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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시대 === [[19세기]] 초 동아시아가 조공 책봉의 현 외교 상태에 만족하던 중 서양은 이미 수많은 전쟁을 통해 외교감각을 쌓은 상태였고, 아편 전쟁 때 청나라가 영국의 신식 무기에 속수무책으로 개털리며 서양인들이 동양은 개좆밥이네? ㅎ 와 같은 마인드를 가지게 되었다. 청나라는 두 번이나 서양에게 털리며 항구를 개항했고,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제국이 되어 청나라와의 조공책봉관계를 완전히 청산했다. 조선은 세도 정치와 함께 더 이상 명나라에 대한 미련은 거의 버렸고 청나라에 조공 바치며 어찌저찌 지내다가 흥선 대원군의 집권 및 실각으로 고종 친정 시기에 일본과 [[강화도 조약|조일수호 '조규']]를, 청나라와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조청상민수륙무역 '장정']]을 체결하며 근대적 조약과 구시대적 조공책봉관계의 경계선 쯤에 있는 조규와 장정을 맺었다. 이때 조규와 장정은 조약과는 다른 것으로 동등한 국가끼리의 약속보다는 황제국이 왕국과 맺는 규정에 가깝다. 청과 일본 모두 황제국이었고 청나라가 근대적 수법으로 조선에게 체결을 강요한 장정의 경우에는 조선을 속방으로 '명시' 했다. 그 전까지는 조선이 속방으로 명시된 것이 아니라 암묵적으로 조공책봉 관계만 유지되었을 뿐이다. 이후 청나라는 1885년 청불전쟁에서 프랑스에게 발리며 베트남과의 조공책봉관계가 끊겼고, 1895년 청일전쟁에서 발리며 조선과의 조공책봉관계도 끊기며 전근대식 조공책봉 외교는 사라지게 된다. 일본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영국과 동맹을 맺었으며 러일전쟁에서의 승리로 서양 열강에 준하는 대우를 받게 되었다. 이후 을사조약으로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후 5년 뒤에 합병시키며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연합국의 편에 서 독일의 태평양 식민지들을 모두 가져갔다. 청나라는 1899년 의화단이라는 사이비 단체를 함부로 끌어들였다가 서양의 분노를 사 1901년 신축조약을 맺고 반식민지 상태가 되었으며 껍데기만 남은 청나라는 1911년 신해혁명을 통해 사라지며 중화민국으로 바뀌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전간기 동안 동아시아에서는 공산주의 등의 이념이 퍼져나갔으며 일본 내의 정치적 분쟁과 대공황에 의한 일본 경제 타격으로 일본 군부가 폭주하며 중일 전쟁으로 이어졌다. 파시즘과 군국주의가 판치던 시기에도 소련과 미국은 언젠가 한 판 붙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둘 다 일본을 하루빨리 제압해야 자기들끼리 싸우기 수월해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자 미국은 일본의 폭동을 진압하러 나선 반면 소련은 나치의 침공 때문에 일본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여하튼 전간기 동아시아 정세는 중국 vs 일본으로 이해가 가능하며 알다시피 일본은 원폭을 쳐맞고 쳐발린 후 전범국으로 낙인이 찍히며 핵보유 시도조차 금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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