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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우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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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세 == === 즉위하기 이전 === [[기원전 550년]], 아케메네스 왕조의 [[키루스 2세]]가 페르시아 제국을 선포한 해에 태어났다. 원래 다리우스는 캄비세스 2세와 6촌 관계에 있어서 왕위계승 후보가 아니었는데, 캄비세스 2세의 사위로 들어가서 인척 관계를 맺었다. 그러던 도중, [[기원전 522년]] [[7월]]경, 가우마타라는 제사장이 [[바르디야]]를 사칭하며 [[캄비세스 2세]]를 암살하고 즉위하자, 귀신같은 눈치로 이 새끼가 짭퉁임을 알아차리고 가우마타를 쳐죽였다. 이후 본인이 [[9월]]에 샤한샤로 즉위하면서 페르시아 제국과 이집트의 주인이 되었다. 그리스 쪽 기록인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는 민주정, 과두정, 독재정 중에서 논쟁이 벌어진 끝에 다리우스가 주장한 독재정이 결정되었고, 해가 뜰 때 처음으로 운 말의 주인이 샤한샤가 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이때 다리우스는 하인에게 암컷의 냄새를 미리 갖고 왔고, 다리우스의 말에게 맡게 해서 [[오르가즘]]을 느끼게 해서 가버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운 말은 다리우스의 말이 되었다. 정통성이 딸리는 양반이었기에 계속 반란군들이 죽창을 들고 깝쳤다. 하지만 다리우스의 능력으로 전부 진압되었고 왕권도 강화되었다. === 동방 원정 === 캄비세스 2세 때 이집트를 정복한 뒤, 다리우스 1세 시기에는 카스피해 남쪽을 장악하고, 동쪽으로 인도 서부까지 정벌했다. [[스키타이]]족과의 싸움에서는 조금 골치를 앓았다. 동에번쩍 서에번쩍 [[베트콩]]마냥 쳤다 빠졌다 하는 스키타이의 전술을 견뎌낼 수가 없어서 결국 스키타이와의 싸움은 포기했다. === [[페르시아 전쟁|그리스와의 전쟁]] === 페르시아는 서쪽으로도 전진해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이스탄불|비잔티움]]을 점령하고 [[고대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들을 먹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499년]] 쯤, [[키루스 2세]] 시절부터 페르시아의 땅이었던 이오니아에서 밀레투스 등의 도시국가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밀레투스는 그리스 철학이 시작된 곳으로, 최초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탈레스]]를 배출한 곳이기도 했다. 여하튼 밀레투스를 필두로 일어난 이오니아의 반란은 [[기원전 493년]]까지 지속되다가 결국 페르시아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근데, 이 반란을 부추겼던 것이 [[아테네]]였음이 뽀록났다. 그래서 페르시아군은 [[기원전 492년]]에 아테네를 벌하러 군대를 보냈으나, 아토스 곶을 지나가던 도중 폭풍을 맞이해 많은 함대가 박살났다. [[기원전 491년]], 페르시아는 그리스에서 깝치는 폴리스들에게 복종한다는 의미로 흙과 물을 바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아테네]]는 사신들을 체포해 법정에 세워서 사형 판결을 내려서 죽였고, [[스파르타]]에서는 빠꾸없이 사신들이 그렇게 원하던 흙과 물이 가득한 우물에 담궈서 즉사시켰다. 딥빡한 다리우스는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군을 이끌고 아테네를 털러 갔으나, [[마라톤 전투]]에서 개쳐발리면서 다시 런했다. 한낱 그리스 오랑캐 쌔끼들한테 쳐발렸다는 게 좆같았던 다리우스는 화병이 났다가 [[기원전 486년]]에 뒤졌다. 이후 [[크세르크세스 1세]]가 뒤를 이어 즉위했다. === 페르시아의 전성기를 가져온 황제 === ==== 왕의 길 ==== 다리우스 하면 앞서 말한 왕의 길이 제일 유명할 것이다. 페르시아의 핵심 거점인 수사에서, [[고대 그리스]]와 가까운 서쪽의 사르디스를 이은 대형 도로였다. 왕의 길은 페르시아의 4대 핵심 도시를 거쳐갔다. 페르시아는 세계적인 제국인만큼 여러 [[메소포타미아 문명]]국가들을 다스리고 있었다. [[아시리아]] 문명의 [[니네베]], [[바빌로니아]] 문명의 [[바빌론]], [[엘람]] 문명의 [[수사]], 그리고 페르시아의 기원이 된 지역 파르스에 세운 신도시 [[페르세폴리스]] 이렇게 4개 도시가 페르시아의 4대 도시였다. 사르디스에서 왕의 길을 따라 동쪽으로 출발하면, 아나톨리아 반도를 가로질러 아시리아의 [[니네베]]에 도착한다. 이후 남쪽으로 향해 바빌로니아의 [[바빌론]]을 지나고, 여기서 두 갈래 길이 나뉜다. 한 쪽 길은 핵심 도시를 연결한 길로, 엘람의 수사와 파르스의 페르세폴리스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다른 한 쪽은 북쪽의 [[엑바타나]]로 향하고, 쭉 가면 유목민족들이 다니는 영역에 들어서면서 짱깨들 있는 데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 사트라프 제도 ==== [[키루스 2세]] 때 그 틀을 잡아놓았던 지방 행정 제도로, 아케메네스 왕조는 전례없는 초거대 제국이었기 때문에 지방마다 특색이 너무 달라서 각자의 특색에 맞는 통치를 해야 했다. 그래서 사트라프라는 총독을 보내 그 지역의 왕처럼 행세할 수 있게 했다. 이들이 다스리는 지역은 사트라피라고 불렀는데 사트라피는 총 20개였다. * 트라케 * 리디아 * 카파도키아 * 아르메니아 * 아시리아 * 바빌로니아 * 아라비아 * 이집트 * 리비아 * 에티오피아 * 메디아 * 수사 * '''파르스''' * 파르티아 * 그리고 기타 등등...(마사게타이, 인도, 박트리아, 소그디아 등...) 그리고 이 사트라프들에게 막대한 자치권을 보장해줬으니, 얘들이 깝치지 못하도록 하는 억제책도 필요했다. 그래서 이들의 모든 행동을 감시하도록 감찰관을 보냈다. 이 사람들은 왕의 귀, 왕의 눈이라고 불렸다. ==== 경제 및 종교 ==== 경제가 발전하면서 물물교환 그 이상의 경제 제도를 갖춰야 했고, 그래서 통일된 지불 수단을 만들었으니 그게 바로 동전이었다. 금화인 다릭과 은화인 시글로스를 사용했다. 종교적으로는 페르시아인의 전통 종교를 바탕으로 [[자라투스트라]]가 창시한 [[조로아스터교]]를 장려했다. 당시 세계 대부분은 자연의 초월적인 힘을 신에 빗대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다신교를 믿었으나, 특정 인간이 인위적으로 내용을 가공해서 만든 일신교가 제국을 장악했다는 것은 특이한 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로아스터교 ㅈ까를 시전한 다신교 신자들을 쳐죽이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종교도 제국에서 공존할 수 있게 관용을 배풀었고, 유대인들의 [[유대교]]라든지 이집트의 [[이집트 신화]]라든지 믿을 수 있게 계속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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