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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활동 == {{youtube|1zjwcpCMZ3c}} {{인용문|'''바바리맨을 잡아야지 바바리를 남자들 못입게 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아동 청소년 규제 토론회에서}} 1999년 10월 2일부터 군 가산점 부활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성재기 말고도 [[정채기]], [[한지환]], [[김재경]](가수 2명과는 동명이인인 남성 운동가이다.), [[이경수]] 등과 함께 군 가산점 부활 운동을 벌였다. 당시 이화여자대학교 졸업생 이유진과 이화여자대학교 4학년 재학생 조경옥, 박은주, 김정원, 김은정 및 연세대학교 4학년 재학생 장애인 김형수 등 6명이 군 가산점에 대한 위헌신청을 대법원에 제기하여 승소했다. 남성인권운동을 했다는데, 사실 그는 남성인권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도 못했다. 그의 활동 전이나 후나 남성인권은 전혀 변화가 없다. 그러니 전태일과 비교하는게 지랄이란 소리나 듣지 메갈들이 날뛰는거 보면 오히려 더 심해진거 같다. 그가 생전에 주로 하던 일은 피켓시위, 매맞는 남편 소송비용, 치료비용 대주기, 성폭행 누명쓴 남자 소송비용, 변호사선임 등의 봉사 활동이며 그가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고 정성들인 행동은 트위터에서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꼴페미들과의 키배였다. 매맞는 남편과 가출 청소년 쉼터도 운영했고, 성폭행 누명을 쓴 남자들의 소송비도 대신 내줬다. [[1994년]] [[한국]]에 남권운동과 남성 인권 운동을 처음 소개한 [[정채기]]나 그밖에 [[한지환]], [[김재경]], [[이경수]] 등과는 달리 여성부 폐지 운동, 여성단체 무용론, 여성단체 통폐합 등을 주장했다. 암튼 [[군 가산점]] 폐지에 이어 [[호주제]]까지 폐지되면서 성재기는 [[페미니즘]]에 대한 적극적인 공격, [[여성부]] 폐지 운동, 여성단체 통폐합 운동, 남자들에게 가정에서 탈출하자는 남성해방운동론을 외쳤다. 성재기는 처음에 아버지, 가장을 존중해주자 했다. 어버이날 엄마만 모성애만 강조한다고 아버지들이 나가서 고생하고 희생하는건 왜 안알아주냐며 [[2010년]] [[5월 8일]]부터 매년 [[어버이날]] [[서울시청]]광장에 나가 아버지도 힘들다, 아버지 수고했습니다는 아무도 말하지 않느냐고 피켓시위했다. 즉 아빠 힘내세요라는 노래가 여성 성차별이랑 동급이라는 폐미들이랑 같은 레벨임을 남들한테 어필하고 다녔다 :사회현상이랑 그냥 애들 부르는 노래랑 같냐? 노래는 그냥 만드는 사람 마음이고 사회현상은 구성원 전체의 생각을 어필한다. ::라고 악질 재기빠가 나름대로 반박이라는걸 모방해봤으나 노래 하나가 전국민적 인기를 얻으려면 그에 대한 전국민적인 공감이 필요하다는 것은 뇌가 우동사리로 대체되었어도 알수있는 상식이다. 이들은 남혐민국에서는 집안 먹여살리는 아부지를 찬밥 취급한당께요 빼애액하고 메갈련들과 다름없는 논리를 펼치지만 어버이날에는 당연히 아버지한테도 감사한다. 애당초 애들이 아빠 힘내세요를 가장 많이 부르는 날이 어버이날인데 병신. 국제결혼 사업도 2011년 1월부터 2년간 시도해봤다. === 랜선 군필자 보상 운동 === 군 가산점 부활 갖고 키배를 떴다. 하지만 뭔 법적인걸 건드린건 아니고 말 그대로 키배만 떴다. 그러니까 여성계, 꼴페미들, 온정주의적 마초 왈 '''공무원 시험만 특혜주니까 시험준비 안하는 남자들 차별대우 한다.''' 성재기 vs 여성계, 꼴페미들, 미필자들 온정주의적 마초들 1라운드 * '''성재기 : 군필자 가산점을 주자. 군대로 이년 삼년 손해본 동안 미필자들과 면제자들은 공부 더하고, 취직해서 호봉수 쌓는다 * 여성계, 꼴페미들, 미필자들 온정주의적 마초들 : 공무원 시험만 특혜주니까 시험준비 안하는 남자들 차별대우 한다.''' 성재기 vs 여성계, 꼴페미들, 미필자들 온정주의적 마초들 2라운드 * '''성재기 : 군필자 학비를 줄여주거나 군필자에게 대학 등록금 주자. 군대 이년 삼년 동안 봉급이 너무 작고 보상이 적다 * 여성계, 꼴페미들, 미필자들 온정주의적 마초들 : 군필자 학비 주면 대학 안가는 남자들을 차별대우 하는거다.''' === 군필자에 대한 보상 대안 제시 === 성재기는 1999년 10월 3일 이후 군 가산점 부활을 주장했다. 그러나 군 가산점이 공직에 응시하는 소수 외에는 혜택을 보지 못한다는 비난이 일자, '''군 복무를 마치고 나온 남자들의 경력단절을 보상할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였다. 그가 주장한 보상방법은 '''군필자에게 [[대학]] 등록금, 학비를 감면, 면제해 주는 것, [[장학금]] 지급, 군필자들에게 등록금을 지원해주는 것''' 등이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남성들을 차별하는 것이라는 반박에 부딛쳤다. 그는 또 병역을 마치고 전역하는 장병에게 전역 전날 수고비나 위로금을 주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성재기는 그밖에도 병사들에게 지급되는 월급이 [[최저시급]]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했다. 