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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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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기원전 8세기 즈음에 그리스 도시국가로 출발했다. 한 전설에 의하면 트로이 전쟁때 탈영한 "아이네아스"라는 쫄보새끼가 세웠다고 한다. 물론 트로이 전쟁은 기원전 11세기쯤에 일어났고. 10년동안 지속되었으니 개소리다. ㄴ아이네아스 후손인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로마를 세운거. 물론 아이네아스 이야기는 당연히 구라인거 맞다. 일단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가 건국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한데 믿거나 말거나. ===왕정 시대=== 초기에는 흔히 아는 원로원 중심의 원수정 체제가 아닌 옆동네 그리스처럼 왕이 다스리는 체제였다고 한다. 는 윗 동네 셈족계열이 세운 에트루리아 한테 개 털리고 일개 따까리 국가로 전락한다. 그런데 이때 당시의 기록은 온전한게 거의 없기에(후술할 갈리아족의 로마약탈때문에 기원전 4세기이전의 기록은 전부 작살났다) 이것도 신화에 가깝다. 1. 로물루스 - 건국왕이다. 지 아우인 레무스를 조지고 왕이 되었다. 옆동네 사비니족 여자들을 납치해서 지 따까리인 양치기들에게 짝을 찾아주었다. 2. 누마 폼필리우스 - 콩대 왕이다. 옆동네 이탈리아 부족인 사비니족 출신이며 이때까지만 해도 로마에서 만연하던 인신 공양 의식을 폐지했다고 한다. 원로원을 만들었다. 이때는 원로원 의원이 100명이였다. 3. 톨루스 호스틸리우스 - 로물루스와 같은 정통 라틴족 출신 왕이다. 율리우스가문의 고향인 알바롱가를 공격해 정복했다. 전설에의하면 번개를 맞고 통구이가 되었다 한다. 통통 4. 안쿠스 마르퀴우스 - 2대왕 누마의 손자라고 하며 선거로 뽑힌 최초의 왕이다. 테베레 강에 처음으로 다리를 놓았고, 테베레 강 어귀에 있는 항구도시 오스티아를 정복하여 로마가 지중해로 진출하는 터를 놓았다. 어찌보면 엄청난 나비효과 5.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 - 상인 출신으로 에트루리아 계. 안쿠스 시대에 로마에서 엄청난 자금을 바탕으로 언론플레이, 경쟁자 암살등으로 선거에서 뽑혔다. 이승만각하니뮤ㅠ. 에트루리아의 도시문명을 이놈이 그대로 로마로 가져와, 이때부터 로마가 본격적으로 도시화가 된다. 6. 세루비우스 톨리우스 - 선대왕의 노예였으나 해방되고 노오오오오오오력을하여 왕이된다. 시민들을 재산 등급에 따라 무장시키고, 로마 7언덕을 두르는 성벽을 만들었다. 7.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 - 선대왕을 암살하고 즉위했으나 정당한 선거를통해 왕위에 오르지 않아 쌍욕을 쳐먹는다. 근데 정신못차리고 루크레티아라는 유부녀를 따먹었다가 루크레티아가 자살하자 이때다 싶어 브루투스라는 새끼가 반란을 일으켜 이놈을 죽창으로 죽였다. 전하! 계집질을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결국 이 자는 로마의 마지막 왕이 되었다. 자기가 로마 왕 비스므리한 직장에 출퇴근한다면 부루투스의 야수의 심정을 조심해라. 잘못하다간 이렇게 대국적으로 훅 간다. ㄴ루크레티아는 이놈 아들이 따먹었고 반란 후에도 에트루리아에서 계속 삐애액거렸다. 그러다 로마의 침입으로 멸망당하고 로마에 복속된다. ===공화정 시대=== {{진지}} {{선비}} 명예로운 경력이라고 공화정 말기에 군사호민관(Tribunus Militum)→재무관(Quaestor)(30세)→안찰관(Aedilis)(36세)→법무관(Praetor)(39세)→집정관(Consul)(40세)→감찰관(Censor)이런식의 승진코스가 최고의 엘리트코스가 있었는데, 이걸 거치지않은 넘들은 원로원이 존나 싫어했고 왕따했다. 암튼 7왕 시대이후 로마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주변 도시국가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런 동네 깡패 로마를 견제하기 위해 주변 국가들은 라틴 연합을 결성해 로마를 압박한다. 그러나 로마는 존나 짱짱셌기에 가볍게 쓸어버리고 카시아눔 조약을 맺게한다. 