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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란의 사정 == 이 엄청난 일을 저지른 자들 중 가장 계급이 높은 자는 중좌(=중령)였던 무라나카 타카지라는 자였고, 어지간한 국가 기관 습격이나 요인 사살등은 20~30대의 중위~대위급 인물에 의해 지휘 됐다. 총리대신 얼굴을 제대로 알 턱도 없었고, 엉뚱한 사람이나 쏴 죽이는 약관의 초년생들이 대사건을 일으키고 원로들을 참살했다는 점에서 병크가 팍팍 드러난다. 초년생들이 대사건을 일으킨 이유는 자기들이 소속된 1사단은 창군 이래 도쿄를 벗어난 적이 없는데 만주 파견 소문이 들리자, 이것이 반대 파벌의 음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통제파가 수 쓴 것도 맞는 말이다. 근데 황도파 또라이들이 맨날 선동하고 하극상 한 거에 대한 정당방위에 가까웠다. 방아쇠 자체는 저렇기는 한데, 기저에 다른 이념이나 의식들이 폭약 마냥 쌓이고 쌓였던 것 같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전세계적으로 군축이 이루어진 덕분에 실업자가 된 군인들이 많았다. 재취업이 되냐 안되냐를 떠나, 만주군 소위 다카키 마사오가 고향으로 돌아오자 그에게 모질게 굴었던 학교 교장과 경찰서장을 무릎 꿇고 사과했던 시대였는데, 그 좋은 자리가 구조조정이라니 ?? 무슨 날벼락인가. 더욱이 군축의 명목이 기계화 현대화 등이었던 터라 스스로를 근대화의 피해자로 여겼던 농민, 하급 무사 출신 장교들은 군축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황도파의 또라이들은 흙수저 출신이 대다수였다. 두번째는 경제 문제. 쌀 폭동 반동 공황 관동 대지진과 쇼와 금융 공황 세계 대공황 등등 은행 줄도산이나 재해가 무슨 3~4년 단위로 터지니 높으신 분들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시국을 어찌 보시는지 너무나 의심스럽다. 사회적으로는 「4대 재벌 일족이 일본을 사유화 한다」, 「현 정치권은 빈곤한 농촌이나 퇴폐한 도시를 제대로 감독하고 있지도 않고 해결할 의지도 없다」, 「간신배들이 나라를 농단하고 있다」 이런 식의 불만이 사회에 팽배해있었고, 이러한 내부적인 불만이 중국 찌르기라는 히스테리로 표출되던 시대였다. 그리하여 군 내에 파벌이 갈린다. 군축으로 인한 위기 의식(= 군축의 풍파를 막기 위해 밀어주고 끌어줄 파벌이 있어야 된다)+ 사회적인 불만 + 천황에 대한 숭배나 신토 등 고유의 종교 관념과 섞여 나온 군 내의 파벌이 황도파라는 집단. 그들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군이 뼈대가 되어 비범하신 천황 폐하는 체제의 정점에 태양같이 군림하시고, 나쁜 재벌들과 간신배들을 타파하면 (=군대가 주축이 돼서 통제 경제를 운용하면) 실업, 농촌 빈곤, 사회 격차 등이 완화될 것으로 봤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좆본군의 군기 문제가 있다. 2.26 직전에 터졌던 쿠데타로 5.15 사건이 있는데, 이 폭동의 수괴들은 총살이 마땅했다. 근데 '애국심이 지나쳐서 그런 거니까 봐주자'라는 게 좆본의 여론이라서 약하게 처벌했다. 그러다 보니 육군의 병신들이 '우리도 해볼까?'한 거다.<ref>근데 히로히토 새끼가 2.26은 강경 진압하라고 지시해서 작살난다. 병신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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