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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주의 황제 == 근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오삼계에게 대의 명분이 있었을까? 산해관 열어준것도 이 새끼, 청나라랑 합세해서 이자성군 깨부수고 번왕 먹은 것도 이 새끼, 남명을 싸그리 말려버리고 미얀마까지 도망친 주유랑을 잡아와서 목 졸라 죽인 것도 이 새끼이다. 명나라 입장에서 이 새끼는 걍 원탑 오브 원탑 역적이다. 청나라 입장에서도 반란 일으킨 시점에서 역적이다. 당연히 기존 명나라와 한족 세력들은 오삼계를 역적이라 칭하며 전혀 협력해주지 않았다. 다른 두 번들하고도 서로 손발이 안 맞고 있었다. 결국 삼번의 난은 경정충이 대만 정씨왕국의 지원을 받아놓고 지들끼리 싸우고, 상가희는 끝까지 청에게 충성했는데 아들 상지신이 나 번왕 자리 달라고 난 일으켰다가 허무하게 강희제에게 끔살당하는 등 막장으로 갔다. 경정충은 항복했다가 능지처참당하고, 오삼계군은 두 동맹 번을 잃고 청에게 박살이 나기 시작했다. 말려가는 반란군이 늘 그렇듯이 호북성 형주를 창천부라 개칭하고 도읍으로 삼고 국호를 주(周), 연호를 소무(昭武)로 하고 1678년 3월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나 같은 해 8월, 달랑 5개월동안 제위에 있다가 노쇠화로 뒤졌다. 손자 오세번이 오주의 2대 황제가 되었지만 사천 지방까지 청나라에게 죄다 털린 다음 오세번은 자살, 이후 근거지 곤명이 함락당하며 삼번의 난은 그리 진압되고 오삼계는 부관참시당해서 저잣거리에 내걸렸다. 배신자의 비참한 최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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