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아돌프 히틀러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생애 == 아비는 [[알로이스 히틀러]]. 이 알로이스 병신새끼도 존나 골때리는게 지 누나가 낳은 딸과 [[성교]]를 했고 그래서 태어난 게 히틀러다. 그러니까 아예 [[근친상간]]으로 태어났다. 인생 시발점부터 병신이었다. 근데 사실 판사급 재산을 줄 수 있는 집안에 찐따 보지년 같았다는 찐따들 주장과 달리 씹근육남이었다. 거기에 군대에서 격투기 + 받은 놈들이 대부분 뒤졌을 정도로 넘사벽인 전공까지 얻음. 평범이 목표면 날 때부터 실패할 수 없게 태어난 인간이다. ㄴ [[에이브러햄 링컨]] 어리둥절. 아버지가 웃기게도 아버지 겸 작은할아버지, 어머니가 웃기게도 어머니 겸 사촌누나인 개족보로 태어난 것이다. 독일이 아닌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독일은 유학으로 가게됨. 그리고 존나 의외로 그림 그리던 예체능충이었다. <성모 마리아와 유년 시절의 예수>, <바다의 야상곡> 등 인류 최악의 학살자가 그렸다곤 믿겨지지 않는 작품들이 있다. 그냥 알아줬더라면 그래도 그렇지 않았더라도 그냥 유망한 그림이나 그리던 사람으로 남지 않았을까 싶음 길거리 그림쟁이 시절에도 종종 노숙자와 부랑자들에게 빵을 사주고 연설 놀이를 했다고 한다. 노숙자들은 일단 빵 사준 놈이라서 그런지 히틀러가 연설을 할때마다 환호를 하고 경청했고 거기서 히틀러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때 그림쟁이 노릇하면서 가난하게 살았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히려 공무원이던 지 애비가 물려준 재산에 친척들 재산까지 먹었으며 덤으로 나오는 각종 연금에다가 가끔 그림 그리는 알바노릇으로 버는 부수입으로 갓수생활을 영위했다. 이때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에 감명을 받아 바그너의 오페라를 자주보러 다녔고 이 때문에 바그너는 졸지에 억울하게 부관참시를 당하고 애꿎은 바그너 음악 애호가들까지 곱지않은 시선을 받게된다. ㄴ사실 바그너는 19세기 초중반부터 자기에게 비평을 한 유대계를 상대로 반유대주의를 펼쳤으니 딱히 부관참시라고 할 필요는 없다. 그의 저서 '음악속의 유대주의'는 그 증거이다. 대학은 가고 싶어해서 비엔나 콩쿨에 지원했으나 왜인지 광탈크리. 그래서 열이 뻗쳐 린츠직업전문학교에 들어가서 흑화된다. 사실 심사관들이 히틀러 실기그림을 보더니 '''잘 그리긴 했는데 그림에서 아무것도 호소하는 게 없어. 영혼이 죽은 그림이지. 그림을 이 따위로 잘그리기만 할 거면 사진을 복사기로 밀어버린 거랑 뭐가 달라? 낙방!'''이라고 한 것이었다. 오죽하니 히틀러 그림을 본 미술업계 종사자들은 되려 히틀러에게 화가가 아니라 건축설계사 자리를 알선할 정도였다. ㄴ 당시 꼰대들이 많아서 그런 거 아니냐. 중졸이던데 딱 보고 이 새끼 병신이네 했을 듯. 애초에 지원이 불가능했음 중졸이라 대신 알선해준 게 건축업자. ㄴ 그걸 넘어서 당시 미술 사조가 이미 현실 표현이 아닌 인상적이고 추상적인걸 강조하는 시대였는데 그때까지도 구닥다리 방식의 그림을 그린 히틀러가 떨어질 것은 당연한 거였다. [[파일:린츠직훈시절.jpg]] 비엔나 콩쿨에 탈락하자 린츠에 있는 실업학교(린츠레알슐레)에 입학해서 졸업했다. 동기생이 철학계의 이단아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다. 