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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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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존경받는 이유 == {{일뽕}} {{진실}} 1. 내각 제도 확립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행정부의 형태를 만들었다. 2. 헌법 제정 (아시아 최초) 행정부 권한이 막강해서 오늘날 기준에서는 악법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헌법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15개도 안 됐다. 헌법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다. 이 헌법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일왕은 만기를 총람하는 절대권력자인데 동시에 자비로운 존재다. 따라서 일왕은 국민에게 자신의 권력을 자비롭게 배분할 줄도 안다. 일왕은 국민에게 기본권을 베풀고, 의회를 만들고, 내각을 만들고, 재판소를 만든다...' 이와 같은 구조다. 따라서 일왕의 은혜를 입은 국민들은 일왕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논리가 만들어졌다. 이로써 일본은 삼권분립의 틀을 갖추게 됐다. 3. 선거 실시 (아시아 최초) 중의원(하원)은 유권자들의 선거로 구성됐다. 투표권은 전 국민의 1%한테만 줬는데 19세기에는 영국도 보통선거를 실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상한 일은 아니다. 보통선거란 건 의무교육 제도가 완비된 후에야 가능한 것이므로, 글자도 모르는 야만인들에게는 투표권을 안 주는 게 맞다. 그래서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국민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질 때마다 투표권을 더 많은 사람에게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다 많은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 이것이 일본이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렇게 말했을 정도로 투표권 확대에 신경을 많이 썼다. 이토 히로부미는 특히 투표권 확대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강했는지, 고종이 을사조약에 관해 백성들의 여론을 들어봐야 한다고 말하자 "여태까지 독재를 하시던 분이 이제와서 백성들한테 뭘 물어보십니까"라고 받아쳐서 고종이 아무 말도 못하게 만들었다. 4. 국회 개설 (아시아 최초)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는 양원제 국회의 틀을 만들었다. 이 공로로 일본 국회의사당에 이토의 동상이 세워졌다. 5. 치외법권 철폐 (아시아 최초) 1894년에 불평등조약을 개정해서 치외법권을 철폐했다. 불평등조약은 국력만 세다고 되는 건 아니다. 서양식 근대법 도입, 재판관 육성은 물론이고 곤장으로 사람을 패거나 주리를 트는 야만적 형벌을 싹다 없애야 한다. 그리고 입법도 왕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고 국회에서 이뤄져야 한다. 일본이 치외법권을 철폐했다는 건, 서구열강으로부터 일본의 사법체계와 입법체계가 선진적으로 변했다고 인정받은 거나 다름없었다. 이토는 일본 헌법, 민법, 상법 등을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기 때문에, 치외법권을 철폐하는 데 이토가 큰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6. 청일전쟁, 러일전쟁 반대 이토 히로부미는 청일전쟁, 러일전쟁에 다 반대했고, 영일동맹에도 반대했다. 침략전쟁을 성공시켰다느니 하는 말은 다 구라다. 청일전쟁은 일본 내에서도 승리 가능성이 높다고 봤지만, 이토는 전쟁하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청나라가 이토 히로부미의 말을 씹고 조선에 파병하는 바람에 전쟁이 시작됐다. 그리고 러시아하고 전쟁하면 안 된다고 영일동맹에도 반대했다. 영일동맹 맺으면 러시아를 자극할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강경파들이 이토의 말을 무시하고 영일동맹을 맺어버렸다. 그후에도 러일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러시아와 협상했지만, 니콜라이 2세가 이토 히로부미가 보낸 외교 서한을 읽씹하는 바람에 결국 이토도 전쟁에 찬성했다. 당시 니콜라이 2세는 일본한테 칼답장하면 가오가 상할까봐 읽씹 수준으로 답장을 늦게 했고, 일본은 니콜라이 2세가 답장을 느리게 하거나 읽씹을 하면서 뒤로는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토 히로부미의 외교 서한이 읽씹당하자, 일본은 러시아한테 선빵 맞기 전에 기습적으로 선제공격을 해야 무승부라도 가능하다며 전쟁을 감행했다. 각종 운빨이 터져서 간신히 승리하긴 했지만 일본은 1차대전 직전까지 파산 일보직전이었다. 사족을 붙이자면, 기습 선빵 → 초반 승리 → 중반 버티기 → 최후 결전 승리 → 강화조약... 러시아 상대로는 이 작전이 성공했는데, 미국 상대로는 중반 버티기에 실패하면서 참교육 당했다. 결론: 근대 문명이 끝날 때까지, 이토 히로부미는 아시아에서 가장 유능한 정치인이 맞다. 생전에는 아시아의 글래드스턴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어찌됐건 이새끼가 개씨발좆같은 침략자 쓰레기새끼라는건 잊지 말자. 일본에서 얘 빠는것도 근대화의 주역으로 빨아주는거지 조선침략의 주역으로 빨아주는게 아니니 잘 구분하자. 애초에 조선침략의 주역으로 빠는 애들은 [[넷우익|이런애들]] 밖에 없다. 씨발 이렇게 유능한 새끼가 업적을 [[제국주의]]로 다 말아처먹었네 ㄹㅇ 병신이긴 하다. 솔직히 대외관계를 잘만 이끌었어도 한국에서도 이 지랄로 평가받지는 않았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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