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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단 == 1885년 톈진조약 이후 조선은 청, 일본, 서구 열강의 좆집이 된 상태였다. 이 상태로 7년간 별 일이 없었다. 1892년부터 동학의 종교 지도자들이 백성들과 같이 집회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종교적 의미가 있는 집회를 했지만 다음 해부터 정치적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다시 조선 정부 상황을 보면 민씨 일가의 세도정치는 극에 달했고 나라는 거의 좆망 수준이었다. 1894년이니까 망하기 일보 직전은 맞네. 지금도 그렇지만 이때 전라도는 조선의 대부분의 쌀을 생산하는 곳이었는데 덕분에 이곳은 항상 공무원 새끼들이 뒷돈을 빼먹었다. 특히 조병갑이라는 탐관오리가 고부군수로 부임하면서 이러한 부정부패는 극에 달했고 농민들에게 별의별 이유를 다 갖다 붙여서 무지막지한 세금을 뜯어낸다. 추수하면 농민이 가져가는 건 1/10도 안 되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동학]]이라는 신흥 종교가 있었는데, 똥수저들이 동학을 많이 따랐다고 한다. 전라도 농민들이 세금 좀 줄여주라고 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ㅈ까라는 것이었고 이에 농민들이 동학을 중심으로 단체로 죽창을 들고 일어나서는 관아에 쳐들어갔다. 조병갑은 기가 막히게 도망가서 조정에 일러바친다. 이후 빼앗긴 곡물들을 돌려주면서 해산하였고 조정에서는 이용태라는 다른 놈을 군수에 앉혔는데 이 새끼는 동학 교도들이 일으킨 폭동이라면서 탄압하겠다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자 농민들은 다시 죽창을 들고 일어나서 탐관오리를 척결하고 보!국!안!민!을 외치며 봉기하게 됐다. 조병갑네 애미가 뒈졌다. 그러자 조병갑은 일개 농민인 전창혁에게 '''지 애미 뒤진 조의금 2,000냥을 내놓으라고 강요했다.''' 근데 그게 있으면 부호지 농민이냐? 결국 전창혁은 못 냈고 조병갑은 그런 전창혁을 [[장살형]]에 처했다. 그 이후는 맨 밑의 진실 단락을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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