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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삼티크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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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세 == [[신아시리아 제국]]에 의해서, [[네코 1세]]의 후계자로 내정되어 있던 인물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시리아 수도 [[니네베]]에서 살았고 이 때문에 상당히 친아시리아적 성향을 가진 양반이었다. 근데 [[기원전 664년]], [[이집트 제25왕조|25왕조]]의 부활을 외치던 [[타누타멘]]이 네코 1세를 쳐죽이자 [[아슈르바니팔]]은 프삼티크 1세와 함께 타누타멘의 부흥군을 진압하러 갔다. 이때 [[리디아]]의 기게스의 도움을 받았다. 25왕조 부흥운동은 [[기원전 656년]]에 완전히 진압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노예로 끌려가거나 학살당했다. 25왕조를 세웠던 [[피이]]의 딸이었던 셰페누페트 2세는 상이집트 [[룩소르|테베]] 쪽에서 아멘 신전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프삼티크 1세는 자기 딸인 니토크리스 1세를 셰페누페트 2세의 딸로 입양시키면서 상이집트 지역의 민심을 얻었다. 이후 이집트는 별 탈 없이 평화로운 시기를 보냈다. [[기원전 631년]] 아시리아의 전설적인 명군 [[아슈르바니팔]]이 사망하자 아시리아는 국가의 원동력을 잃어버렸다. [[스키타이]], [[메디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안샨]] 등이 아시리아를 괴롭혔고 [[바빌로니아]]도 부활 각을 보이다가 [[기원전 626년]]에 [[나보폴라사르]]가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세워 아시리아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다. 사실 이집트를 괴롭혔던 아시리아가 좆망해간다는 소식을 들으면 통수칠 각을 볼 만도 한데, 프삼티크 1세는 뼛속까지 친아시리아파 세력이었기 때문에 아시리아가 다구리를 쳐맞는 걸 보면서도 끝까지 아시리아만을 지원했다. 대신 스키타이족이 이집트를 털러 오자 대화로 풀긴 했다. 하지만 결국 [[기원전 612년]]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가 [[신바빌로니아 제국]]에게 점령당하면서 이집트의 아시리아 지원은 아무 의미 없는 것으로 날라가버리고 만다. 프삼티크 1세는 아시리아가 망한 지 2년 뒤인 [[기원전 610년]]에 사망했다. 그 뒤를 이어 [[네코 2세]]가 파라오로 즉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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