카시아눔조약은 로마가힘들때 라틴동맹이 도와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존나 세진 로마는 눈에 뵈는게 없어져 기원전 396년 옛주인니뮤 에트루리아의 도시 "베이"를 공격하고 점령한다. 이때 베이의 시민들은 모두 학살당했고, 텅 빈 베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 평민과 금수저 귀족니뮤들의 의견이 엇갈려 내분이 일어난다. 평민들은 로마 시민의 절반을 베이로 이주한 다음 살게 하여 또다른 신 로마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새 도시를 만들고 가서 짱먹어야 귀족되니까). 하지만 이런 상당히 급진적인 의견에 금수저들의 의견은 매우 부정적이였고 특히 베이공략를 지휘한 카밀루스가 이것을 가장 앞장서서 반대한다. 그러자 금수저가 될 가능성을 잃어버린 평민들은 분개하였고 카밀루스를 횡령 혐의로 고발한다. 사실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시민들은 카밀루스에게 유죄 평결을 내리기로 작정했기에 카밀루스가 무죄 판결받는 것은 가망이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카밀루스는 자진해서 로마를 떠난다. 근데 로마가 지네끼리 치고받고 개지랄을 쳐하는 사이에 북부 이탈리아 너머에서 갈리아족이 쳐들어와 북이탈리아의 클루시움이라는 로마의 동맹시를 포위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때 지네끼리 쳐싸우기바빴던 로마는 깜짝놀라 교섭사절을 보낸다. 하지만 교섭은 결렬되었는데 이때 로마의 사절 중 하나인 퀸투스 파비우스라는 새끼가 야수의 심정으로 칼을 휘둘러 대국적이지 못한 갈리아 족장을 살해한다.(교섭을 좀 대국적으로 하시오!) 이는 당연히 시발 외교적으로 불법적인 행위였고 때문에 빡친 갈리아인들은 사절을 로마에 파견해 파비우스를 내놓으라고 한다. 갈리아인들의 요구는 정당한 것이였지만 로마인들은 존나 뻔뻔하게 쌍뻐큐를 날렸으며 아예 퀸투스 파비우스를 당시엔 집정관에 해당했던 군사 호민관으로 선출하고 지휘권(임페리움)까지 부여한다. 이는 갈리아인들에 대한 선전 포고였다. 소식을 들은 갈리아인들은 바로 클루시움의 포위를 푼 뒤 로마를 향해 진군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주변 도시에 자신들이 로마로 가고 있으며 오직 로마만 공격할 것이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행군하였고, 또한 가축과 농장엔 손 하나 대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이들은 전혀 방해받지 않고 병력을 고스란히 보존한채 로마 시에서 고작 14km 떨어진 곳에 이르게 된다. 당시로마는 라티운지역(도시로마의 인근지역들)의 패권자였고 갈리족에비해 두배가 넘는 병력을 이끌고 있었기에 매우 간단하게 갈리아족을 분쇄할수있으리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로마군은 존나 쓸려나갔고 갈리아족은 당시까지만해도 성벽이랄게 별로 없던로마 시내로 진입하게 된다. 로마 시민들은 파비우스의 군대가 갈리아족에게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얼른 로마 내에서 가장 높은 언덕인 카피톨리노 언덕 위로 줄행랑을쳐 농성했고 갈리아족은 이들을 포위는 했지만 점령할 수 없었다. 빡친 갈리아족은 로마 시내의 건물들과 문서들을 닥치는대로 작살내버렸다. 그 결과 기원전 390년 이전의 로마 문서들은 모두 소실된다. 갈리아족은 로마 시내를 점거하긴 하였으나 카피톨리노 언덕의 로마인들이 계속 게릴라활동을 하였고 또한 베이의 문제로 자진해서 로마를 떠났던 카밀루스가 자신이 조직한 사병을 이끌고 외부에서 호응하자 로마에 계속 눌러앉기가 힘들었다. 이때 로마인들은 갈리아족에게 협상을 제의하며 배상금을 지불하겠다고 하고 이에 갈리아족은 존나 엄청난 양의 황금을 요구한 뒤 이를 받고 돌아간다. 이러자 로마 시민들은 도시를 재건하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되자 갈리아한테 존나 개쳐맞은 로마를 주변 라틴 도시들은 깔보기 시작했고 저번에 맺었던 카시아눔 조약 따윈 개무시하고 로마를 침략하기 시작한다. 로마는 유능한 장군이었던 카밀루스를 독재관(어떤 개병신새끼가imperator라고 써놨었는데 사실은 dictator이다.)으로 삼았고 그의 지휘 하에 싸가지 없는 라틴도시들을 열심히 무찌르며 간신히 체면치레를 한다. 로마는 갈리아족에게 쳐맞은것을 계기로 군대를 개혁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과거 그리스식 팔랑크스 스타일을 버리고 그 유명한 레기온(군단)제제로 바꾼다. 