이리저리 이주하며 살다가 독일 뮌헨에 살게 되었는데, 오스트리아군에 징집당하자 병역기피하고 배째라를 시전했으나 1차대전이 발발하자 전쟁나면 주워먹을 게 많다고 생각한 히틀러는 뭘 주워먹든 꼭 주워먹겠다는 생각으로 독일군에 입대하여 복무하다가 히틀러가 상병때 전쟁이 끝나자 군대 제대를 했는데, 군대에 계속 붙어있고 싶다고 중대장을 조르자 중대장이 베르사유 조약 때문에 사병을 축소해야 되서 안 되니 군대 스파이 노릇을 하라고 한다. 그래서 히틀러가 어디로 가면 되냐고 했는데 그게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 당', 즉 [[나치]]였다. 이름 때문에 진짜 사회주의 정당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수구꼴통 단체들이 거꾸로 좌파 이름을 쓴 거다. 독일 내 외노자 척결을 주장하던 수구보수 단체다. 당시 전쟁이 끝난 직후라 독일이 깽판이었고 보수집단 공산집단 별 집단들이 정당을 칭하며 다 난립하던 시대라 군대 입장에서는 그들이 폭동이라도 일으킬까 두려워 스파이 혹은 프락치 역할을 할 인간들을 그곳에 평당원처럼 보내 심어놓고 정보를 염탐하곤 했다. ㄴ 그런데 나치당의 사상 중에는 좌익 개념도 있지않았냐? ㄴ 히틀러가 이용해먹다가 정권 잡고 다 학살함. 참고로 히틀러는 공산주의나 민주주의는 물론 유대인들도 앞에서는 후빨한 적이 있다. 물론 '민주적'으로 정권 잡고나서는... 그 후 히틀러는 나치당으로 가기로 하고 별 생각없이 그곳에 갔다가 수구꼴통 아재들이 많은 걸 보고 호기심이 들었는데, 그가 철십자 훈장 수여자임을 밝히자 군대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들이 엄청나게 환영을 했고 거기다가 히틀러의 몽상적인 연설까지 나오자 더 큰 환대를 받게 되고 거기서 쾌감을 얻은 히틀러는 군대 스파이 일을 때려치우고 거기 정식 가입하여 활동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기가 1차 대전 참전용사라는 걸 아주 사골까지 우려쳐먹는다. 들어간지 한달만에 꽤 중요한 당직을 맡을 정도로 인정받는다. 그때부터 연설과 선동질을 본격적으로 실천하며 연구하기 시작한다. ㄴ ㄹㅇ 히틀러는 연설가 + 몽상가로 타고났다. 이거 빼면 시체인 거 같다. 거기에 시대적인 버프까지. 그러다가 얼마 안가 대외협력부장 비스무레한 높은 직책을 얻게 되고 당시 사민주의 성향 바이에른 의회에 불만이 있던 다른 집단들과 연계하여 쿠데타까지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검은 셔츠 군단행진을 벌여서 정권을 잡는 걸 보고, 역시 나도 쿠데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히틀러는 뮌헨 시장까지 꼬셔 인생 첫번째 쿠데타인 뮌헨 맥주홀 폭동을 일으켰으나 원래 계획대로 진행도 하지 않고 히틀러 측에서 주도권을 잡으려고 적은 수의 병력으로 덤비는 빠가짓을 하다가 좆망하게 된다. 그리고 굴러온 돌이었던 히틀러를 좆같이 보던 박힌 돌들이 배신하는 통수도 쳤다. 그러나 쿠데타로 재판을 받는 중 독일에 대한 자신의 제국주의 사상을 줄기차게 연설하며 독일 국민들의 국뽕을 제대로 울려버렸다. 하여간 망상을 존나게 잘 해서 간지나는 제국을 만들자는 그 야심이 1차 대전으로 피폐한 독일 국민들을 현혹했다. 이로 인해 당시 독일 극우 신문들이 히틀러의 똥꼬를 빨아대며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고 히틀러를 '애국을 위해 자기를 희생한 영웅'으로 기사를 써대버렸다. 