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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령 조선 == === 일본의 식민지가 되다 === 대한제국의 모든 이권을 전부 뜯어낸 일본은 한일약정각서 체결을 강요해 경찰권까지 빼앗았으며 1910년 8월 22일 [[이완용]]을 포함한 [[경술국적]] 8인방이 [[한일합방]]조약에 서명하면서 길고 길었던 매국노들의 매국이 성사되었다. 이 조약은 일주일 후인 8월 29일에 발표되었으며 국새조차 찍히지 않은 한일합방조약을 근거로 일본은 한국을 강제병합하게 되고 이로 인해 35년 간의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다. === 일본의 무단통치 === 일본령이 된 이후 [[한국통감부]]는 [[조선총독부]]로 개편되었으며 초대 총독으로는 기존 통감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부임했다. 그는 조선 내의 모든 사회집단을 강제해산시켰으며 당시 독립운동을 이끌던 최대 단체 중 하나인 [[신민회]]를 1911년에 [[105인 사건]]을 일으켜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양기탁]], [[윤치호]], [[이승훈]], [[김구]] 등이 체포되었으며 [[이승만]]은 미국으로 망명했다. 일제는 헌병을 이용해 조선을 통치했으며 치안, 행정과 관련된 모든 분야가 헌병의 관할이 되었다. 교육도 제복을 입은 군인 교사들이 가르쳤다. 그리고 제1차 조선 교육령을 통해 조선인들의 고등교육 기회를 차단했다. 또한 일본의 중국 진출을 위해 1908년 설립된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이용해 조선 땅에서 수탈을 감행했고 이 과정에서 철도를 부설했다. 그리고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해 많은 농민들의 땅을 강탈하고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지주들에게 넘겨주었고, 회사령을 실시해 조선인들의 기업 설립을 제한했다. 1912년에는 조선 태형령을 제정해 일본인이 마음껏 조선인을 흠씬 팰 수 있도록 했고, 1914년에는 [[부군면 통폐합]]을 통해 조선을 수탈하기 쉽도록 했으며 1915년에는 마지막 조선의 의병을 토벌해 독립운동가들은 일제에 저항하기 위해 해외로 나갔다. === 해외에서 싸우는 독립군과 일제 무단통치 체제의 쇠퇴 ===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해외로 나간 독립운동가들은 주로 중국이나 러시아 연해주에서 활동했는데 [[이회영]]과 6형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쏟아붇고 신흥 무관 학교를 설립했으며, 1914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최초의 임시정부인 [[대한광복군 정부]]가 수립되었다. 이 시기에는 일제라는 가장 큰 적이 있었던 데다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많은 왕정 국가들이 몰락하고 공화정으로 바뀌어가는 추세였기 때문에 왕정복고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수는 급격히 줄었고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이 공화주의를 추구하게 되었다. 1916년 총독이던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일본 내각총리대신이 되자 차기 총독으로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부임했는데, 그는 적어도 강경하기라도 했던 전임과 다르게 너무 무능한 통치를 벌였다. === [[3.1 운동]]의 발발 ===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사회주의가 조선에도 확산되고 독립운동가들도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주의 계열로 조금씩 나뉘기 시작했다. 1918년에는 제1차 세계 대전이 종료되고 세계에 새로운 질서가 성립되었고, 미국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이 이듬해 민족자결주의를 발표하자 조선 내에서도 스스로 독립을 이뤄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었다. 당시 조선 내에서는 [[스페인 독감]]이 심각하게 유행하고 있었으며 무능한 총독을 가진 총독부는 이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많은 사망자를 냈다. 이 독감은 조선을 크게 흔들었으며 독립 여론은 더욱 고취되어가고 있었는데 마침 독감이 종식되어가던 1919년 1월 21일, 우리나라를 말아드셨던 [[고종(조선)|고재앙]]이 마침내 사망했다. 당시 고종 독살설이 조선 전역에 퍼지고 있었고, 조선 백성들은 일제에 대해 분노해 먼저 일본 도쿄에서 독립선언문을 발표한 후 3월 1일 파고다 공원에서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 [[3.1 운동]]이 일어났다.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었으며 이런 상황을 대처할 능력이 없었단 총독부는 단순무식하게 강경진압을 지시했고 이 과정에서 [[제암리 학살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상황은 점차 격화되었고 결국 조선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일본 내에서까지 큰 질타를 받으며 총독직을 사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타로 [[사이토 마코토]]가 총독으로 부임했으며 총독부는 기존의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와 민족 분열으로 노선을 바꾼다. 한편 3.1 운동을 계기로 대한 국민 의회, 상하이 임시정부, 한성 임시정부 등이 생겼는데 이들은 1919년 9월 상하이에 집결해 통합 임시정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이것은 현재 대한민국 정부의 전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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