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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IMF 외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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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원인 == {{진실과거짓}} 1. 박정희 대통령이 산업화를 위해 빌렸던 돈을 후대 대통령들이 갚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1979년 국가 채무 240조가 1997년까지 이어져 크게 기여했다. 애초에 갚을 능력도 없었는데 밑도 끝도 없이 빌렸다. 한마디로 지가 경제를 성장시켜놓고 뒤처리를 안 한 탓에 망해버린 셈이다. 그러게 적당히 처먹지. ㄴ 갚기도 전에 재규어 발터ㅂ에 관통 당해서 뒤졌는데 뭐 어쩌라고? 애초에 땡전 정부 전까지만 해도 겨우 개발도상국 진입한 정도의 경제 수준이었다. ㄴ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11290020920201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0-11-29&officeId=00020&pageNo=2&printNo=18202&publishType=00020] 이건 좀 억지인 게 1981년도 정부 예산이 7조 8천억 원이었다. 당시 240조 부채가 있었다면 씨발 지금 좆본이 헤븐으로 보일 수준이구만 뭔... 참고로 240조 국가채무 달성한 건 2005년도임. 대체 그거 어디서 가져온 '팩트'냐? 혹자는 박정희 때 [[대기업]] 위주의 경제 개발 때문에 IMF가 터졌다고 헛소리하는데, 간접적인 영향이 있을 수는 있어도 직접적으로는 전-혀 관계없다. 왜냐하면 전두환 노태우 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수준 차이를 존나 좁혀놨고 국민 70% 이상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소득의 분배가 잘 되어있었다. 근데 이 모든 걸 땡삼이 이 븅신 새끼가 다 말아먹었다. 2. 대기업 줄도산. 이것 때문에 삼성이 망하면 한국이 망한다는 헛소리가 나왔다. 망하든 말든 놔두면 될 걸 지들과 친하다고 어차피 망할 회사들 지원했다가 국고가 비어버렸다. 그렇게 해서 회사가 살아났으면 모를까... 다 망했다. 대기업 몰아주기 식으로 경제를 발전시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톡톡히 보여준 사례. ㄴ 애초에 이때 망한 기업들 보면 사업 키운다고 회사 시가총액 300% 대출은 기본이었던 상황이다. 안 망하는 게 더 신기한 꼴이었다. 이때 대출 안 하던 회사들은 대체로 오히려 망한 회사들을 인수해서 커진 경우도 있다. ㄴ 근데 이때 망한기업들 대부분 상태보면 정상이 아니다. 부채비율이 회사 시총의 200% 이상이 기본이었다. 무리하게 사업확장하다 말아먹은 케이스가 대부분, 더군다나 이새끼들은 정권이랑 유착해서 원래대로라면 이정도의 부채를 안고 운영할수 있는 회사들이 아니다. IMF 당시 가장 부각된 기업이 한보그룹인데 그새끼들 빛만 5조다. ㄴ 이 여파로 현재의 한국 대기업들은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했을 때 편집증적으로 재정상태를 양호하게 유지하려고 애를 쓰는 경향이 있다. 다들 IMF 때 주변 대기업들이 어떻게 작살났는지 지켜보았기 때문. 3. 환율 정책 실패. 김영삼 대통령이 욕 먹는 이유 중 하나다. 국민소득 1만 달러(OECD 가입 조건)를 임기 끝까지 유지하고 싶어서 시행한 정책인데 패망했다. 정확히는 환율이 급등하기 시작한 11월에 하필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이 민감한 시기에 환율이 급등해서 지지율에 영향을 줄까 우려한 정부에서 필요 이상으로 과도한 환율 방어를 해버린 것이다. 처음엔 미국한테 도와달라고 얘기는 했지만 구조적으로 병신이라서 지원해도 한국이 일어설 수 없다고 여기고 거부했다. [[금모으기 운동]] 아니었으면 현재의 그리스처럼 됐을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왜 이게 문제가 되었는지 부연 설명을 하면,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보유고의 달러를 전부 쏟아부어서 나중엔 보유한 외화가 달랑 2만 달러밖에 안 남아있었다.''' 