히틀러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사건으로 독일 극우보수 세력 내 최고 스타가 된 히틀러는 심지어 재수좋게 판사들까지 보수 성향 판사들을 만나서 쿠데타를 일으켰음에도 사형이나 종신형 같은 게 아닌 징역 5년을 선고받게 된다. 그나마도 삼분의 일도 안 살고 나옴. 독일 전역의 스타가 되어버린 히틀러는 지금 헬조선 높으신 분들이 감옥 갈때처럼 먹고 싶은거 맘대로 먹고 감옥에서 선생님이라고 불리우고 거의 매일 전국에서 찾아온 극우 아줌마 아저씨 팬들의 면회를 받는 등 감옥의 왕급으로 특별한 대우 속에 살며, 그 속에서 더욱더 망상에 빠져 나의 투쟁이라는 자서전을 쓰다가 (30살밖에 안된 어린 새끼가 뭔 자서전을 써) 징역 1년이 조금 넘자 가석방으로 출소한 뒤 [[요제프 괴벨스]]와 함께 혓바닥과 손가락 그리고 폭력을 통해 나치당 1인자가 되었다. 당시 나치는 히틀러와 함께 일진들이 뮌헨 맥주홀 폭동에 동원되었다가 감옥에 가고 붕괴되는 바람에 찐따들만 남아서 사실상 힘도 야심도 없던 조직이었고 쩌리들만 있었는데 강력한 전국적 지지를 받던 히틀러는 출소한 자신의 편들을 데리고 가 남아있던 찐따 잔당을 쓸어버리고 주도자가 된 것이다. 그 후 맥주홀 폭동에서 생긴 인지도를 이용하여 선동질을 계속 하였고 그렇게 인기가 올라가 국회의원에도 당선되고 중앙정치로 진출한다. 후에 괴벨스나 기타 그의 부하들도 진출한다.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은 공산당원부터 극우 왕당파까지 별의별 병신들이 대권 잡겠다고 설쳐대던 막장이었는데, 히틀러와 나치당은 적절한 줄타기와 꼬리끊기, 야합을 통해 연정을 벌여 주류 정당으로 등극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통 히틀러를 많은 정치인들의 말을 통해 '선동만을 이용하여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다'는 이미지로만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국회의원된 이후 히틀러는 선동의 달인일 뿐만 아니라 정치공작의 실력도 매우 훌륭했고 이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다고 보는게 자연스럽다. 대부분 모르는 사실인데, 히틀러는 그 선동만으로 승부했던 대통령 선거를 두번이나 떨어진 사람이다. (그가 대통령이 된건 정치공작과 친위쿠데타로 반대파의 씨를 10% 이하로 말려버린 이후의 선거다.) 당시 두 번의 대선 후보 상대가 히틀러의 이빨까기 선동으로도 넘을 수 없는 절대적 지지를 가졌던 파울 폰 힌덴부르크 장군이었고, 힌덴부르크랑 정치성향도 안 맞는 사민당이 히틀러 꼴을 보기 싫어 대선후보를 안 내고 은근히 힌덴부르크를 밀기까지 하자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던 것. (심지어 힌덴부르크는 선거유세에서 '아니 씨발 내가 애국보수 대표 장군인데 무슨 보수랑 맞지도 않는 사회민주주의자들하고 연합했다라고 그래 씨발놈들아' 하면서 사민당 연계를 부정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사민당 지지자들도 '히틀러 병신보다는 장군 할배가 낫다'며 힌덴부르크를 대통령으로 찍어댔다.) 