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이시애의 난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반란군의 진격과 진압 준비 == 강효문이 참수 당한 뒤, 중앙에서 임명되었던 길주 목사 설정신(薛丁新, 澄新), [[부령군|부령부]]사 김익수(金益壽) 등의 모가지도 뎅겅당했고 이시애는 중앙에 사신을 보내서 '강효문이 [[한명회]], [[신숙주]] 등의 중신과 결탁해 반란을 일으키려고 해서 둘을 죽였습네다. 그래서 그 새끼 작업 좀 쳤습네다.'라고 하면서 반란 보고를 받은 조정의 높으신 분들에게 구라를 쳤다. 하지만 세조는 구라인 것을 알면서도 명분을 틀어 막기 위해 한명회, 신숙주등 반란군이 언급한 중신들을 구금하고 진압군을 편성했다. 그는 [[구성군#왕족|구성군]]을 함길도 + [[강원도]] + [[평안도]] + [[황해도]]의 4도병마도총사로, 조석문(曺錫文)을 부총사로, 허종(許琮)을 함길도 절도사로, 강순+ 어유소 + [[남이]] 등을 대장으로 삼아 6도 군사의 3만 대군을 절도사의 근거지인 함흥으로 출병했다. 한편 이시애는 [[단천군|단천]], [[북청군|북청]], [[홍원군|홍원]]을 지나서 함흥으로 남하하면서 점령지에 파견된 관료들을 모두 죽이고 자기는 왕명을 받은 절도사라고 구라를 치면서 함흥을 점령, 관찰사 신면<ref>《공주의 남자》에도 등장했던 [[신숙주]]의 아들이다.</ref> 을 죽이고 체찰사 윤자운을 체포했다.<ref>얼마 못 가서 탈출했다.</ref> 이러한 반란군의 기세 때문에 진압군 3만은 [[철원]]에서 더 이상 북상하지 못했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