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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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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원삼국시대, 달구벌이라는 마을이 형성되었다. [[신라]]의 세력확장으로 인해 신라 땅으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달성공원과 그 일대에 달구화현(達句火縣), [[수성구]]와 달성군 가창면 지역에 위화군(喟火郡) 혹은 상촌창군(上村昌郡), [[달서구]]와 [[달성군]] 화원읍 일대에 설화현(舌火縣), 달성군 하빈, 다사일대에 다사지현(多斯只縣), 대구칠곡에 팔거현(八居縣), 동구 일대에 치성화현(雉省火縣), 舊 현풍지역에 추량화현(推良火縣)이 설치되었다. [[신라]]의 [[삼국통일]]이후 [[신문왕]]이 왕권강화를 위해 위화군 지역에 수도를 옮기려고 했지만 무산되었다. 그래도 신문왕이 수성구 중동 일대에 천도한답시고 [[경주시|월성]] 싸다구 후리는 건물을 세우는 등 나름 크긴 한 것 같다. 안타깝게도 중동유적은 파괴되고 말았다. [[경덕왕]]시기에는 달구화현은 대구현(大丘縣), 위화군은 수창군(壽昌郡), 설화현은 화원현(花園縣), 팔거현은 팔리현(八里縣), 치성화현은 해안현(解顔縣), 다사지현은 하빈현(河賓縣), 추량화현은 현효현(玄驍縣)으로 개명되었다. 그리고 수창군은 화원, 대구, 팔리, 하빈의 4현을 속현으로 거느리게 되었고 해안현은 [[경산시|장산군]]의 속현이 되었다. 그리고 현효현은 [[창녕군|화왕군]]의 속현이 되었다. [[후삼국시대]]에는 [[왕건]]이 [[견훤]]으로부터 도망친다고 피똥을 아주 많이 쌌다. 그리고 여기서 [[왕건]]의 오른팔 [[신숭겸]]이 [[왕건]] 대신 전사했다. 팔공산에서 도심으로 이어지는 지명 대다수가 왕건의 흑역사 그 자체. 암튼 후삼국 통일 직후에는 수창군 수성군(壽城郡), 현효현은 현풍현(玄風縣)으로 개명되고 팔리현은 옛이름인 팔거현으로 돌아왔다. 1018년, [[현종 (고려)|현종]]이 행정구역을 대대적으로 개편할 때, 수성군, 해안현은 경주, 팔거현과 대구현과 하빈현과 화원현은 [[성주군|경산부]], 현풍현은 [[밀양시|밀성군]]으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고려시대 특별 행정구역으로는 밀성군 소속의 구지산부곡(仇知山部曲, 現 달성군 구지면 일대)<ref>현풍현에 감무가 파견될 때 구지산부곡이 현풍현으로 넘어왔다.</ref>, 자이소(資已所, 해안현 북쪽 20리에 있다는데 정확한 위치 불명), 하양현 소속의 안심소(安心所, 現 안심동일대)가 있었다. 1143년 현령이 파견됨에 따라 대구현이 주현으로 승격되었고 뒤에 하빈현, 화원현이 대구현의 속현으로 내속되었다....만 화원현은 뒤에 다시 경산부로 내속되었다. 공민왕 때 수성현에 감무가 파견되면서 해안현이 수성군의 속현으로 내속되었다. 1390년에 현풍현에 감무가 파견되었다. 1394년, 수성군이 현으로 격하되어 대구현에 내속되면서 화원, 하빈, 해안, 수성의 4개현이 대구현으로 편입되었으나, 어떤 시기에 수성현이 경주, 화원현이 성주로 내속되었다. 이후 1419년, 대구, 수성, 해안, 하빈의 4현이 재통합되어 '''대구군'''으로 승격되었다. 이 대구군은 1466년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런조시기 기존 경상감영이 있던 [[상주시|상주]]가 [[임진왜란]]으로 초토화되자 1601년, 경상도 감영이 대구부로 옮겨지면서 경상도의 No.1급 맹주도시로 벌크업하게 되었다. 같은 시기 대구도호부에 화원, 경산, 하양현이 편입되었는데, 1607년 경산현과 하양현이 대구도호부로 분리되고 1684년 풍각현지역이 내속되었다. 영조시기에는 희대의 개뻘짓이 대구에서 일어난다. 유교 탈레반들이 공자의 이름과 같다며 지명을 바꾸라고 한 것이다. 영조도 한 유교 하지만 이건 좀 아닌데 싶었는지 어영부영하다가 결국 바꿔줬다. 암튼, 조선말기 이후 구한말까지 대구에서 기록된 호적이 '대구장적'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대구장적은 현존하는 조선시대 호적([[울산]]부호적, [[산청군|단성호적]])중 유일하게 대도시에서 작성되었기 때문에 조선시대 도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연구하는데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고 한다. 군밤대왕시기에 23부제가 실시되면서 대구도호부에서 대구군 대구부로 강등된다. 근데 1년뒤에 다시 도제를 실시하면서 경상북도 대구군이 된다. 1906년에는 월경지 정리 정책에 따라 풍각현이 있던 각북, 각현내, 각초동, 각이동의 4개면이 [[청도군]]으로 옮겨졌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대구부로 다시 개칭된다. 얼마 안되 도심지를 제외한 농촌지역은 현풍군과 함께 달성군으로 분리,개편되었다. 이후 해방이 되면서 대구시로 다시 개칭되었고 [[6.25 전쟁]]초기 [[북괴군]]의 침공을 피해 임시수도가 된 적이 있었지만 [[낙동강]]전선이 형성될 때 임시수도가 [[부산]]으로 옮겨졌다. 이후 지속적으로 확장하다가 81년 대구직할시로 승격한다. 이후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대구광역시가 되었다. [[2023년]] 7월 1일 [[군위군]]이 편입되면서 가장 넓은 광역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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