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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고대시대 === [[파일:Map-of-southeast-asia 900 CE.svg|500px]] 원래 태국의 주류를 이루는 타이인들은 이지역의 선주민이아니었다. 원래 이지역에는 타이인들(사실 타이인들은 중국에서 이주해온 북방계통에가깝다...)이 아니라 말레이인(얘넨 남방계통)이 푸난이라는 국가의 영향 하에 거주하고있었다. 근데 시대가 좀지나고나서 700년경 왠 캄보디아에서 인도+중국 물좀 먹은 크메르족들이 등판하여 원래 이 지역 선주민이었던 말레이놈들을 관광태운것. 크메르에서 한놀음하던 자야바르만2세가 태국대부분을 차지하고 크메르는 동남아 강성대국이 되버렸다. 물론 자야바르만등 여러명군이 뒤지고나선 13세기 크메르는 급운지하였고 결국 남쪽 말레이반도에선 인도네시아에서 올라온 스리비자야가 태국의 남부까지 진출하였고 여전히 크메르족들은 태국 동남부지역에서 뺑뺑이돌리고있었으며 인도의영향을받아 미개함을 갓벗어난 미얀마 소수민족 몬족이 세운 하리푼자야가 크메르가 약해진틈을타 태국의 중북부를 덥썩 먹어치웠다. 한마디로 태국판 전국시대라해도 무방할 분열의 시대가 찾아온것. 한마디로 태국의 고대시대는 말그대로 '''헬게이트''' 였다. === 타이족들 이주의시작 === [[파일:023 S Countless Celestial Garlands (28933902986).jpg|500px]] 태국이 갈갈이 찢겨지기 이전 8~12세기동안 크메르왕국이 이지역에서 주인행세를 하고있었는데 개뜬금없이 10세기경 중국 [[윈난성]]지역에서 타이족들이 대거 지금의 태국지역으로 이주해온것이다. 원래 얘네들은 짱깨국의 소수민족인 [[묘족]]들처럼 [[황하]]인근에 살던 민족인데 수세기마다 일어난 중국의 전란을 피해 윈난성으로 오게되고 윈난성도 대리국의 등판으로 전쟁의소용돌이로 빨려들어가게되는데 이때 타이족들은 전쟁의 위험을피해 계속 남하하여 현재 태국,라오스인근에 자리잡게 되었다. 물론 옆나라 미얀마의 버마족들도 이러한 영향으로 현재의 미얀마로 이주한것으로 보인다. 물론 대대적인 민족대이동은 13세기 부터인데 윈난에서 뺑끼 좀 치던 대리국이 북방의 오랑캐 몽골에게 관광당하자 또 이새끼들은 전란을피해 남쪽으로 ㅈㄴ게 이주했고 갑자기 쳐들어온 타이족들을 크메르왕국은 이들을 용병으로써서 남베트남지역에 있는 참파와의 전쟁에 사용해먹었다.(게르만족들을 용병으로 쓴 로마제국이랑 비슷한면도있는듯) 그래서 태국에 동북아처럼 피부 하얀 애들도 있는거다. 물론 개인들은 중국 별로 안 좋아하고 일본 좋아하지만 === 타이족들의 나라 성립(태국판 삼국시대?) === [[파일:Map-of-southeast-asia 1400 CE.png|300px]] (1)중남부의 수코타이왕국 크메르왕국이 13세기중반 급운지를 하며 용병으로 남아있던 타이족들은 이때다하고 태국중부평원지대에 자리잡아 여러세력을 형성하였고 크메르에게 반기를들며 수코타이왕국을 세운다. 얘네들은 디씨인들이 문명5에서 봤던 람캄행대왕치세때 이르면 스스로 문자를만들어 써먹는데 사실상 산스크리트문자를 변형한것이나 다름없는 해괴하고망측한 태국문자를 창조해내고 이때부터 태국인들이 이딴 병신같은 문자를 쓴것으로 보인다. 남쪽의 스리비자야세력과 동남부의 크메르들을 밀어내고 태국남부지역을 장악하는데 성공한 수코타이는 이후 람캄행치세때 미얀마에서 불교도받아들이고 원나라후장도 ㅈㄴ게빨면서 번창하다가 1438년 남부 현재 방콕,아유타야 인근에서 일어난 신흥왕국 아유타야왕국한테 멸망당한다. (2)북부의 란나왕국 원나라응디나 쳐빨던 수코타이와는 다르게 반원자주적인 성격을 보여준 왕국으로 얘네들은 몽골이나 버마랑 치열하게 싸웠다. 13세기중반 수코타이랑 비슷하게 크메르가 약화되자 북부일진이었던 맹라이가 란나왕국을 세움으로서 시작되는데 자주적으로 인도계열문자를 이용해 란나문자도 만들어쓰고 상좌부불교도 받아들이면서 번창하다가 16세기 옆동네 버마가 좆나게쌔지니까 급운지해버리고 버마일진셔틀짓이나 하다가 1558년 버마의 속국이 되버린다. 