한 갈리아 족을 상대하였을 때 군제개혁이전에는, 우수한 무장을 갖춘 신분 높은 은수저계급이 중앙에 위치하였는데 양익이 달아나면서 중앙이 포위, 그들이 모두 섬멸되었다. 때문에 로마인들은 이후로 높은 은수저,금수저계급의 생존률을 높히기 위해 계급 순으로 일렬로 배치하는 전술을 사용하기 시작, 이것은 마니풀루스 체제 (아직 짬이덜찬 어린 짬찌새끼들은 군단의 전위를 맡는 "하스타티"로 배속되었고 20대후반에서 30대의 아직 꼬추는 잘서고 어느정도 짬이 찬 넘들은 군단의 중추를맡는 "프린키페스"로 배속되었고 마지막으로 짬이 찰대로 찬 상꺽이상의 꼬추잘안서는 40대이상의 아재들은 군단의 후위를 맡는 "트리알리"로 배속되었다. 또한 개거지 똥수저새끼들은 각각 전방에서 투창을 던져 짤짤이를 넣거나 정찰을 하는"벨리테스"와 군단의 최후미를 맡는 "아텐시"로 배속되었다.)이다. 50년후 라틴 연맹은 다시 로마와 전쟁을 벌이는데 그 이유는 라틴 연맹이 자기네와 함께 공화국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는데 로마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때 로마는 라틴 연맹보다 세력이 컸으므로, 굳이 권력을 나눠먹을 이유가 없었다. 결국 이 싸움은 로마의 승리로 끝나, 로마는 라틴 연맹을 해체하고 여기에 있던 도시국가들을 동맹이라는 이름의 노예로 만들어버린다. 이렇게 로마가 라티움지역에서 대빵노릇을하고있을때 이탈리아 아펜니노산맥너머에서살던 삼니움족일부가 라티움지역 밑의 비옥한 캄파니아지역을 침략한다. 캄파니아지역의 도시국가들은 윗동네 로마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로마는 이에 응해 삼니움족을 줘패고 덤으로 도움을 요청했던 캄파니아도 동맹시(노예)로삼는다. 그런데 15년후 삼니움족은 다시 캄파니아지역을 침략하는데 이번엔 15년전보다 훨씬규모가 컸었다. 이에 동맹시를 지킬의무가 있는 으리의 로마는 삼니움과 다시싸우는데 이가 2차 삼니움 전쟁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결코호락호락하지않아 전쟁은 22년간 계속된다. 이때문에 로마는 삼니움족의 본거지인 아펜니노산맥으로 기어들어가 이들을 섬멸하기위해 두명의 집정관과 네개의 군단(약 2만4000명에서 3만명정도로추정)을 보내는데 산악민족인 삼니움족은 미리 매복하고있다가 공격해 큰승리를 이루고 나머지를 모두포로로 잡는다. 이때 삼니움의 족장은 병신같게도 다죽이지않고 포로들을 부하들이 '''강간'''하게하고 풀어주는 최악의 수를 둔다. 이에 로마는 많은 병력을 보존한채 전략을바꿔 삼니움족을 산속에 고립시키는 전술을 쓴다. 삼니움은 궁지에 몰리다가 갈리아족까지 끌어들여 센티눔이라는 도시에서 결전을 벌였으나 패배해멸망한다. 이때로마군은 한차례의 진화를 또다시 거쳣다. 유명한 필룸과 스큐툼이라는 사각방패를 도입하게된것이다. 삼니움전쟁이 끝난후 로마는 이탈리아 중부를 차지하게되었다. 자연히 이탈리아남부의 그리스계도시들과 국경을 마주하게되었고 당시 이탈리아남부에서 가장강력한 도시국가 "타렌툼"에 선전포고하게된다. 타렌툼은 동맹국이엿던 그리스서쪽지방의 에피루스왕국에 도움을 청한다. 당시 에피루스 왕국은 피로스라는 아주 유능한 장군님이자 왕이 다스리고있었는데 이인간은 로마를 조지고 이탈리아를 차지하려는 욕망에 전쟁에 참전하였다.(BC.280)피로스는 명성에 걸맞게 헤르쿨리아전투와 아스쿨룸전투에서 두번이나 로마군을 씹어드셨다. 그러나 손실이 너무컸고 로마가 '''카르타고'''와 동맹을 맺었기에 시칠리아섬으로 전선을 옮기게된다. 그러나 보급이 막혀서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오게된다. 이때 피로스가 시칠리아에서 병신 개삽질하는동안 로마군은 더많은 군단과 동맹시에서 징집한 보조군을 편성하였고 존나 충격과 공포에 빠진 피로스는 로마군단들이 모이기전에 각개격파를하려고 베네벤툼에 주둔하던 두개군단을 야습했으나 미리알아챘던 로마군에게 개쪽당하고 지네나라로 돌아가게된다.그리고 지켜줄 고기방패가 없어지자 타렌툼을 포함한 남부이탈리아국가들은 로마에 항복한다. 남부이탈리아를 차지하자 이탈리아전체를 지배하게된 로마는 이제 카르타고와 동맹관계에있던 시칠리아섬의 시라쿠사를 점령하게되는데 이때문에 1차포에니 전쟁이 발생하게된다. 그러나 여러분이알다시피 카르타고는 개털리고 로마는 시칠리아섬 전체를 쳐먹는다. 2차포에니전쟁은 그유명한 한니발한테 개쪽당하다가 개털어버린다. 당시한니발은 도시로마를 공격은 할수잇었으나 못했던것이다. 안그래도 병력보존도 시급하고 보급도 잘안되는데다 수도지키러온 군단들까지 상대하기란 불가능했기대문이다. 