히틀러는 여기서 포기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다시 대선으로 도전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힌덴부르크가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은 80대 노인임을 (당시 독일의 평균수명은 60세였다.) 이용해, 확실하게 힌덴부르크의 줄을 타서 후계자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본인을 물 먹이려는 사민당의 씨를 말려 다음 대통령 당선 확률 100%를 찍는다는 수립 계획을 세운다. 결과적으로 이는 히틀러 입장에서 완벽한 정치적 묘수가 되어버리는데, 힌덴부르크에게 총리 자리를 달라고 하면서 '각하, 제가 총리만 되면 꼴보기 싫은 공산당 좆밥새끼들도 조져드리고, 사민당 놈들은 의원 수가 많아 완전히 조지지 못하지만 깝치지는 못할 정도로 꽉꽉 눌러드리겠습니다'라고 유혹하여 성공한 것이다. 처음에 거부하던 힌덴부르크는 고민 끝에 허락하고 이때부터 히틀러 전성시대가 시작된다. 이는 힌덴부르크 본인도 대통령 처음할때는 좋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늙어서 지친 탓에 정치 활동이 귀찮아졌던 것이 컸다. 그렇게 대통령 힌덴부르크를 이용해 쳐먹어서 총리 겸 장관이 되고 자기 부하들도 장관을 시킨 뒤에는 단기간 힌덴부르크의 후계자 자리를 먹기 위해 거의 막장으로 행동하는데, 80대 노인네였던 힌덴부르크가 건강이 안 좋아져 어차피 곧 죽으면 자기가 후계자니까 일단 방해가 되는 공산당 의원들을 싸그리 감옥에 쳐넣고 몇몇 쩌리 당들과 연대를 하여 자신에게 반대하던 사민당까지 누르며 대통령 맘대로 할 수 있는 수권법을 만든다. 물론 그 중간중간에 힌덴부르크에게 왜곡된 보고를 (자기가 한 일에 반대하는 놈들은 빨갱이 말고 없다는 식) 해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할아버지를 구워삶았다. 당시 힌덴부르크가 치매라는 말이 있는데 일단 상태는 정상이었다고 한다. 참고로 수권법은 전통적 독일 귀족 붕괴 후 자리를 차지한 빡대가리들이 똑똑한 우리가 히틀러 정도는 좆바를 수 있겠지? 이렇게 망상하다 통과시켜준다. 그리고 명분까지 손에 넣은 히틀러가 무력 시위하면서 원래 힘으로도 할 수 있었는데 명분 얻을라고 봐줬다 ㅅㅂ들아라고 호통치자 아무것도 못하고 아닥했다. 그런 다음 나치나 나치랑 연대하던 깡패집단 돌격대의 대장 에른스트 룀(권력이 생기자 히틀러에게 조금씩 개기기 시작했음)과 그외 내부에 생긴 반대파 간부들, 그리고 히틀러가 총리 하기 이전에 총리 했던 인간 등 주요 히틀러 반대파 인물 수십명과 그 부하 수백명을 총살하는, 사실상의 친위쿠데타인 '장검의 밤'을 일으켜서 자기 권력을 만천하에 내 보인다. 근데 총으로 쐈는데 왜 장검의 밤이야? ㄴ 대다수는 총으로 쏴 죽였지만 칼로 찔러 죽인 사람들도 있었다. 죽인게 수백명인데 어떻게 100% 총으로만 죽였겠냐? 친위대들이 찾아가서 탕탕거리다가 그 중에 총도 좀 피하고 덤비는 놈 있으면 칼로 찌르고 어떤 놈은 뭐 몽둥이 같은 걸로 두들겨 패 죽이기도 하고 그랬던 거다. 사실 기습 형태로 집에 쳐들어가서 죽인 경우가 많아서, 학살 대상자들의 집사나 하인 등 정치적으로 상관없고 진짜 무고한 사람들도 놀라서 "우리 어르신한테 뭔 짓이여?" 하고 덤비다가 죽거나 병신이 되었다. 독일 언론들도 이에 대해 찍소리도 못했다. 늙어서 판단력이 떨어진 힌덴부르크는 히틀러가 '나라를 위협하는 자들을 청산했습니다'라고 보고하자 잘했다라고 칭찬까지 한다. 이를 본 군중들은 '아 이제 히틀러가 진짜 왕이구나'라고 생각하고 히틀러에게 복종을 시작한다. 