸 여실히 증명하는 팩트지 ㄴㄴ 천황이란 단어는 40대 덴무 덴노가 첫 사용했다. 당시 중국은 측천무후 치세였고 [[674년]]에 측천무후가 자기를 황제가 아닌 천황이라고 칭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우덜도 함 해보장께! 하면서 자기를 천황이라고 선언했다. 그 이전에는 어디에서도 천황이라는 단어의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다. 실제로 [[황제]] 칭호를 전세계적으로 가장 먼저 쓴 나라는 [[중국]] [[진시황]]때부터이지 절대로 일본이 아님을 밝혀둔다. 문명 성립 시기만 보면 중국은 당연하고 한반도보다도 짧은 역사를 지녔지만 이에 대해서 이상한 자부심을 갖지 말도록하자. 기원전 4400년에 파라오가 출현한 이집트와 기원전 7000년 경부터 문명이 시작된 메소포타미아(현재의 이라크 지역)이 현대에 어떤지를 생각해보면 국가의 잘 나가고 못 나가고와 그 지역의 역사의 길이와는 아무 관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당장 세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미국의 역사가 워싱턴 때부터 겨우 240년이다. 죠몬인들은 일본 열도에서 1만년 이상 주류종족으로 자리잡고 있었으나, 기원전 4~3세기경에 한반도와 중국에서 넘어온 야요이인들에게 숫적, 기술적으로 압도당하여 주류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야요이인들은 일본 열도에 선진화된 기술들을 이식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쌀 농사와 청동기 등이 있다. 이같은 문명의 전파는 일본 열도에 농업을 기반으로 한 고대 부족국가가 형성될 환경을 조성하였다. 초기의 일본 역사는 큐슈 및 [[혼슈]] 서쪽에서 서서히 혼슈 동북부로 영향력을 넓혀간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왜국(倭國)은 이미 기원전 중국의 '한서'에서 그 국명이 등판하지만, 최초로 중국과 정식으로 국교를 맺은 일본의 왕국은 '''야마타이'''국이었다. 야마타이의 여왕인 히미코는 당시 중국에서 가장 막강한 세력이었던 위(魏)나라의 천황인 [[조비]]에게 사절단을 보내 후한 대접을 받고 왜왕으로 책봉받았다. 이 야마타이국은 큐슈에 위치했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큐슈 야마토론 떡밥의 주 소재가 됐으나, 지금은 혼슈의 키나이 지방에서 야마토가 출발했다는게 다수론이다. 키나이의 비옥한 평야를 기반으로 수립된 일본 최초의 고대 국가인 '''야마토'''는 주변의 잡부족국가들을 쓸어담아 세력을 확장한 후, 지옥불반도의 [[백제|백제]]와 친교 관계를 맺고 긴밀한 동맹 관계를 형성하였다. 우호적인 외교적 관계를 토대로 양국 간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이 과정에서 백제로부터 대륙의 선진화 된 문화를 전수 받기에 이른다. [[File:헤이안.jpg|thumb|right|350px|고대 헤이안의 도시구조]] 7세기 후반 일명 [[당|당나라]] 따라하기 유행의 영향을 받은 쇼토쿠 태자에 의해 '''다이카 개신'''이 단행되어 대거 수입한 중국의 제도를 기반으로 한 중앙집권국가가 완성된다. 당시 일본은 수차례 수도를 바꾸다 결국 오늘날의 교토인 '''헤이안'''({{Lang|ja|平安}})에 안착하게 되었는데, 헤이안은 당시 일본의 권력이 집중된 정치도시로 리즈시절 인구가 약 20만에 이르렀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따라하기 운동은 헤이안 시대 일본의 발전과 함께 나타난 국뽕적인 조류인 국풍(國風) 운동에 의해 사그러들고, 9세기 말 당나라에서 황소의 난과 안록사의 난이 일어나 중국 상황이 개막장이 되자 견수사, 견당사와 같은 견중국사절단 제도가 영구히 폐지됨으로 그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일본에서 중국 문화의 영향력이 축소됨으로 인해 그 반동으로 고유 문화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헤이안 시대는 일본 문화가 그 아이덴티티를 확립한 시기이다. 일본의 고유문자인 가나가 이 시기에 확립되었고, 세계 최초의 장편소설인 '겐지 모노가타리'가 이 시대에 집필되었다. 헤이안 시대의 주역은 경쟁 가문들을 박살낸 후지와라 가문이었다. 후지와라 가문은 천황을 사실상의 바지사장으로 만들고, 중앙의 막강한 정치권력을 기반으로 전국에 '장원'이라 불리는 가문 사유지를 두고 이를 확장하였다. 이 장원제도는 일본이 대륙국가와 다른 길을 걸어가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 장원들은 물리적 거리, 그리고 교통상의 문제로 인해 지방의 유력자들에게 그 관리권이 위임되었고 장원을 위임경영하면서 부를 획득한 지방 유력자들이 호위무사를 고용하게 되었는데 이들이 사무라이의 기원이 된다. 또한 일본은 중국의 제도를 카피하면서 중국의 고유 사회제도인 양천제(良賤制)를 도입했지만 장원제도의 영향으로 양천제(그리고 노비제도)가 일본의 인문환경에 맞지않아 폐기되었는데 이 또한 지방권력의 강화에 그 원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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