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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사실상 중국 중세 이전 국가들의 수도인 장안(시안), 낙양(뤄양), 개봉(카이펑) 등이 모두 황하의 인근에 자리 잡고 있고, 중국 고대소설 등에서 흔히들 [[중원]]이라고 말하는 지역이 모두 이에 속해있다. 4대 문명의 발상지이며 사실상 당 송 시대때 양쯔강 일대가 개발되기 이전에는 중국 그 자체였던 곳이다. 황제의 색이 황색인 것도 이 황하강에서 유래한 것. 지명의 이름처럼 강이 정말로 노란데 이것은 상류, 중류에서 황토 고원을 통해 합류하는 많은 지류 때문이다. 황하가 흘려 보내는 토사는 연간 16억 톤에 달하며, 이는 세계 최대 운반량 이다. 원래는 황하 상류지방은 숲이 우거진 곳이어서 선사 시대에는 그렇게 혼탁한 강이 아니었지만, 진나라~전한 시기에 이루어진 토목과 농경지 개척으로 상류의 자연환경이 파괴되자 백년하청(황하가 맑아지려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안 된다. 즉,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란 고사성어가 탄생할 정도로 흙탕물이 되어버렸다. 여기에 황하의 중류지역은 평야라서 천정천(주변 땅보다 강바닥이 더 높은 강)으로 변해서 비가 너무 적게 오면 말라버리고, 조금만 비가 많이 와도 대홍수를 일으키며 심할 경우에는 강줄기 자체가 바뀌는 수준이다. 사서에 남은 총 26번 물줄기가 바뀐 기록이 있고, 그 중 9번은 강줄기가 크게 변동했다. 당나라 말기에는 제방이 10년에 1번 꼴로 무너졌는데, 북송 시기에는 3.3년에 1번, 17세기인 청나라 때는 1.89년에 1번 무너질 정도로 연례행사가 되어버렸다. 그나마 제방의 붕괴만 따져서 이 정도고 그냥 홍수가 난 경우까지 포함하면 더 많다. 가면 갈수록 황하는 통제불능이 되었다. 주로 태산을 중심으로 [[위아래|위 아래 위 위 아래]] 식으로 변경이 되고, 현재의 황하하구는 1947년에야 형성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산둥반도]] 남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유역이 자주 바뀌는 것을 이용해서 황하의 둑을 일부러 터뜨려 수공을 한 사례가 있다. 1938년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추격을 저지하기 위해 국민당군이 황하의 제방을 파괴하여, 추격하던 일본군의 진격을 막아냈다. 단 이때 황하가 유역을 변경하면서 이재민 1,250만 명, 사망자 9만 명에 달하는 대피해가 발생했다. 본격 강을 태워 일본군을 막고 재난을 소환한다.......덕분에 황하 유역의 하남성은 완전 작살이 나버린다. 강에 진흙이나 황토가 많이 섞여있어 중국기준으로 깨끗하다 싶은것도 흙냄새가 오진다고 한다. 이때문에 중국인의 오랜전통 두가지가 생성됬는데, 바로 차와 안씼는거. 물에 흙내를 빼려고 차를 마시기 시작했고 흙내나는 물에 씼어봤자 안씼은거랑 똑같은 도찐개찐이라 안씼게 된거라고 한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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