사실 이 친위 쿠데타 '장검의 밤'이야말로 히틀러가 대통령 안 될 가능성을 제로로 만들어버린 사건으로 일부 사학계는 이를 이유로 히틀러를 세계적 쿠데타 기반 집권 권력자 계열에 포함시키려 하기도 한다. 쿠데타는 꼭 정권이 없는 쪽만 해야 하는게 아니며 대통령 선거로 당선된 놈이 했다고 쿠데타가 아닌 것도 아니라는 걸 명심하자. 쿠데타는 불법적 폭력으로 국가권력의 일부 혹은 대부분을 챙기는 행위다. 권력 70% 가진 놈이 90% 되려고 폭력 쓰는 것도 쿠데타다. 20%를 폭력으로 뒤엎어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 뒤 몇 달 못 가 할배 대통령 힌덴부르크가 결국 노환으로 죽고 히틀러는 '가카께서 나에게 무거운 임무 (대통령)를 지워주시며 타계하셨다'라고 또 선동 연설을 하여 이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히틀러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된다. 그리하여 대통령 겸 총리, 즉 총통이라는 말로 불리우는 절대 권력자 아돌프 히틀러가 탄생했다. 말은 법치주의 민주주의 공화국이지만 사실 히틀러 한명이 모든 권력을 지닌 황제와 다를바 없어 역사학계에서는 이를 '제국'으로 부르기도 한다. 독일에서는 원래 그렇게 부르지만 독일의 '제국'을 의미하는 단어는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제국과 기원이 다르고 복합적 뜻이라서 오히려 독일식 직역으로 '제국이라 부르기에 제국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애매하다. 다른 국가 사학계에서도 제국이라 부르는 경우가 있다는게 중요하다. 히틀러 때문에 생긴 '총통'이라는 단어가, 이후 실제 세계 근현대사에서 다시는 총통이 (대통령 겸 총리) 나온 적이 없음에도 (물론 대통령이 있으나마나한 정치 체계하의 총리 혹은 총리가 있으나마나한 대통령 등은 많이 있었다.) 소설, 만화, 영화 등 여러 허구예술 영역에서 사용되게 된다. 그 이미지가 고대적인 일인 절대 권력이면서도 현대적인 민주주의로 선출된 지도자란 명목적인 개념은 유지하는, 정말 모호하면서도 강력한 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악명높은 수권법을 기반하여 헌법 위에 군림하는 깡패로 등극하면서 나치 독일이 성립됐다. 히틀러는 본래 지병이 있었고, 전쟁 중에는 정서 불안이 있었는데 주치의인 테어도어 모렐이 처방해 준 약을 복용하니 증상들이 싹 날아갔다. 하지만 그 약은 사실 마약이었다. 당대에는 마약이라는 개념이 미비했던것도 있지만 히틀러 본인도 지가 쳐먹는 약이 뭔지 관심도 없었다고 한다. [[금진흑챙]]을 주장하며 2차세계대전을 일으켜 한때 유럽 대부분을 정복하였으나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을 포함한 연합국들의 다굴빵에 의해 영혼까지 털린 후 지하 벙커에서 배우자 에바 브라운과 함께 007빵하다가 죽었다. 뒤지기 전에 최후의 만찬으로 빵을 처 드셨다고 한다. 그의 명령에 의해 유럽 전역에서 죄없는 유대인, 슬라브인, 장애인, 집시, 똥꼬충이나 찐따 같은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게르만인들이 인종청소를 빌미로 목숨을 잃었으며 생체실험에 희생되었다. === 최후 === '''어떻게 최후를 맞이한거야?''' 마지막으로 독약을 먹고 아돌프는 [[발터 PPK|권총]]으로 히틀러라는 악마를 죽이는데 성공한다.