미쳤다고 공격하나 그 뒤 2차 전쟁에서 [[한니발]] 때문에 좆될 뻔 하기도 햇으나 잘 버텨내 역전했고, 어찌되었든 포에니전쟁은 3차까지 간 끝에 로마의 승리로 끝났다. ====정치 기구==== ===== 정무관 ===== 로마 정무관 서열 * 호민관(Tribune) -> 재무관(Quaestor) -> 조영관(Aediles) -> 법무관(Praetor) -> 집정관(Consul) 이와같은 서열은 귀족과 평민의 신분투쟁 과정에서 완성된 것이다. 호민관은 본래 평민을 대변하는 관직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정무관 서열 속에 들어와버렸다. 귀족들 입장에서는 호민관을 그냥 말단 관직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호민관 당선인들도 대부분 원로원에 싸바싸바 하다가 자기도 원로원으로 입갤하는 걸 원했기에 형식적으로 평민의 대표지만 별 하는 것도 없는 직위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그라쿠스 형제는 원로원 입갤을 포기해버리고 그동안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던 호민관의 권한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 직위의 클라스를 높여버렸다. 어차피 호민관은 선출직에 임기제한도 없는터라 평민의 지지만 얻으면 다시 할 수 있는 구조였고 그라쿠스 형제는 그 맹점을 파고들어 로마의 정치적 지도를 확 뒤집어버렸다. 이들의 활약 이후 귀족이고 평민이고 호민관이 엄청난 권한을 가진 관직임을 인식하게 되었고, 결국 평민이 정치적으로 규합되면서 평민의 대표 호민관 vs 귀족층의 원로원 구도가 자리잡게 된다. 결국 아우구스투스는 이 호민관 권한을 이용하여 일인 독재 체제를 완성시킨다. 재무관은 재무를 담당하는 관직이고, 조영관은 공공사업이나 축제, 경기 등을 담당하는 관직이었다. 법무관은 말그대로 본래는 법무를 담당하는 관직이다. 법무관부터는 고위 정무관으로 인식되었다. 군대 지휘권(Imperium)이 부여되었기 때문. 물론 이런 고위 정무관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빽이 있어야했다. 그래서 결국 귀족들이 대부분 다 해먹는다. 로마가 얼마나 귀족 중심의 사회인지 잘 보여주는 대목. 그리고 고위 정무관 중 하나로 감찰관(Censor)라는 관직도 있긴 한데, 상설 관직은 아니였고 약간 명예직 같은 관직이였다. 그렇다고 할일은 없는건 아니였고, 인구조사 겸 재산조사(Census)를 하거나 풍기단속하는 역할을 맡았다. 사실 법무관이랑 감찰관은 탄생부터 귀족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신분투쟁 과정에서 귀족들이 평민들에게 권한을 양보하는 대신, 귀족들은 새로운 직책을 만들면서 그것을 독차지 했기 때문. 그 새로운 직책이 바로 법무관과 감찰관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신분투쟁 과정을 계속 거치면서 결국 평민들에게 개방되게 된다. 예외적으로, 독재관(Dictator)라는 관직이 있다. 국가 비상사태시 집정관 중 한명에게 6개월 임기의 독재관을 임명하여, 사실상 모든 권한을 부여하였다. 나중에는 술라나 카이사르 같은 정치군인들 때문에 '종신 독재관'으로 변질되기도 하였다. 사실 종신 독재관이 나오는 순간 로마 공화정은 끝났다고 보면 된다. 조영관부터는 호위병사(Lictor)들을 끌고 다닐수 있었다. 이들은 도끼 비슷한 거(Fasces : 하나된 힘을 상징하여 나무막대기 여러개를 묶고 위쪽에 도끼날을 매담) 들고다니면서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고 다녔다. 독재관은 24명, 집정관은 12명, 법무관은 6명을 이끌고 다녔다. 참고로 파시즘(Fascism)이라는 말이 이 Fasces에서 유래되었다. ===== 민회 ===== 이러한 민회는 기본적으로 로마 시의 시민인 자에게만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시대가 지나고 로마의 크기가 이탈리아의 작은 동맹연합 수준을 넘어 제국의 수준에 이르게 되자 더 이상 로마 시의 시민들만의 의견만으로 결정하기에 불합리한 문제들이 닥쳤고, 그 결과 로마 시민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동맹시 시민들에 대한 참정권의 여부를 두고 내전까지 겪어가며 결국 그들에게도 참정권이 주어졌으며 이 내전을 통해 마리우스, 술라와 같은 정치군인이 대두한다. 이후 마리우스의 군제개혁으로 인해 누구든 군대에 복무하면 로마 시민이 될 수 있게 된다. 