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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살롬의 난 === {{쌤통}} {{참교육}} {{패륜아}} 다윗의 아들 중에서 가장 총애받았던 아들은 압살롬이었다. 그에게는 다말이라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이복 오빠인 암논이 다말을 강간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다윗은 이 사살을 듣고 분노했으나 암논에게 특별한 징계를 내렸다는 말은 없다. 압살롬은 이 사실을 두고두고 가슴에 품고 복수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마침내 2년 후에 잔치를 열어 왕자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암논을 살해하고 달아난다. 압살롬이 도망친 후 3년이 지나자 다윗이 압살롬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이를 눈치챈 요압이 술수를 부려 압살롬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다. 그러나 다윗이 압살롬을 만나려 하지 않았고 2년동안 왕을 배알하지 못하자 요압을 중재역으로 삼아 왕을 만나러 했으나 요압도 압살롬을 보려 하지 않았다. 화가 난 압살롬은 요압의 밭에 불을 질렀고 그제서야 요압의 요청으로 다윗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다윗에게 이미 크게 실망한 압살롬은 역심을 품은 상태였다. 소송 문제로 왕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 왕을 대신하여 재판하여 이스라엘인들의 민심을 얻기 시작했다. 4년 후 서약을 지키기 위해 헤브론으로 가게 해 달라는 요구를 다윗으로부터 윤허받고 압살롬은 다윗의 자문관이었던 아히도벨을 포섭하고 헤브론에서 자신이 왕이 됐음을 선포한다. 압살롬의 지지 세력이 매우 커진 것에 놀란 다윗은 자신을 따르는 신하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도망친다. 압살롬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다윗의 후궁들을 강간하였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즉각 군대를 보내어 다윗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다윗의 친구인 후새는 지금 다윗을 치는 것은 새끼 잃은 어미곰을 건드리는 것과 다를 바 없고 대규모 병력을 편성한 후에야 다윗과 싸울 수 있다고 아히도벨의 의견에 반박한다. 후새의 책략은 사실 다윗에게 시간을 벌어줄 의도였지만 압살롬은 후새의 책략을 채택했고 아히도벨은 압살롬의 패배를 직감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목을 매달고 자살한다. 시간을 벌게 된 다윗은 군대를 모아 압살롬과 싸울 준비를 한다. 마침내 병력을 모은 다윗은 싸우기 전에 압살롬은 살려줄 것을 당부한다. 에브라임 숲속에서 다윗군은 압살롬의 반란군과 싸워 승리를 거두었고 대패한 압살롬은 도주하던 중 머리카락이 상수리나무에 걸려 매달린다. 이것을 본 요압의 부하는 요압에게 보고하는데 요압은 어째서 압살롬을 죽이지 않았냐고 책망하나 부하는 왕의 명령을 분명히 들었기 때문에 압살롬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요압은 더이상 말싸움을 하지 않고 손수 압살롬에게 가서 창으로 압살롬의 심장을 찔러 죽인다. 이 전투에서 다윗은 부하들의 만류로 직접 나사지 않았기 때문에 요압의 항명행위를 막을 수 없었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다윗은 병사들이 승전했음에도 그 기쁨을 드러내지 못할 정도로 슬피 울었고 요압이 철면피를 깔고 왕에게 반역한 자를 위해 통곡하면 왕을 위해 싸운 자는 뭐가 되냐며 간언하자 다윗은 자신을 위해 싸운 사람들과 피난길에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상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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