성재기는 군필자들에 대한 보상 이전에 우선 군인 사병들 [[월급]]을 현실적인 [[급여]]로 인상하자, 군인 사병들 월급부터 그 해의 [[최저시급]]선 수준까지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군 가산점 부활을 주로 주장했지만 군 가산점이 아닌 다른 보상방안도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성재기는 군 가산점 관련 대화가 있을 때마다, 각종 보상 방안도 같이 설명한 뒤, [[한국]]사회가 군인들을 48년 창군이후 '''무급노예 처럼 부려왔기 때문에''' 보상하는 것을 반대하거나 싫어하는 인간들이 많을 수 있다, '''타인이야 죽던 말던 관심없는 여성의 반대'''도 문제이지만 '''군대를 다녀온 인간이 더 악랄하게 군필자 보상을 반대할 수 있다''' 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 소외된 남성 보호 운동 === 그는 평소, 모든 활동에는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돈에 매달리는 것은 잘못이지만 돈의 위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외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남성들의 권익은 한국 사회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한다고 역설하였다. 남성연대에 형편 어려운 이들이 많이 찾아왔는데 그는 무직 남성들에게 일자리를 주선하려고 노력했고 ‘싱글 대디’에게 도시락을 배달하기도 했다. 게이나 무직자, 싱글대디 등에게 일자리와 밥을 제공하는 등의 노력도 기울였다. 성재기는 2011년 1월 26일 부인에게 매맞고 온몸에 멍이 든 40대 중반의 남자가 찾아온 것을 계기로 바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쉼터를 개설, 가출 남성, 노숙자, 가정폭력 피해 남성을 받아들였다. 나중에는 게이와 트랜스젠더들도 수용하였다. 성재기는 이들에게 무료로 식사와 일시적 혹은 장기적인 거처를 제공함과 동시에 직업 소개 및 직업훈련, 고용수당 받는 일을 알선, 주선하였다. 그러나 2013년 4월 수용인원이 늘어나게 되자 그는 자신의 영등포구 오피스텔 및 영등포의 남성연대 숙소마저 개방하였다. 그는 남자도 언제든 약자의 처지에 몰릴수 있는데도 남자가 그러면 그것을 개인의 문제, 그 사람의 문제로 치부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남자도 사람이고, 남자도 아픔과 고통을 느낀다, 남자도 약자의 처지에 놓일 수 있는데도 그런 점은 철저히 외면하며, 그 남자 개인의 문제로만 몰고가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게이, 트랜스젠더 역시 소외당한 남성 혹은 사회적 약자로 보고 이들을 동정하였다. 그가 남성운동을 하기 전 대구의 양대 나이트클럽이라고 할 수 있는 유명한 유흥업소를 하기도 했다.거기 게이들이 자주 찾아왔는데 동정심을 느꼈다고 한다.그의 곁에 있던 한 회원에 의하면 그는 "남성 우월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가진 회원을 혼내기도 했다."고 한다. 성재기는 또 게이라는 이유로,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집에서 쫓겨나는 우리의 아들, 형제들이 과연 사회적 약자가 아닌가 라고 반문하였다. 눈에 띄지 않는 여자 동성애자와는 달리 남자 동성애자들은 쉽게 눈에 띄는데다가 동성애를 하면 무조건 성병이 옮는다는 이상한 편견까지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른 이들 혹은 남성연대의 회원들 중 게이, 트랜스젠더에게 혐오감을 드러내는 이가 있으면, 게이, 트랜스젠더가 자신이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다, 게이, 트랜스젠더들도 한국 사회의 부당한 폭력의 희생자들이라면서 나무라기도 했다. 그는 동성애자들에 대해서 상당히 관대했다. 이건 오히려 보수 페미니즘보다도 훨씬 더 진보적인 사고방식이다. 한때 그가 대구 효목동에서 양대클럽을 운영했는데 여기에 게이들이 왔다. 이때 본 게이들을 보고 동정심과 연민을 느낀게 동성애자 차별을 반대하게 된 나름의 원인.<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98136.html 그는 제2의 ‘미시마 유키오’가 되고자 했나]</ref> 그는 장애인 남성들을 찾아다니며 장애인 남성들에 대한 부당한 편견, 모욕 등을 당연히 여기는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남자에게만 가혹하다, 한국은 남자에게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여성과 노인, 어린이, 애완동물 다음이 남자라면서, 남자들에게만 모든 책임과 의무만을 부과하고 남자들의 고혈만 짜서 유지하는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사회가 맞는지 의심스럽다며 의문을 한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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