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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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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질의 대가 == 결국 1996년 이후 서울 연고 3개 구단은 서울 공동화의 결과 각각 [[안양]](LG 치타스), [[부천]](유공 코끼리), [[천안]](일화 천마]) 등 서울과 그다지 멀지 않은 지역으로 자리잡았는데, 나중에 LG 치타스는 다시 서울로, 부천 SK는 제주로, 천안 일화는 성남으로 다시 한번 연고지를 이전하였다. 1996년 서울 3개팀을 한꺼번에 몰아내더니 이번에는 서울 연고지 입성금이라는 것까지 만들어서 서울로 들어오려면 돈을 내라고 하는 짓을 저질렀다. 한국 축구 인기의 정점인 [[2002년 월드컵]] 4강신화의 인기광풍 속에서 [[Kt]], [[금호그룹]], [[신한은행]] 등등 여러 대기업들에게 서울 연고권 줄테니까 입성금 내고 들어오라고 계속해서 입질을 보냈지만 모두에게 거절당하는 수모를 당하고, 결국 [[K리그]]의 시장가치로는 신규 대기업 서울 연고 구단을 유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식으로 하다가는 월드컵 한다고 아시아에서 제일 큰 축구전용구장인 [[서울월드컵경기장]] 지어놨더니 맨날 놀린다는 비난 여론이 생기고 벤치마킹으로 삼았던 일본마저도 거품 인기 꺼진 후 2000년부터 도쿄 연고 구단을 만들면서 흥행 돌파구로 삼을려고 했던 것을 보고 정신차린 연맹은 기존 구단들의 연고지 이전을 통해서라도 서울 연고팀을 하루라도 빨리 만드는게 낫다고 판단하고 전 구단에 서울 연고지 이전 제안서를 돌리고 공모를 하였고 이런 과정을 통해 결국 서울의 LG 치타스였다가 쫓겨났던 안양LG치타스가 다시 서울로 돌아 오면서 [[FC 서울]]로 이름을 바꾸고 마무리 되었다. 결국 연맹으로서도 새로운 대기업 구단 유치도 모두 실패해서 아무 소득도 없었으며 LG 치타스도 안양(안양이 아니었어도 서울 -> 타도시 -> 서울이라면 결과는 같다)에 괜히 발 담갔다가 패륜놀이 시발점 되고 순수하게 축구 좋아하던 팬들도 서로 상처를 입고 한국 프로축구 역사상 최악의 삽질의 결과는 너무나 참혹하였고 아직도 진행중이다. 한편 중견기업 이랜드가 (2016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됨) 서울 연고팀을 운영하면 K리그에 복수 연고팀 시대가 다시 열리기는 하였다. 그러나 통일그룹 일화는 제외하더라도 1996년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을 시행 안 했으면 당시에도 5대 대기업이었던 SK (현 재계서열 3위)가 계속 서울 연고팀이었을 것이고 일화도 서울 연고팀으로 서울 연고팀이 3개팀으로 이들 서울 연고 3팀의 서울 더비는 엄청난 스토리가 쌓여 흥행 컨텐츠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컨텐츠도 날리고 결국 LG가 GS그룹으로 분리되어 FC서울이 되어 2004년에 다시 돌아왔고 재계서열 3위의 SK와 K리그에서 나가기 전까지 자금력이 풍부했던 통일그룹 일화가 서울 연고팀에서 사라지고 이랜드라는 중견기업이 거의 20년만에 서울 연고팀이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서울 연고팀을 재계서열 3위의 SK를 날리고 중견기업 이랜드로 교체하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아무 의미없는 병신짓거리를 한 것이다. 중간에 서울 축구 역사가 텅빈것까지 생각하면...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의사결정이 얼마나 세상물정도 모르고 경제관념도 없는 병신스러운지는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 입안되던 1994년의 재계서열과 프로축구단 운영 실태를 보면 알 수 있다.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401242058105&code=920509 1994년 재계서열 참고] 1. 현대 - 이미 울산에서 프로축구단 운영 중<br/> 2. 삼성 - 1994년 미국 월드컵 이후 프로축구단창단 추진<br/> 3. 대우 - 이미 부산에서 프로축구단 운영 중<br/> 4. LG - 서울 연고 구단<br/> 5. SK - 서울 연고 구단<br/> 1990년대 한국에 프로스포츠단에 투자를 넉넉히 해줄 대기업들이 많았고, 그런 대기업들 중에서 LG와 SK가 중간 정도급밖에 안되니, 이들을 몰아내고 더 큰 그룹으로 서울연고팀 창단이 가능했다면 피의 쉴드라도 쳐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경제 상황에서 프로스포츠단 운영에 넉넉하게 투자할 대기업 집단은 10대 그룹정도였다. 그리고 당시 재계서열을 보면 LG는 4위, SK 5위 안에 든다. 그 위의 그룹들은 이미 프로축구단을 다른 연고지에서 운영을 하거나 할 예정이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당시 시점 아예 서울 연고팀을 몽땅 없애봤자 결국 나중에 더 후지고 돈 없는 기업들이 서울 연고팀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LG와 SK라는 5대 대기업이 운영해도 서울에서 축구 인기를 높이기가 어려운게 현실인데, "일단 LG SK 팀이 없어지는것도 아니고 서울 밖으로 몰아 내면 돈 많으니까 어디에 정착하든 투자하고 자리 잡겠지, 나중에 가면 거대도시 서울이니까 연고가치도 크고 설마 팀이 안생기겠냐? 뭐 어떻게든 되겠지 "정도의 아무 근거도 없는 그냥 자기들 바람을 담아 오늘만 산다는 식의 무개념 행정이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일화가 1989년부터, LG는 1990년부터, 유공(SK)는 1991년부터 서울 연고 구단으로 활약했으므로 공동화 정책이 입안된 1994년 기준 50년, 40년, 30년 정도 서울 연고 구단으로 활약한 것이 아니고 기껏해야 일화 5년, LG 4년, 유공 3년 정도로 한창 서울 연고지에서 씨를 뿌리는 시기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겨우 5년, 4년, 3년 정도 서울 연고 구단으로 활동한 구단들이 인기를 못 끈다고 공동화 추진을 했다는 것은 너무나 성급한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아래 자료를 보면 알겠지만 서울 연고팀 3개 없애겠다고 죽자살자 달려들다가 이제는 인구 천만의 서울에 축구팀이 4~5개 창단되어야 프로축구 흥행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 보면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고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파일:서울연고공동화정책-한국프로축구연맹.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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