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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신아시리아 제국|아시리아]]가 세운 [[이집트 제26왕조|제26왕조]]([[사이스 왕조]]) === [[기원전 664년]],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통일하고 패권을 잡은 [[신아시리아 제국]]이 이집트를 쳐들어와 멤피스와 테베를 따먹고 기존의 누비아 왕조 [[이집트 제25왕조|25왕조]]를 축출했다. 이들은 이집트를 직접 통치하지는 않고, 대신 통치해줄 이집트 현지인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사이스]]라는 도시의 권력자 [[네코 1세]]를 파라오로 앉히고 사이스를 이집트 간접통치의 거점으로 삼았다. 그래서 수도 이름을 따서 [[사이스 왕조]]라고 부른다. [[상인 왕조]]라는 표현도 있다. 하지만 남쪽으로 밀려난 누비아의 [[타누타멘]]이 세력을 규합하고 이집트를 다시 회복하려고 했다. 이렇게 8년 동안 실랑이가 벌어졌고, 네코 1세는 이 전쟁 중에서 죽고 [[프삼티크 1세]]는 아시리아로 토꼈다. 그러나 프삼티크 1세가 [[아슈르바니팔]]과 함께 이집트로 컴백전을 벌이면서 결국 타누타멘의 세력은 [[기원전 656년]]에 축출당하고, 누비아는 두번다시 이집트에서 알짱거리지 못하게 되었다. 이후 프삼티크 1세는 본토 아시리아의 아슈르바니팔이 뒤지고 혼란이 일어나는 시기에도 끝까지 아시리아에 충성을 바쳤고 [[기원전 610년]] 사망했다. 다음 즉위한 [[네코 2세]]는 [[신바빌로니아 제국]]이 아시리아를 괴롭히자 아시리아를 돕기 위해 열심히 싸웠다. 이때 [[유다 왕국]]과도 싸워서, 성경에서는 '느고'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이 네코 2세 왕은 페니키아인들을 시켜 [[아프리카]] 대륙을 한바퀴 삥 돌게 시킨 걸로도 유명하다. 이후 아시리아가 없는 채로 독립적으로 운영되다가, [[아흐모세 2세]] 사후 [[프삼티크 3세]]의 치세에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하고 최대 규모 제국을 세운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가 쳐들어왔다. [[캄비세스 2세]]가 이끄는 페르시아군에게 처참하게 쳐발린 이집트는 [[기원전 525년]] 정복당해 페르시아의 일부가 되었다. ===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페르시아]]의 1차 지배기 [[이집트 제27왕조|제27왕조]]([[아케메네스 왕조]]) === [[기원전 525년]] 이집트를 정복한 페르시아의 [[샤한샤]] [[캄비세스 2세]]는 이집트의 파라오를 자칭하며 최초의 [[아리아인]] 출신 파라오가 되었고, [[프삼티크 3세]]의 일족을 죽이거나 노예로 만들면서 이집트를 짓밟았다. 이후 이집트의 문화를 강압적으로 탄압하며 폭정을 펼쳤다. 하지만 [[기원전 522년]] [[9월]] [[다리우스 1세]]가 페르시아의 샤한샤로 즉위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게 된다. 페디바스테트 3세라는 양반이 갑자기 죽창을 들고 설쳐서, 정부에서 이집트의 여론을 조사해본 결과 세금이 존나 높았기 때문에 반란이 터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일단 세금부터 잡고, 그 이후에는 이집트 문화도 존중해가면서 나라를 다스렸다. [[기원전 486년]] 다리우스 사후에는 반란이 다시 증가하게 된다. [[크세르크세스 1세]] 때는 [[페르시아 전쟁]]에 쓸라고 이집트에서 자원을 털어갔고, [[조로아스터교]]를 강요하는 일도 있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때는 이나로스 3세라는 인간이 깝치다가 항복하면 봐주겠다고 속여서 이나로스가 gg쳤는데,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그를 통수치고 죽여버렸다. [[기원전 404년]] [[다리우스 2세]]가 뒤지자 [[아미르타이오스]]가 혼틈 반란을 일으켜 페르시아 제국을 몰아낸 다음 일시적으로 이집트를 재독립시켰다. 이렇게 페르시아의 1차 지배기가 끝났다. === 페르시아로부터의 독립기 ([[이집트 제28왕조|제28]], [[이집트 제29왕조|29]], [[이집트 제30왕조|30왕조]]) === [[기원전 404년]] [[아미르타이오스]]가 이집트에서 페르시아를 몰아내고 [[이집트 제28왕조]]를 세웠다. 