상술한 그라쿠스 형제 이후로 호민관 선출에 대한 경쟁이 심화되었으며 귀족층이고 평민층이고 지들 꼬붕을 호민관 시키려고 선거철만 되면 지랄난리가 났다. 그때는 선관위고 뭐고 없던 시절이기에 뇌물은 애교요, 남의 유세장 가서 깽판치기, 심하면 상대 후보 담구기 등 좆같은 초기 민주주의의 전통적인 막장이 여기서 다 나왔다. (승만센세...) 선거도 막장이었고 정치판도 막장이었다. 그라쿠스 형제도 개혁가이긴 했지만 정치적 반대파를 처리하는 방법은 오늘날 인민민주주의와 비슷했으며 그렇다고 그걸 처리한 원로원도 원로원 최종권고라는 민주주의의 기초적 개념부터 날려먹는 수단으로 해결을 봤다. 그라쿠스를 지키기 위해 지지자들은 몽둥이를 들고 광장에 모였고 반대파도 모이면서 그 날 수천명의 시체가 테베레 강에 가라앉았다. 그 결과 로마 정치판엔 그때부터 지지자들이 몽둥이와 돌을 들고 광장에서 패싸움을 벌이는 유구한 전통이 생겨났으며 이는 후에 정치군인들이 자기 군단에서 복무한 퇴역병들까지 끌어들이면서 진짜로 살벌한 전쟁터로 변한다. 어제는 갈리아, 히스파니아, 아시아에서 야만족 대갈통을 뎅겅 자르던 아재들이 오늘은 수도 한복판에서 이러고 다녔던거다. 이러니 정치판은 극단주의로 흘러갔고 결국은 강력크한 독재자의 등장이라도 이 혼란만 진압하면 된다는 의식이 생겨버린다. 결국 독재자가 등장하고 그 독재자가 평민 대표인 호민관을 겸임하게 되면서 민회의 존재가 유명무실해지게 된다. * 병사회/백인조회 (Comitia Centuriata) 로마 민회라 하면 보통 이 민회를 의미한다. 여러 민회 중 가장 핵심적인 민회. 왜 백인조(Centuria)냐면 로마 왕정시기 6대왕 세르비우스 툴리우스가 재산 등급에 따라 시민들을 백인조 단위로 분류했는데, 이게 공화정 시기 투표 단위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이 민회에서 시민들은 자신의 표를 행사하여 여러 주요 안건들을 의결하고, 고위 정무관을 선출하였다. 근데 이 투표가 웃긴 점이 있다. 총 193개 백인조를 재산 등급에따라 특급/1등급에서 5등급까지 나누고, 개표를 특급/1등급부터 먼저 했는데 거기서 바로 과반수가 나오면 그냥 통과시킨 것이다. 한마디로 금수저들의 표로 모든 것이 다 결정날 수 있었던 것이다. * 부족 민회 (Comitia Tributa) 로마는 로마시 4개부족 + 농촌 31개 부족 합쳐서 총 35개의 부족으로 이루어졌다. 근데 농촌에 있는 농민들이 일 버리고 직접 로마로 가서 투표하기 좀 귀찮고 해서, 실제로는 돈받고 투표 알바뛰는 놈들, 혹은 농촌 소속이지만 도시에 사는 금수저들의 입김이 강했다. * 평민회 말그대로 평민들을 위한 민회였다. 그리고 이 평민회를 대변하는 사람이 바로 호민관이다. 본래는 공식적인 힘을 갖고 있지 않았으나, 기원전 287년 호르텐시우스 법 이후 평민회의 결의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원로원(Senatus)===== 로마가 과두정, 귀족정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즉 원로원이 로마 정치의 핵심. 약간 자문기구 비슷한 건데, 이 자문이 상당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형식적으로는 실권이 정무관들한테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원로원이 쥐고 있던 셈. 또 '원로원 최종결의'라는 것을 선포하여 불온분자들을 제거할 수도 있었다. 그 희생양이 바로 그라쿠스 형제. 당연히 원로원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다 귀족들이었다. 물론 키케로처럼 귀족들 후빨을 열심히해서 원로원 의원이 된 사람도 있지만.. 이런 원로원도 결국 정치군인들에 의해 쇠퇴하게 된다.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이후, 벌족파(Optimates)와 민중파(Populares)가 갈등하는 과정에서 정치군인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자기 세력을 최대한 많이 불릴려고 원로원 의석수를 막 뿌려버린 것이다. 그래서 본래 300석이었던 원로원이 (아마 술라때였나?) 600석이 되고, 나중에 카이사르 때가 되면 900석이 된다. 이렇게 의원직을 남발하는 상황 속에서 원로원 권위가 유지될리가 없다. ===제정 시대=== [[파일:1차 삼두정치.jpg]] 왼쪽부터 깡패, 사채꾼, 사기꾼 본래 카이사르는 크라수스의 꼬붕이었으나 크라수스가 파르티아한테 쳐들어갔다가 군단이랑 홀라당 요단강 건너가는 바람에 카이사르랑 폼페이우스 둘이 탑으로 나서게 되었다. 