하지만 히틀러는 아돌프이기도 하여서 결국 악마 히틀러와 함께 죽었다.. 일각에서는 자신과 키가 똑같은 26살짜리 러시아 여자의 코에 총을 갈겨 얼굴을 알 수 없게 만들어 죽이고 그 시체에 자기 옷을 입힌 뒤 버리고 측근들에게 그 시체를 자기 시체라고 떠벌리게 시킨 뒤 비행기로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까지 간 후 거기서 자기들이 탄 비행기를 고의로 폭파시킨 뒤 잠수함으로 아르헨티나의 마르델플라타로 도망쳐서 평생 거기서 살았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근데 이건 확실하게 개소리인게 그 당시 독일과 베를린은 완전히 포위된 상태였는데다 골격만봐도 꼬추인지 봊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어설픈 카게무샤 드립이다. 히틀러가 남미로 도망쳐서 천수를 누렸다는 음모론도 많다. 사실 히틀러가 평소에 빨던 약들을 한번 보면 1945년까지 살아있었다는게 정말 용한 수준인데 히틀러 탈출설들이 사실이라하더라도 히틀러는 오래 못 살고 죽었을거다. 유독 찐따들을 학살(누가 유대인인가는 우덜이 정한다라는 씹간지 명언도 남겼다.)해서인지 다른 전범들과 다르게 유일하게 반인륜적이라는 칭호를 획득했다. 열등하다고 여겨졌던 슬라브 좌빨 새끼들도 생각보다 비군사적으로는 많이 안 뒤졌는데, 유대인들만 특히 많이 뒤진 이유가 찐따처럼 좆같다 이 이유다. ㄴ실제로 당시 유대인들은 유독 씹좌빨들이 많았다고 한다. 유대인들의 금수저에 대한 증오와 대가리 깨기 능력이 얼마나 탁월한 지 로스차일드마저 따르는 유대인들이 거의 없이 유대인 새끼들과 엮이지 않으려고 했다. 유대인 마을에 있었을 때는 튀어 보이지 않게 조심하고 타민족 귀족들 후빨하다 탈출 가능해지자마자 바로 탈출했을 정도. === 성격 === 히틀러 집안의 주치의이었던 에드워드 블로흐에 따르면 어린 시절부터 성격은 평범했다고 한다. 1차대전 때 그와 같은 부대에서 복무했던 병사들조차 히틀러의 성격은 평범하고 조용했다고 증언한다. 동지였던 [[베니토 무솔리니]]가 개인적인 성격도 호탕하고 마초같았던 것에 비하면 대조적. 무솔리니가 체육덕후라 1934년 월드컵을 이탈리아가 개최하자 아르헨티나에서 루이스 몬티, 엔리케 과이타, 라이문도 올시 등 선수 3명을 훔치고 매 경기마다 상대 선수에게 자기 군대 총칼 구경시켜주는 방법으로 우승하고야 말았던 것에 비해 미술 덕후인 히틀러는 주구장창 얌전하게 그림만 그려댔다. 또한 화도 잘 내지 않는데다 자신의 부하들이나 여자들에게도 상냥했고, 아이와 노인들에게도 따뜻하게 대했다고 한다. 심지어 자기 주방장인 콘스탄체 만치아를리는 정황상 유대인임이 확실해 보였는데도, 히틀러는 눈감아주기까지 했다. 히틀러가 저질렀던 수많은 악행들을 보면 도저히 상상이 안 가는 성격. 오죽하면 한 때, 히틀러를 추종했던 지지자들이나 히틀러의 가족 및 친척, 그리고 그의 친구들조차 히틀러가 [[홀로코스트]]를 명령하여 주도한 사실을 전혀 몰랐고, 명백한 증거가 나오지 전까지 그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변호할 정도였다. 그의 깡패 기질은 자신이 세운 좆도 안되는 작전을 장군들에게 강요할 때나 있었지 평상시에는 너그럽고 호방한 성격이라 사람들이 좋아했다. 근데 그럼 뭐하냐, 사람을 2천만명 넘게 죽였는데. ㄴ원래 유대인 정하는 것도 우덜식이라 지들끼리는 걸리는 새끼 있어도 걍 넘어갔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