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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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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피카소는 미술에 적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한 번은 들어볼 정도로 유명한데 이에 대해서 그의 평가가 너무 과하다는 시선과 그 평가가 옳다는 시선이 공존한다. 전자는 보수적인 학자들의 생각인데 피카소가 살던 스페인은 제국주의 열강 반열에 들지 못하고 피카소의 유년기에 스페인은 미국과 전쟁을 벌여 그나마 남아있던 쿠바와 필리핀까지 미국에게 빼앗기고 만다. 이러한 암울한 분위기를 따라 스페인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이 득세하기 시작하였고 피카소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그림은 당대 유행했던 낭만주의, 즉 제국주의로 말미암아 벨에포크시대라는 황금기를 누리던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화려함을 담아내는 화법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이는 자신의 나라인 스페인은 유럽에서도 삼류 국가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그는 결국 낭만주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찾은것이 입체파로써 이 입체파에 몰두하던 피카소의 생애를 청색 시대라고 부른다. 그의 그림은 너무나 불티나게 팔리...지 않았고 이내 굶주리는 상황까지 생활고를 겪게 된다. 이 시기부터 그리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피카소의 작품 중 가장 높은 값에 거래되는 장미빛 시대라고 불리는 모네의 영향을 받은 준낭만주의적 화법을 담은 그림들이다. 그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건 1차 세계대전의 전간기부터인데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쟁으로 발발한 이 전쟁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거리엔 부랑자가, 도로변에는 파업하는 노동자들, 광장에는 공산주의자들이 선동하는 그 이전 벨에포크시대의 화려함은 눈 씻고 찾을 수 없었고 모두 절망과 회의, 부정이란 단어에 공감하기 시작하면서 피카소는 다시금 청색시대에 그렸던 입체파 그림을 통해서 그러한 감정을 그림에 담아냈고 그때 일어난 모더니즘 운동으로 말미암아 생전에 유명한 화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시대 정신을 따라 고평가된 인물이었지만 80년대부터 그의 평가에 의심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만약 앞으로 시대 정신이 바뀐다면 제일 먼저 혹독한 평가를 받을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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