근데 문제는 역시 헬조선 씹선비수준으로 권력욕과 정치질만 쩔고 나머진 병신같던 원로원의 문제였다. 카이사르가 이끌고 있던 군대는 갈리아 야만인들 때려잡아서 경험이 많은 정예병이었는데 원로원은 폼페이우스를 밀어주면서 카이사르 죽일거라고 협박질 한게 커다란 패착이었다. 어떤 병신이 자기 죽일 거라는데 가만히 있겠나? 결국 카이사르는 정예병 데리고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를 공격한다. 그래도 원로원은 폼페이우스가 명장이니까 좆바르겠다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폼페이우스 이 양반이 늙었는지 아니면 원래부터 정석 성애자였는지 막 징집된 신병으로 카이사르의 정예병과 정석적으로 싸운다. 반면 카이사르는 정예병인 걸 이용해 기동력을 통해 각개격파하는 기책을 들고나와 처바르고 결국 폼페이우스는 도망가다가 부하한테 모가지 댕겅이고 원로원은 제발 살려달라고 앙망문을 써야했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스스로 종신독재관(임페라토르)을 선포하자 살려준 은혜도 잊고 원로원은 이에 반발해 대국적이지못한 카이사르를 브루투스를 앞세워 꼬챙이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나 이 병신들은 카이사르가 죽으면 저절로 카이사르파도 무너질것이라고 생각했으나 (태평양전쟁일으킨 좆본똥별들이랑 비슷한 수준이다.) 카이사르에 대항했던 파트라키이 (카이사르반대파)는 아무것도 하지못했으며(내전이후로 세역이 크게위축됬었다) 정권도 제대로 못잡는 무능함때문에 카이사르의 후계자 3돌이 (옥타비아누스,안토니우스,래피두스)에게 쫒겨났다. [[파일:2차 삼두정치.jpg]] 깡패 , 소시오패스 , 공기 여담으로 카이사르는 뒤질때 윽 ! 브루투스 너마저! 라고 했다는데 셰익스피어가 만든 창작이다. 더러운 세익 종자들이 하도 지랄지랄 해대서 진짜처럼 알려졌을 뿐이지 사실 암말도 못하고 커헠! 하고 피토하고 죽었단다, 은 개소리고 뒈질 때 멋있게 죽어야한다고 옷정리하다 뒈짐. 안토니우스는 이집트에서 클레오랑 떡치다 옥타비아누스랑 싸움. 그리고 지중해에서 해전을 하는데 안토니우스는 해전 도중에 쳐발리니까 후퇴하고 클레오가 자살했다는 소식 듣고서 자살한다. 로마 공화정의 문제는 별게 아니라 원로원이었다. 지들만 살 먹고 잘 살려는 원로원 때문에 그라쿠스로 대표되는 평민파가 대두되었고 원로원이 불법적으로 호민관이었던 그라쿠스를 조진 탓에 지들 무덤을 판 것이 제일 컸다. 그라쿠스가 죽창을 들고 일어났을 때 얼른 협상해서 요구를 어느정도 들어줬으면 독재자랑 황제가 나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옥타비아누스가 황제가 돼서 아우구스투스가 된 후 로마는 안정기에 든다. 황제묘도 만들고 로마판 강남도 개발하고 하여간 개발은 존나게 해서 로마시는 인구수 100만을 찍고 로마제국은 짱짱맨이 된다. 아우구스투스가 뒤지고 아우구스투스의 양자 티베리우스가 로마 황제가 된다. 로마황제는 선대황제가 양자를 들여 후계자를 지명하는 방식이다. 티베리우스는 대가리는 존나 좋았지만 인성은 별로였다. 대한민국 국회마냥 병신같은 원로원 얼굴 안볼려고 로마에서 100키로 넘게 떨어진 카프리 섬이란 곳에 틀어박혀 원격으로 로마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로마의 미소년을 섬으로 불러 쎽쓰를 즐겼다는 소문도 있다. 티베리우스가 뒤지자 로마인들은 좋아서 기뻐 날뛰었다. 통치는 잘 했는데 위와 같은 소문때문에 인기는 졸라게 없었다. 티베리우스의 뒤를 이어서 아우구스투스 아들내미 되는 칼리굴라가 황제가 된다. 이새끼도 초창기엔 나름 잘했는데 너무 관심병에 걸려있어서 각종 기행을 일삼았다. 바다위를 배다리로 이어서 말을 타고 건넌다던가...노래경연대회 나가서 노래나 쳐부르다보니 재정이 파탄이 났다. 이새끼를 가만뒀다간 로마가 좆되겠구나 하고 판단한 근위대장에 의해 암살당했다. '폐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쇼!' 일반적으로 알려진 폭군이라는 인식은 약간은 억울한 평가고, 그냥 밍나노 아이도루 느낌이다. 칼리굴라가 데스티니 스탭으로 뒤지고 클라우디우스라는 절름발이 침질질이 일게이가 황제가 된다. 얘는 그냥 나름대로 잘 해냈는데, 마누라를 잘못들여서 나라가 파탄이 난다. 마누라의 이름은 아그리피나. 이름에서도 어글리한 느낌이 난다. 이년이 클라우디우스를 독살했다는 설이 당대에도그렇고 현대에도 유력하다. 클라우디우스가 마누라가 타준 방사능홍차, 아니 독버섯차를 마시고 뒤진 후, 이년 아들내미 되는, 이름도 유명한 검은고양이 네로가 황제가 된다. 