당연히 외화가 부족해서 제 시간에 외채 상환하지 못 했고 결국 IMF에게 손 내밀었다. 그리고 환율 정책 실패는 관료나 정치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 김영삼 한 놈의 똥꼬집으로 인해 벌어진 거다. 그놈의 1만 불을 지키라고 하고 안 지키면 "니도 전두환 노태우처럼 골로 가고 싶냐?"라고 협박질을 하며 지랄 염병하니 밑에선 씨발거리면서 어떻게든 방어하다가 이 사단이 난 것이다. 어휴 이래서 민주팔이 새끼들은 지들 모르는 분야에는 신경 끄게 만들어야 한다. ㄴ 근데 원래 닛뽄식 경제 발전 따라하면 금융, 환율 쪽이 존나 취약해진다. 지금의 중공을 떠올리면 된다. 이 새끼들이 괜히 금융 개방 안 하고 환율에 목숨을 거는 게 아니다. 한국이 어떻게 좆망하나 보고 배운 거다.(갓본은 쌓아놓은 게 워낙 많으니 버텼던 거고) 물론 김영삼이 금융 무리하게 개방하고 환율 정책 말아먹은 건 사실이라서 김영삼한테 면죄부는 못 준다. 참고로 당시 한국이 이랬던 것과는 달리 말레이시아는 IMF의 요구 쎙까고 고정환율제로 방어했다. 덕분에 놀라울 정도로 외환공격의 방어를 성공했고 한국이 완벽히 외환의 노예가 된 정반대 사례로 말레이시아는 약간의 타격만 입고 주권을 보호했다. 4. 정부의 투자 방향 실패. 정부에선 국내 금융계에게 동남아에게 투자하라고 존나 권유했고 떨떠름한 국내 금융계는 "그거 나라에서 보증 못하면 못해줘."라고 뻐기자 정말 보증해버렸다. 그래서 동남아 애들이 줄줄이 폭망을 하니까 그 여파를 직격으로 맞았다. 정부 입장에선 한국이 고도성장한 것처럼 동남아 애들도 고도성장할 줄 알았나... 똥남아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언제나 거지 새끼들이었는데 뭘 봐줄 게 있다고 그렇게 투자를 종용했는지 모르겠다. 5. 김대중을 비롯한 야당과 여권 신한국당 내의 이회창, 이인제 등 반땡삼파의 금융개혁법안 방해 {{인용문|국가부도 위기 속에서 치러졌던 1997년 대선에 비하면, 이번 대선은 적어도 경제적인 측면에선 평화로울 정도다. 그 당시 여당은 경제위기 책임론으로 정신이 없었고 야당은 그러한 경제가 더 망가지기를 바라듯이 국제 신용도 회복을 위해 정부가 그토록 원했던 금융개혁법안을 끝내 국회에서 승인해 주지 않았다.|[파이낸셜뉴스 2002-12-08 17:10] [fn시론] 大選과 경제}} 이러고서 정작 머중이가 머통령이 되니까 태세 전환하고 원래 반대했던 금융 개혁 법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96년에 여대야소 상황이었으나 김대중을 비롯한 야권들은 정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협조하지 않았고 가뜩이나 임기말 레임덕에 시달렸던 김영삼의 여권 내 대권주자인 이회창과 이인제는 땡삼이 색채를 지우기 위해 거리를 두었고 고분고분 협조할 생각이 없었다. 이회창이 당권 잡은 후 신한국당을 한나라당으로 개칭할 정도였으니. 결국엔 97년 11월에는 피닉제가 자기 세력 이끌고 대거 탈당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여권도 분열되어 야당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했다. 물론 그중에서 김대중은 하겠다고 약속해놓고 통수 쳤고, 정권 바뀌자 반대했던 개혁법안을 다시 써먹는 더블 통수까지 보여줬다. 역시 책임 전가 마스터 정치 고인물 답다. 정치 생존 전문가 김대중의 전형적인 닉값하는 DJ스러운 '통'들링이다. 그리고 역시 땡삼이를 버린패로 생각하고 있던 이회창과 이인제도 뒤에서는 IMF요구 수용한다고 약속해놓고 앞에서는 김영삼의 개혁법을 사이좋게 반대했다. 당시에는 IMF + 레임덕이 겹쳐서 '이게 다 김영삼 때문이다'가 여론이었기에 영삼이의 측근 빼면 전부 김영삼 극딜했다. 김영삼이 금융개혁법 밀어붙일 수 있었다는 건 당연히 개소리고 김영삼빼고는 모두가 통수쳤다는 것도 사실이다. 가뜩이나 임기말 레임덕이어서 알맞게 통수칠 각이 또 잡혔잖아? 킹직히 이건 어쩔수 없지. 암 손절해서 꼬붕 이미지 세탁하고 대통령 먹어야제~ 이런 당시 한국 정치상황을 포착한 IMF는 미리 대권 거물 주자 3인방에게 사실상 복종 각서를 쓰게 했고 막나가는 박정희라도 깡드쉬에게 개기는 건 불가능했다. 