의외로 남쪽의 구세주 아유타야가 등판하여 버마를 몰아내주고 해방하나 싶더니 아유타야의 나레쑤언이라는 깡패년이 나타나 1599년 란나를 합병시킨다. 결국 멸망,,,,하나싶더니 그 아유타야도 버마의 1767년 재침공으로 멸망하고 한번 독립했는데.... 또다시 버마의 셔틀노릇을 하다가 19세기 초부터는 존나게 동남아깡패가 되버린 차크리왕조(시암) 셔틀짓하다가 차크리시암이 중앙집권한답시고 란나를 집어삼킴으로써 완전히 멸망해버린다. 물론 이과정에서 란나의 이완용 차오까윌라의 활약이있었지만 이사람은 란나를 통수치고 시암(차크리)에 붙어버려 란나합병에 큰기여를한다. 역사는 길지만 평생 버마,아유타야의 셔틀짓만하다가 19세기 강력한 동남아 수장 시암을 만나 골로가버린 찐따같지만 불쌍한나라. (3)남부의 아유타야왕국 앞서말한 두나라보다 존나늦게 등장했지만 앞서말한 두나라를 관광태울정도로 강력한 나라였다. '''사실상 지금 태국의 근본'''이라 말해도 좋을정도로 우리나라 삼국시대를 통일한 신라포지션이며 미개했던 태국인들의 민족성,문화를 하나로통합한 나라. 1350년 '''중국에서 건너온 좆짱깨장사치 우통'''(본인은 짱깨 귀족이라 주장했으나 정작 짱깨들이 족보 등은 근거로 조까 근본도 없는 천민 새끼야를 시전하였다.)이 태국남부 현재의 방콕,아유타야 인근에 건설한 나라. 초기엔 크메르,수코타이 셔틀짓하다 힘을키워 크메르 즉 캄보디아를 아예 지금의캄보디아지역에 짱박게 만들어놓고 1431년 수도 앙코르를 털어버린다. 이후 1438년 북쪽의 수코타이로 쳐들어가 멸망시켜버리고 흡수한다. 그리고 더북쪽에있는 란나왕국은 아유타야의 후장을 지켜주는 든든한 방파재,고기방패라생각하고 건드리진않았지만 확실히 아유타야보단 약했으므로 란나는 얼떨결에 잠재적셔틀이 되버린것이다. 이후 100여년간 번성하다가 1547년 버마 따웅우왕조의 따빈슈웨티와 버인나웅이라는 강력한 수장의 원펀치를 맞고 아유타야가 함락당하며 골로가버린다. 그러나 아유타야가 간신히 따웅우에게 앙망문을써 버인나웅은 군대를 철수시켰지만(청태종과 비슷하노) 미얀마 즉 버마로 끌려간 아유타야 왕자 마하 탐마라차는 복수의 칼날을 준비하고있었고 나중에 인질생활이 끝나고 아유타야로 돌아와 왕으로 즉위하니 이놈이 바로 아유타야 최전성기를 여는 나레쑤언왕이 된다. 1593년 농싸라이전투에서 따웅우군대를 격파하고 다시 아유타야의 주권을 되찾았으며 미얀마의 테나세림을 할양받고 물러났다. 1599년에는 라오스에서 세워진 란쌍이 뒷통수를 갈기자 이를 격퇴하고 동맹국이었던 란나를 합병시켜버린다. 1600년 다시 미얀마를 재침공하여 수도 따웅우를 포위해 미얀마왕의 항복을받고 미얀마를 고자로 만들어버린다. === 아유타야왕조 === 아유타야가 태국을 통일하고 먼치킨급인 나레쑤언의 등판으로 동남아셔틀들은 태국아유타야에게 빌빌기었다. 덕분에 나레쑤언의 친동생이었던 에까토사롯이 왕위에 올라 편안하게 나라를 다스릴수있었고 내치에 집중하여 그동안 전쟁으로 황폐화된 아유타야를 복구하고 유럽상인들과 무역도하고 저멀리 좆본과도 무역하는등 굉장히 개방성이 강한 나라로 거듭났다. 여기서 유럽인들에게 총포를 수입하여 군사력도 증강시켰고 동남아 셔틀들한테 받는 조공도 굉장히 짭짤하였다. 이후 베트남과 란쌍왕국이 있는 라오스를 놓고 티격태격하다가 아유타야가 베트남에 집중하는 사이 옆나라 미얀마에서는 또다시 꼰바웅이라는 새로운 왕조가 탄생하였다. 아유타야는 망할 꼰바웅을 견제하기위해 몬족들에게 자금을 지원하여 왕국을 세우게하였다. 1742년 미얀마남부에 한타와디라는 나라를 세우고 사실상 아유타야의 꼬붕노릇을 하면서 후-따웅우왕조의 수도 잉와를 함락시켰다. 1757년 친선국이었던 후 따웅우왕조를 멸망시킨것에대해 화가난 꼰바웅의 왕 알라웅파야는 아유타야와 한타와디를 조져버리기위해 먼저 한타와디로 쳐들어가 몬족들을 닥치는대로 살상했다. 