얘는 애미랑 다르게 나름대로 대가리가 박혀있었는데, 로마 최대의 라이벌 파르티아와의 외교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내치도 건실히 다지는 등 제법 통치를 잘 해낸다. 그러나 얘를 옆에서 보좌하던 세네카(잘 알려진 그 철학자 맞다)가 보좌관 때려치우고 근위대장 부루스가 뒤지자 고삐풀린 망아지마냥 기행을 일삼기 시작한다. 콜로세움에 기독교도들을 몰아넣고 사자를 풀었다니 하는것도 다 이때의 얘기다. 그런데 이 부분은 기독교도들에 의해 과장된 부분이 있다. 동네 개독교 아주매미가 말하는거 보면 어떤식으로 과장되는지 알 수 있다. 비슷하게 기행을 일삼은 칼리굴라가 그렇게까지 극딜을 맞지 않느걸 보면 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억울하게 뒤진 건 아니고, 이 새끼도 고삐풀려서 측근들 상대로 매미없는 숙청을 자행하고 혼모노 짓(그리스 문화 극빠)이나 하다가 이에 반발한 장군들이 반란 일으키고 원로원까지 배신 때리는 바람에 결국 궁지에 몰린 끝에 자살. ===제정 분열기=== 네로가 뒤진 후에 원로원은 갈바라는 틀딱을 새 황제로 추대한다. 사실상 로마제국 암흑기의 주범은 이 틀딱이다. 하여간 헬조선이나 로마나 틀딱들이 문제다. 이새끼가 황제가 된 후에 통치고 뭐고 때려치고 코드인사를 단행하고 하사금파티나 벌이면서 외지로 보낸 군인들을 홀대하자 빡친 군인들이 들고 일어선다. 라인강 군단 사령관인 비텔리우스가 '구국의 결단'으로 스스로 황제를 칭하고 군단을 이끌고 로마로 쳐들어오자, 놀라서 틀니가 빠져버린 갈바는 히스파니아 속주 총독을 하던 오토에게 칼빵을 맞고 뒤진다. 그리고 오토는 황제로 추대되어 비텔리우스와 일대 회전을 벌이게 된다. 물론 후방에서 좆질이나 하던 오토는 전방에서 뺑이치던 비텔리우스에게 상대가 되지 못해 처참하게 패배한 이후 자살한다. 그 후 비텔리우스는 로마로 들어가 스스로 황제가 되는데, 전방에서도 성깔 더럽던 비텔리우스는 권력맛좀 보자 완전히 돼지새끼가 돼서 국정은 팽개치고 폭식이나 즐기기 시작한다. 이새끼 별명이 '로마의 돼지'다. 라인강 군단 사령관이던 비텔리우스가 황제가 되자, 로마군의 또다른 주력이던 도나우강 군단이 빡이 돈다. 한국으로 치자면 [[수도군단]]장이 쿠데타 일으켜 대통령이 되니 [[7군단]] 부대원들이 빡이 돈 격이다. 하여간 이놈들도 '저새끼도 하는데 우리가 못해?'라는 느낌으로 비텔리우스에게 충성맹세를 거부하고 유대속주 사령관인 베스파시아누스를 황대로 추대한다. 비텔리우스는 예상치 못한 어퍼컷을 맞자 바로 지지 치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다가 로마에 진입한 도나우강 군단과 로마에 남아있던 라인 군단이 시가전을 벌이게 되고 결국 도나우강 군단에게 모가지가 따이고 테베레 강에 시체가 버려진다. 한국으로 치자면 국회의원 중 존나 늙탱이 팔순 가까운 새끼를 대통령 만들어놨더니 [[경기도]] 도지사가 대통령을 죽이고 지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이 때 [[수도군단]]장이 쿠데타 일으켜 도지사를 죽이고 대통령 되었다. 그러자 [[7군단]]장이 또 쿠데타를 일으켜서 수도군단장을 총살시키고 그 시체를 [[북한강]]에 갖다 버린 꼴이다. ===로마 중흥기, [[오현제]] 시대=== 얼떨결에 전 로마의 황제가 된 베스파시아누스는 생각보다 괜찮은 인물이라서 빠르게 로마를 재건하고 제 2의 중흥기를 이끈다. 아들 농사도 나름 잘 지어서 뒤를 이은 티투스, 도미티아누스도 로마를 잘 이끈다. 그러나 도미티아누스는 성격이 더러워서 원로원과의 관계가 극히 좋지 않았고, 이는 결국 밤중에 칼빵을 맞고 뒤진 하룻밤사이에 기록말살형이라는 로마 최고형을 받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기록말살형이 뭔가 하면 저 북조선에서 숙청당한 인간들이 모든 기록물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걸 연상하면 쉽다. 도미티아누스를 숙청해버린 원로원은 또다른 틀딱 네르바를 황제로 앉혀 놓는다. 사실 이 네르바가 도미티아누스 암살의 흑막이라는 설도 있다. 하여간에 이 틀딱 자체는 나쁜 인간은 아니었고, 틀딱이라 금방 뒤져서 한 일은 별로 없지만 후계자를 잘 골라서 5현제에 응딩이 들이미는 명예를 얻는다. 네르바를 뒤이은 후계자는 트라야누스라는 에스파냐출신 인간이다. 여지껏 로마 황제중 이탈리아 반도 밖에서 태어난 사람은 없었으니 꽤나 파격적인 인사다. 이 [[트라야누스]]는 로마의 최전성기를 이끈 인간이었다. 