하지만 멘데스에서 [[네파루드 1세]]가 아미르타이오스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전쟁에서 승리, [[기원전 398년]]에 아미르타이오스를 처형하면서 6년 만에 왕조가 교체되었다. 네파루드 1세가 세운 [[이집트 제29왕조]]는 수도를 멘데스로 옮기고 이집트를 부활시키려고 했다. 그리고 페르시아의 적대국가인 [[아테네]]나 [[스파르타]]를 도왔다. [[하코르]] 때는 아테네와 동맹을 맺었다. 하지만 [[기원전 380년]] [[네파루드 2세]]가 [[넥타네보 1세]]의 반란으로 쫓겨나면서 또 왕조가 교체되었다. 넥타네보 1세의 [[이집트 제30왕조]]는 최후의 이집트인 왕조였다. 30왕조는 지난 수백년간 고통받던 것을 다 씻어내고 [[이집트 문명]]을 부활시키고자 했다. [[기원전 374년]] 페르시아의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가 침입해오자 이를 막아냈다. 넥타네보 1세 사후 [[테오스]]가 즉위했지만 [[넥타네보 2세]]가 테오스를 몰아내고 다음 파라오가 되었다. 넥타네보 2세는 최후의 이집트인 파라오였다. 그는 훌륭한 통치 솜씨로 이집트의 문화를 부흥시켰다. 하지만, 데자뷰가 일어나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바로 [[이집트 제25왕조|25왕조]] vs 아시리아 때처럼 이집트만 잘나가던 게 아니라 더 잘나가는 강대국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집트의 전 주인님 페르시아였다. 페르시아는 한동안 내전 때문에 이집트가 독립해나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지만,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때 모든 혼란이 끝나고 과거의 페르시아로 돌아왔다. 이제 감히 페르시아로부터 탈주한 이집트 새끼들을 진압하러 갈 때가 되었다고 판단, 이집트를 쳐들어갔다. [[기원전 351년]] 1차 침공은 막아냈으나, [[기원전 343년]] 2차 침공 때 패배하며 2차 페르시아 지배기를 맞게 된다. ===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페르시아]]의 2차 지배기 [[이집트 제31왕조|제31왕조]]([[아케메네스 왕조]]) ===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는 [[기원전 343년]] 이집트를 재차 침입하고 파라오 자리를 먹었다. 이 시기를 31왕조라고 부른다. [[기원전 339년]]쯤 넥타네보 2세를 완전히 몰아낸 다음, 통수를 때린 이집트에게 큰 복수가 뒤따랐다. 이집트의 수많은 문화유산들과 신전들이 파괴되었고 이집트의 전통 종교는 강력한 탄압을 받았다. 하지만 이집트인들에게는 정말 다행인 것이 하나 있었다. 이 페르시아 2차 지배기는 단 11년밖에 가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 북부를 통일한 [[마케도니아 왕국]]은 [[기원전 336년]] [[필리포스 2세]]가 죽고 나서 아들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넘어갔다. 그 전설의 알렉산더가 등판한 것이다. 그리스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동안, 페르시아에서는 [[기원전 338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가 뒤지고 다시금 혼란기가 찾아왔다. 2년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4세]]가 다스렸으나 죽고, [[기원전 336년]] [[다리우스 3세]]가 즉위하며 알렉산더와 다리우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기원전 332년]] [[티레 공방전]]에서 페르시아군을 격파한 알렉산더는 그 기세로 이집트에 들어왔고 이로서 31왕조도 끝나고 이집트 말기 왕조 시대도 끝나면서 [[헬레니즘]] 시대에 들어서게 된다. 이집트인들은 알렉산더를 넥타네보 2세의 숨겨진 아들로 여기며, 해방자를 맞이하듯이 환영했다. 이집트는 이때부터 [[아르게아스 왕조]]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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