어쩌면 국가주도적인 경제발전을 택한 박정희가 더 혹독하게 당했을지도? 그리스 치프라스 새끼가 아가리 털다가 줘털리고 버로우 탄 거 봐라. '''결정적으로 말하자면 원래 우리는 IMF 타격대상도 아니었다.''' === 민주화 운동 세력(운동권)의 근본적인 문제 === {{원흉}} {{극혐}} {{꼰대}} 머중이건 땡삼이건 결론부터 말하면 '''국정 운영은 좆도 모르는 새끼들이 권력 욕심만 좆나 많은 것'''이 문제다. ==== 문민정부 시기 ==== 땡삼이를 보자. 그 당시 20대, 30대가 김영삼을 IMF로 기억하는 주된 이유가 뭐겠냐? 김영삼 가리켜서 '민주화 운동에 일생을 바친' 인간이라고 하는데, 맞는 말이다. 민주화 운동'에만' 일생을 바쳐서 그 외에는, 특히 경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불통의 지도자였다. 수많은 경제 전문가들의 강력한 경고가 이어졌음에도 지를 공격하려는 구체제의 정치 공세로 몰아댔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며 그 시간에 민주 대통령 코스프레질, 포퓰리즘 정책으로 언론플레이를 하였다. ㄴ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들을 반대하는 세력을 구체제의 정치적 모함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민주 대통령 코스프레에 포퓰리즘 정책? 이거 완전 '그 분' 아니냐...? :ㄴ근데 김영상이 오든 누가 오든 못 막을거라는게 정설 아닌가? ㄴ 한국은 예나 지금이나 대통령 권한이 노무 큰 나라이기에 대통령이 경제에 관심이 있거나, 최소한 전문성이 있는 관료들을 자리에 배치해놨으면 최소한 치명타는 피할 수 있었음. 하지만 아무것도 안하고 손놓고 문제제기하는 전문가들 죄다 '정치공세'로 규정짓고 여론몰이해서 쫒아낸게 김영삼임. 경제를 '문민'이라는 정치의 도구로 사용한거임 마치 침팬지가 주운 엽총을 몽둥이인줄 알고 휘두르는것 처럼. 물론 위기 책임을 김영삼에게 전적으로 지울 수는 없지만 이 나라에서 최고로 큰 책임을 가지고 있는건 당시 대통령인 김영삼임. :ㄴ 내가 기억나는건 그 씹새끼 구 조선총독부 폭파한것외엔 기억나는게 없음 게다가 그 조선총독부 폭파도 나중엔 독으로 자극 했지 적어도 김영삼이 행정 분야는 본인이 영입한 [[손학규]]한테 넘겨줘서 손학규를 '실세 총리'로 만들어 줬어도 이 사단은 안 났을 거다. 손학규는 김영삼과 정반대로 정치감각은 드럽게 없는 새끼지만 적어도 행정능력 자체는 뛰어난 행정가이기 때문. ==== 국민의 정부 시기 ==== 대중이를 보자. http://www.parkjoosun.pe.kr/system/bbs/board.php?bo_table=story_2&wr_id=5 위 링크에서 박주선은 김대중 시절 청와대 법무비서관이었는데 이 새끼가 청와대 인사권 맡고 있었을 때는 능력과 전문성으로 사람을 뽑았는데, 법무비서관니뮤가 [[옷로비 사건]] 때 누명 쓰고 쫓겨난 뒤로는 대학 공부 안 하고 화염병이나 던지고 다녀서 지 전공 좆도 모르는 학생 운동권 새끼들, 슨상님이 민주화 운동 할 때부터 옆에서 도와준 사람들은 능력이 좆도 없어도 뽑아줬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슨상님 말기를 생각해봐라. 임기 말에 온갖 비리와 게이트로 난리였지 않았냐? 사실 페미니즘 문제도 이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 이희호 여사가 여성 운동권 대모로서 조언 같은 건 안 하고 그냥 방치하고 있었고 극단화됐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박주선은 [[난닝구 (정치)|난닝구]]들에게 배신자로 낙인 찍히고, [[박근혜 정부|10년 후에]]는 [[유승민]] 센세가 비슷한 루트로 [[ㄹ혜]]에게 배신자로 낙인 찍힌다. 그리고 박주선과 유승민 둘이 [[안철수]]랑 짝짜꿍해서 [[바른미래당]]을 만들었다. [[홍통일체]] ㅗㅜㅑ 이것만 봐도 이 두사람은 70~80년대에는 민주주의 운동을 하다가 90년대에 권력을 잡으니 국민을 개돼지 취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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