영토확장에도 적극적이어서 다키아를 밟아버리고 파르티아까지 밀어버려 알렉산더 이후로 수백 년만에 유럽새끼들이 다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를 정복하게 될....뻔 했지만 정복은 쉬워도 유지는 어렵다고, 파르티아 각 지역 군주들의 게릴라활동에 의해 파르티아의 수도를 탈탈 털고도 끝내 정복&유지는 못하고 로마로 돌아가던 중에 객사하고 만다. 이 시대에 로마는 라이벌 파르티아를 상대로 100년 동안 우위를 점하며 수도를 3번이나 탈탈 털어버리지만, 끝끝내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영토로 편입시키지는 못했다. 참고로 로마와 파르티아의 끝없는 충돌은 파르티아 중앙정부의 각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약화시키게 됐고, 결국 파르스 지방에서 일어난 [[사산조 페르시아]]에 의해 파르티아가 멸망하게 됐는데...문제는 새로 등장한 [[사산조 페르시아]]는 과거 파르티아보다 훨씬 더 호전적이고 공세적인 국가였다는 거다. 결과적으로 파르티아의 멸망은 로마에게 있어서 이득은 개뿔, 훗날 제국의 절반이 와장창 날아간 상황에서 전보다 훨씬 더 호전적인 적수를 상대해야 하는 입장이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현대 대한민국으로 치면 북한 멸망시켰더니 중국과 국경을 맞대는 꼴이 된 것이다. 그러게 적당히 했어야지 븅신들. 트라야누스를 뒤이어 하드리아누스.안토니누스 피우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어떤 병신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아누스라고 썼었다.) 이렇게 5현제시대가 된다. ===제정 말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현제였는데 아들내미를 잘못 둬서 로마를 말아먹는다. 5현제 시대 이후에 로마는 50년 동안 군인들이 정치에 개입해 자신이 원하는 황제를 세우거나 직접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 자리에 즉위하는 군인 황제 시대가 열려 혼란스러워진 데다 끝없는 게르만족과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공격으로 끝없는 운지의 길을 걸으며, 모든 속주민들에게 시민권을 줘버려 가뜩이나 힘들어진 병사 모집을 더 힘들게 만든 키리칼라 황제 때 정점을 찍는다. 이는 콘스탄티누스가 등장해서 로마제국 자체를 동강내버리기까지 지속된다. 약 370년. 동방에서 ㅆㅅㅌㅊ 똥송인들 [[훈족]]들이 나타나서 유럽에서 흙퍼먹으면서 살던 반달, 고트족들이 로마 제국의 영토를 향해 달아났다. 그리고 378년,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로마는 전지중해 세계에 스스로 고인 인증을 했다. 그리고 410년, 집없는 비시고스(서고트족)들에게 영토 준다고 약속했던 로마는 비시고스들에게 통수를 쳐, 비시고스들의 왕 알라릭 1세가 이탈리아로 쳐들어가 로마를 약탈하게 된다. 그 이후로도 반달족 등, 수많은 야만인들에게 따먹히게 된다. 다만 용병에게 국방을 떠맡긴채 날이 갈수록 나태해지고 타락한 로마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실제로는 로마도 나름대로 제국을 재구축하고 소생시키기 위해 노오오력을 상당히 많이 했다. 근데 노오오오오오력이 필요한 시점에서 노오오력밖에 안해서 망했다. 게르만 용병의 경우는 로마 제국 군인으로 복무하면서(사실 용병이 아니라 보조병 혹은 그냥 로마군인으로 봐야 한다) 정체성도 로마에 상당히 많이 동화되어 로마 국경 밖의 게르만족들을 야만인이라 멸시하며 나는 로마인이다! 뽕을 처맞았던 애들이다. 실제로도 로마 제국 내에 복무하던 게르만계 군바리들은 정체성도 로마인이었고 굉장히 충성스럽게 잘 싸웠다. 흔히 우리가 아는 로마 제국내의 이민족 군대는 이미 동화가 완료된 애들이 아니라 새로 유입된 애들 그러니까 후기의 이미지이다. ㄴ 이글이 사실인 게 게르만족 용병들 때문에 멸망했다는 건 후대의 역알못들의 뇌피셜이고 실제로 서로마 최후의 충신이자 불꽃이었던 스틸리코는 반달족 출신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고 훈족의 아틸라를 격파했던 아에티우스는 스키타이 출신이었다. ㄴㄴ 스틸리코는 동로마 장군 아님? 콘스탄티누스 이후의 로마는 [[동로마 제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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