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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남들에 의해 명성을 얻은 기관총==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이 난사해대는 [[MG42]]는 [[소련]]군에게 분노의 대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경탄의 대상이기도 했다. 많은 소련병사가 [[MG42]]가 난사하는 총탄에 사살당하면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그와 같은 좋은 무기를 사용하는 [[독일]]군들을 부러워했다. 물론 소련군도 [[DP 경기관총]]과 [[PM M1910]]중기관총 같은 다양한 종류의 기관총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MG42]]처럼 휴대가 편리하면서도 강력한 화력을 보유한 기관총은 없었따.(다른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론상으로 DP와 PM M1910을 같이 사용하면 독일군에 못지않은 위력을 보일 수 있지만 제식무기가 이리저리 나뉘는 것은 부대 운용을 비효율적으로 만들고 작전을 짜는데도 그리 좋지 않았다. 전쟁이 격화될수록 소부대간 교전에서 독일군 보다 화력의 열세가 계속되자 일선으로부터 편리하고도 강력한 새로운 기관총에 대한 요구가 심해졌다. '''이에 소련 당국은 여러 총기 설계국에 새로운 경기관총의 개발을 지시했고 1944년 DP 경기관총을 개발했던 ''바실리 데그탸료프''의 개발안을 전격 채택하여 생산에 들어갔다. 그것이 바로 RPD, 즉 데그타료프 경기관총(또는 데크차례프)이다.''' ===전후를 연 기관총=== '''RPD는 이후 [[SKS]]소총과 [[AK-47]]에도 채용된 7.62x39mm 탄을 처음으로 사용한 총기다.''' 따라서 7.62x54mm탄을 사용하던 이전 기관총들에 비해 반동 제어가 용이하여 총기의 중량을 획기적으로 감소할 수 있었다. 정작 RPD가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 2차대전은 막을 내렸지만, 종전 후 [[소련]]군은 모신-나강을 대신한 [[SKS]]반자동소총과 [[RPD]]로 보병을 무장시키기로 결정하고 대량생산에 착수했다.(그러나 SKS는 AK-47의 등장으로 망한다) 2차대전에서의 호된 경험으로 [[소련]]은 각종 중화기의 개발 못지않게 일선 보병의 화력 보강 또한 상당히 중요한 문제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전 세기에 개발한 [[모신나강]]이나 1차대전 직후 만든 기관총으로 다시 전쟁을 벌인다면 승패를 장담하기 힘들었다. 따라서 이전보다 휴대가 간편하면서 화력이 훨씬 강한 [[SKS]]와 소부대 화력지원용 [[RPD]]의 조합은 상당히 훌륭한 결정이었다. 이렇게 데뷔시기는 조금 늦어 2차대전에 사용은 못했으나 RPD는 1950년대 부터 [[소련]]군의 주력 경기관총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양각대를 표준 장비로 장착했기 때문에 엎드리거나 진지에 거치하고 사용하기 편리했고, 부착된 총띠를 이용하면 이동 중에도 사격이 가능했다.''' 이처럼 RPD는 항상 일선 보병과 함께 작전을 펼칠 수 있도록 최적화된 경기관총이었다. ===명성을 얻다=== [[소련]]군이 처음부터 그렇게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RPD는 SAW(분대지원화기)의 개념을 정립하는데 커다란 공을 세웠다. '''[[베트남 전쟁]]에서 이를 노획하여 사용해본 [[미군]]은 8킬로그램도 되지 않는 경량임에도 화력이 뛰어난 RPD에 감탄했다.''' 분대원들과 함꼐 활동하며 가까이서 화력을 지원하는데 안성맞춤이었다. 특히 소총과 같은 탄을 사용한다는 점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의 기관총은 7.62mm 탄을 사용했지만 소총은 5.56mm탄을 사용하여 보급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소총과 같은 탄을 사용하는 RPD는 [[FN 미니미]]나 [[M249]]처럼 다양한 SAW가 등장하는 촉매제가 된다. 하지만 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원래 있어왔던 방식이었다. 미군도 5.56mm 탄이 나오기 전에는 소총과 기관총에 같은 탄을 사용했다. RPD는 동구권에 대량 공여되었는데 [[중국]]에서 '[[56식 경기관총]]', [[북한]]에서는 '[[62식 경기관총]]'이라는 이름으로 라이선스 생산되어 일부는 아직도 제식무기로 사용 중이다. 특히 [[중국산]] 56식은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민]]과 [[베트콩]]이 대량으로 사용하면서 RPD의 명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RPD는 특히 가벼워서 신체가 작은 동양인들도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었고, 환경이 열악한 밀림에서도 적은 고장으로 무난히 작동했다.''' ===자국에서의 외면=== RPD는 가스압 작동방식이며, 데그탸료프의 이전 작품으로 가혹한 조건에서 사용 및 유지보수가 편리했던 DP의 장점을 따서 만들었다. RPD는 사용이 편리하여 여러 나라에서 대호평을 받았지만 '''정작 개발국인 [[소련]]에서는 일선부대에서 선호하는 무기가 아니었다.''' 이는 성능보다는 운용 방식과 생산 문제 때문이었다. 우선 RPD의 특이한 급탄 방식에 원인이 있었다. '''드럼 탄창을 사용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텐데 사실 RPD는 100발씩 장착된 금속 탄띠를 드럼모양으로 제작된 전용 컨테이너에 수납하여 사용하는 탄띠 급탄식이다.''' 이 방식은 휴대를 간편하게 만들었지만 재장전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유사시에 함께 작전을 펼치는 보병들에게 공급되는 탄약을 즉석에서 사용할 수가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소련]]에서는 1950년대에 사용하면서 실탄 통용화의 의미가 반감되었다. 더불어 제작비가 고가이며 제작시간도 상당히 걸린다는 절삭가공 방식 또한 보급을 더디게 했다. '''그런데 바로 이때 RPD의 운명을 가르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전쟁의 신, [[AK-47]]의 등장이었다. [[AK-47]]은 [[소련]]이 2차대전 후 [[SKS]]와 RPD로 보병을 무장시키려던 야심만만한 계획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포기하도록 만들어버렸다!''' [[SKS]]는 불과 2년 만에 제식 무기 명단에서 탈락했고, [[AK-47]]로 무장시킨 보병은 이전의 어떠한 보병들보다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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