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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918년 태조 [[왕건]]이 [[궁예]] 통수를 치고 건국하여 후삼국 통일전쟁을 거쳐 좆반도를 재통일한 후 1392년 [[이성계]]에게 멸망하기까지 474년간(약 500년)을 [[한반도]]를 지배하였던 국가이다. 중국 정세를 잘 활용한 얌체스러운 국가였는데 당시 중국이 [[당나라]]가 사망하고 개판오분전인 [[5대 10국]] 시대였기 때문에 [[광종]] 시기 일부를 제외하면<ref>이때는 아예 대외적으로도 황제국을 공포했다.</ref> 나름대로 지들끼리는 황제국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외왕내제라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중국 정세를 아주 잘 활용해서 대박이 났지, 중국 정세도 존나 지랄맞게 굴러가는데 이용을 못해서 [[조선|망한 나라가 더 있다.]] 전체적으로는 [[고구려]], [[발해]]에 이어 3번째로 단일연호를 사용한 국가이며 단일연호, 황제국을 자칭한 기간이 한민족 역사 국가중 가장 긴 나라이기도 하다.<ref>고구려는 '영락'이란 단일연호를 사용한 광개토대왕 시기와 일부 시기가 유일하며, 발해 역시 무왕 시기가 유일하다. 반면 고려는 태조 왕건부터 시작해 원 간섭기로 인해 자주성을 훼손되기 전까지 황제국을 자청했다.</ref> 고려 외에는 [[발해]]가 이런 짓을 했고 한국 외에는 역대 [[베트남]] 왕조들이 외왕내제를 고수했다. 고려는 외왕내제 등 자주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어디까지나 잠깐이었고 곧 [[송나라]]가 중국 대륙을 재통일 하자 송나라 응딩이 뒤에 착 붙었다. 한편 송나라도 좆병신인 건 매한가지라서 유목민족들에게 허구한 날 줘터졌다. 송나라가 생산력은 좋았는데 하필 이때가 유목민족의 최전성기라서 그냥 개털렸다. 고려는 이걸 존나 교묘하게 이용하여 [[송나라]]와는 표면적으로는 외교 관계가 단절된 상태였으나 비공식 채널을 통해서 계속 교류하였다. 그리고 북쪽에서 존나 덩치를 불리던 [[요나라]]와의 [[여요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송나라 같은 좆밥이 아님을 인증함으로써 [[현종]]대부터 [[예종]]까지 100여 년의 기간 동안 태평성대를 누렸다. 또 고려의 특징으로 건국 이념으로 '''북벌'''을 택했다는 것이 있다. 태조인 왕건은 고구려를 계승하여 고려의 국명을 칭했고 초기부터 북벌을 국가 이상으로 삼으며 망하기 직전인 공민왕까지 북벌러쉬를 끊임 없이 포기하지 않고 조졌다. 하지만 모든 전성기는 훗날의 몰락을 낳는 법인데 12세기에 들어 고려의 지배층 내부에서는 문벌귀족들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요나라]]가 뒤지고 [[금나라]]가 들어서면서 얍샵이로 전쟁을 피하는 한편 외척들과 환관 같은 측근 세력 간에 정치권력을 둘러싼 대립이 치열해지기 시작한다. 이런 지도부들의 권력 투쟁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기 시작한 군부가 이에 반발하여 [[무신정변]]이 일어났고 100여 년에 걸친 [[무신정권]]이 수립되었다. 이때부터 고려의 기나긴 좆망의 역사가 시작되는데(더 정확히 말하면 인종 새끼 때부터 좆망테크 끊었다. 물론 의종이 좆병신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회 시스템 자체가 붕괴하기 시작하여 전국 각지에서 민란이 발생했다. 그러나 실제 고려의 강려크한 군사력은 [[고려의 여진 정벌]]에서 끝났고, [[몽골제국]]의 경우, 남송 치면서 겸사겸사 보냈던 2~3만 언저리에게 영혼까지 털려서 [[경주]]까지 밀려나고 40여년간 몽골군에게 털리면서 한반도 전역에서 고려 중기 이전의 목조 건물과 사료들이 사라지는 수모를 겪는 병신 걸레짝 국가가 되었다. 이후 고려는 몽골 제국과 그 후신인 [[원나라]]의 딱가리가 되어 가까스로 목숨만 유지하는 신세를 80년 동안 보내게 된다. 몽골의 따까리 시절 동안 국가 행정은 더욱 좆망해서 군사력마저 약화되었고, 이는 말기 왜구와의 전쟁 때는 정규군이 없던 관계로 각 지방 가문들의 사병들을 동원하여 이를 격퇴하는 수준까지 망하게 된다. 그러나 공민왕 시기 잠깐 부흥하면서 요동을 잠시 점령하였으며, 황제의 칭호를 복구하진 못했으나 노란옷을 고수하는 등 자주국으로서의 스탠다드를 보여주기도 했다. 결국 내치가 좆망인 상태에서 요동정벌을 시도하자 반발하여 [[위화도 회군]]으로 실권을 장악한 [[이성계]]의 신군부에 의해 허수아비 왕들이 교체되다가 "으따 니 새끼는 왕씨의 자손이 아니라 신돈의 자손이랑께" 라며 누명을 쓰고 멸망당했다. 그런데 이 폐가입진이라는 핑계가 사실이었다면 순순히 정권을 넘긴 왕족 뿐 아니라 전국의 왕씨를 다 잡아다죽인 왕씨대학살 이라는 [[히틀러]], [[스탈린]], [[나폴레옹]], [[올리버 크롬웰]]이 울고 갈 미친 학살짓거리를 전국 방방곳곳 뒤져가며 국력의 기본인 인력을 갈아죽여가면서까지 악독하게 [[이성계]]-[[이방원]]이 했을 리가. 즉 지들이 생각해도 구린 데가 있고 인간들이 믿지를 않으니 죄다 갈아넣어죽인 다음 살아남은 자기 일족과 휘하 패거리 사람에게 나머지 역사를 주입시킨 것일 뿐이다. 자세한 부분은 [[왕씨 대학살]] 참조. 허풍도 존나게 심했다. 고려사를 따르면 원나라는 장사성 토벌에 800만 대군을 동원했다고 한다.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17/05/18894 국뽕 새끼들도 어이가 없었는지 80만으로 보는 중이다.] 이와 맞먹는 허풍은 베트남에서 명의 700만 대군과 싸웠다는 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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