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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트모세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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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세 == [[투트모세 2세]]가 죽은 이후 2살의 나이로 파라오가 되었는데, 2살 아기가 뭘 할 수 없으니 계모이자 고모인 [[하트셉수트]]가 21년 동안 섭정을 했다. 투트모세 3세가 10대 중반을 넘기는 시기가 지나면 기념비나 벽화 등에 투트모세 3세의 이름이 등장하는 걸로 보면 장성하자 공동통치자로서 나라를 다스렸던 것으로 보고 있다. [[기원전 1458년]] [[1월 16일]] 하트셉수트가 사망하자 22살의 나이로 친정을 시작했다. 옛날에는 투트모세 3세가 하트셉수트의 등쌀에 떠밀렸던 시절을 증오하며 즉위하자마자 하트셉수트의 관련 기록을 대규모로 [[반달]]한 거였다는 설이 많았는데, 요즘은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왜 하필 재위 20년차부터 하트셉수트의 기록을 지운 것인지, 그의 뒷북 행위가 설명이 안 되기 때문에 사실상 묻힌 설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이름을 매우 중요시여겼던 고대 이집트인의 관념을 고려할 때, 후계자인 아멘호테프 2세를 낳은 2번째 정비의 이름이 라의 사랑을 받는 하트셉수트라는 뜻의 메리트레-하트셉수트라는 점에서 논파된다. (증오하는 사람의 이름을 자기 부인이 쓰게 할 리가 없으니까) 그리고 그의 장제전은 바로 계모 겸 고모의 바로 옆에 지어졌다. 친정 이후 첫 20년 동안 17번의 정복전쟁을 벌이고 350개의 도시를 정복했으며 [[투트모세 1세]] 이후 오랜만에 [[유프라테스 강]]에 다시 도달했다. 이집트의 전차 부대는 세계 최강이었고 시리아 일대의 듣보 도시들을 박살내고 다니면서 영토를 넓혀나갔다. 이후 카데시 왕국과 메기도 전투를 벌여 승리하면서 세계 최강국으로서의 위엄을 떨쳤다. [[아시리아]]가 눈치보고 [[바빌로니아]]가 구애하고 [[히타이트]]는 [[갑자기 강대국이 되버렸다.|전전긍긍]]하는 레전드 판도가 이 사람 때 형성되었다. 10차 원정 이후에는 [[미탄니]]를 격파했다. [[기원전 1438년]]부터는 계모이자 고모인 [[하트셉수트]]가 지었던 [[하트셉수트의 장제전]]에서 그녀의 이름을 지우기 시작했는데, 하트셉수트 시절에 세워진 많은 기념물에서 여전히 그녀의 이름이 멀쩡히 남아있기 때문에 과거에 제기되었던 증오설은 그냥 썰이고 실제로는 자신의 업적을 세우고 싶었지만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를 더 진행할 여력이 안 되니 원래 건축자의 이름을 지우고 자기 이름을 새겨 넣는 '재활용'을 했다는 게 유력하다. (이런 짓은 [[람세스 2세]]가 유명한데, 아메넴하트 3세의 스핑크스에는 람세스 2세의 이름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카르나크 신전]]을 계속해서 건설했고 [[오벨리스크]]도 지었다. [[기원전 1425년]]에 56세 나이로 사망했고, 그가 최강국으로 만들었던 [[이집트 신왕국]]은 아들인 [[아멘호테프 2세]]가 물려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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