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토니 페냐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선수 생활 = == 피츠버그 시절 == 페냐는 1975년 아마추어 FA로 피츠버그에 입단했다. 원래는 외야수지만 77년까지 조지다가 포수로 전향해 특이한 자세를 배우면서 성장한다. 여기서 특이한 자세는 주자가 베이스에 없는 경우, 왼 다리는 꼳게 피고 오른다리는 쭈그리고 있는 자세이다. 이 자세가 투수들이 낮은 스트라이크 존을 계속 던질 수 있게 심리적으로 도움을 준다고 한다. 그 후 수비도 좋고 장타력과 준수한 교타력도 보유한 포수가 되었다. 그리고 1979년 더블A에서 .313 34홈런 97타점을 기록하며 떠올랐고 1980년 트리플A에서도 .327 9홈런 77타점을 기록하며 바로 빅리그 데뷔를 한다. 1981년 223타석 .300 63안타 2홈런 17타점으로 신인왕 6위를 차지한다. 그 후로 82~86년까지 5년 연속 올스타, 3번의 골든글러브를 차지하며 괜찮은 공수겸비 중거리 포수의 모습을 보여준다.(연 평균 .281 12홈런 66타점) 그리고 오즈의 마법사와 윌리 맥기가 하드캐리는 하나 포수자원이 많으나 저가 저효율자원들 천지라 고민하고 있던 같은 지구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홍관조]]가 토니 페냐 트레이드를 제시한다. 홍관조가 내놓은 선수는 포수 마이크 라발레르와 선발 마이크 던 그리고 앤디 반 슬라이크였다. 피츠버그야 땡큐하고 받아먹는다. 어이없게도 이 트레이드는 피츠버그의 씹 완승으로 끝난다. 먼저 마이크 라발레르는 트레이드 이후 토니 페냐보다 더 잘하게 되며 피츠버그 참전드 켄달 등장 이전까지 공백을 메꿔준 공신이 된다. 그 외 마이크 던은 바로 13승 2점대 선발이 되었고, 비록 2년 뿐이었지만 피츠버그가 잘 써먹었다. 그리고 앤디 반 슬라이크는 전설의 BB라인으로 합류한다. == 그 이후 == 홍관조로 온 페냐는 바로 풀타임 드르렁 시전을 한다.(.214 5홈런 44타점) 그러다가 갑자기 가을야구에서 올놈올 시전하며 홍관조가 NL 챔프되는데 큰 공을 세운다.(0.381) 그리고 월드시리즈(VS [[미네소타 트윈스]])에서도 폭발한다.(9안타 4타점) 그러나 7차전 혈-투 준우승 그 후로도 시즌에서는 장타력은 아예 잃어버리고 2년간 똑딱이 포수가 된다.(.261 7홈런 45타점) 그러나 수비력은 결코 뒤지지 않았다.(필딩율 .996/미친다 미쵸 수비장인) 그렇게 트레이드 역대급 패배자가 된 세인트루이스는 페냐를 FA되자마자 바로 킥해버린다. 그리고 [[칼튼 피스크]]가 진절머리내고 떠난 후 좆같은 포수들만 득실득실한 [[보스턴 레드삭스|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역시 수비장인답게 수비지표는 폭발하며 리그 1,2위를 다툰다. 문제는 교타력조차도 뒤진 타격이었다. 결국 1993년 1할8푼이라는(비고로 주전이다) 조진 기록을 내고 짤린다. 그리고 강팀 클리블랜드의 주전 포수 샌디 알로마의 부상 땜빵으로 선택된다. 그리고 서브로 1년 보내다가 1년 계약으로 근근이 버티는 서브가 된다. 그렇게 전전하다 휴스턴에서 은퇴한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