개쫄린 살아남은 몬족들은 아유타야로 민족머이동을 감행하고 아유타야는 개슬람난민마냥 쳐들어오는 이들을 받을 여력이 없었는지 다시 미얀마로 돌려보내기위해 꼰바웅과 전면전에 돌입한다. 1759년 아유타야군대를 격파한 꼰바웅군은 수도 아유타야로 쳐들어가 포위하였으나 신무기로 무장한 아유타야의 강력한 저항으로 알라웅파야는 전사하고 결국 미얀마는 철수한다. 그러나 알라웅파야의 복수를위해 1765년 알라웅파야의 손자 신뷰신은 다시 군대를 모아 2개의 길로 아유타야로 출병했는데 하나는 란나를 통해 진군하여 란나를 해방시키고 또 한쪽은 태국중부지역으로 쳐들어간것이었다. 저항은했지만 막기에 역부족이었던 아유타야는 1767년 수도가 함락당하면서 왕족들은 싹다잡혀서 끌려가고 ㄹㅇ로 완전히 좆망해버린다. === 현 태국의 왕조인 차크리왕조의 성립 === [[파일:Buddha Yodfa Chulaloke portrait.jpg|300px]] 현 태국창시자 라마1세의 모습 현재 헬태국의 창시왕조인 차크리왕조의 성립이전 톤부리왕조라는 단명한 왕조가있었는데 이왕조는 아유타야의 장수 프라야 딱신(이새끼도 짱깨였다.)이 아유타야서 도망쳐 찬타부리로 가서 힘을길러 일시적으로 약화된 버마꼰바웅군대를 몰아내긴했으나 훗날있을 버마의 재침공을 막아줄 도읍을 찾고 현재 헬타이 수도 방콕옆에 있는 톤부리로 옮긴다. 그래서 톤부리왕조인가보다. 1768년 톤부리왕조를 건국한 딱신은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워 혼란의 태국을 순식간에 잠재웠으며 나머지 제후들이 알아서 딱신에게 기어왔다. 선천적 일진 ㅍㅌㅊ? 이후 1774년 북쪽으로 쳐들어가 버마를 지옥으로 보내버리고 1776년에는 다시 영원한셔틀 란나를 속국으로 삼는다. 이렇게 자신의 조국의 원쑤! 버마를 개박살내고 과거 아유타야들의 제후를 통합했으며 라오스일대와 캄보디아놈들을 속국화하는데 성공하는등 불용암지옥이 되버린 아유타야땅에 마치 하늘에서떨어진 유성같은 업적을 남겼지만 이 모두 자기혼자힘으로 했을까봐??? 천만에 말씀. 이 모두 그의 보좌관이자 유능한 장수였던 차오프라야차크리 덕분이었다. 차크리장군의 가문은 원래 대대적으로 장수가문이 아니라 사관 즉 역사를기록하는 문신가문이었었는데 뜬금없이 아유타야가 망하다보니까 역사를 쓸일이없어진 문돌이 차크리는 아유타야멸망후 피난가서 딱신을 만난다. 이후 딱신의 어머님을 살리는 공훈으로 여러차례 승진. 나중에는 버마를 조지는데 큰 공을세우고 결국 톤부리왕조의 머장군 자리에까지 올랐다. 근데 원래 톤부리의 왕 딱신은 알아서 북쪽 만주짱깨 청나라한테 알아서 잘기면서 살고있었는데 말년에 정치하기 ㅈ같았는지 마군이가 대가리에가득찬 궁예마냥 폭정을 일으키며 의심병까지도져 자신을 부처와 동일시하는 일종의 정신착란 즉 미친궁예의 환생과도같은 짓을 벌이기시작한것이다. 자신에게 반항하는 세력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자 겁이난 신하들은 캄보디아원정을 떠났던 차크리장군에게 달려가 "장군 제발저 마군이좀 조져주이소" 하고 이를 승낙한 차크리가 1782년 역성혁명을 일으켜 딱신왕을 죽여버리고 마치 왕건과 같은 테크를 타게된다. 이후 수도를 톤부리에서 차오프라야강을 마주보고 건너편에있는 끄룽텝으로 옮긴다. 그리고 현재의 타이왕국을 건국한다. 씨발 수도이름이 원래 끄룽 텝 마하나콘 아몬 라따나꼬신 마힌타라 유타야 마하딜록 폽 노파랏 랏차타니 부리롬 우돔랏차니웻 마하사탄 아몬 피만 아와딴 사팃 사카타띠야 윗사누깜 쁘라싯 (กรุงเทพ กรุงเทพมหานคร อมรรัตนโกสินทร์ มหินทรายุธยามหาดิลก ภพนพรัตน์ ราชธานีบุรีรมย์ อุดมราชนิเวศน์ มหาสถาน อมรพิมาน อวตารสถิต สักกะทัตติยะ วิษณุกรรมประสิทธิ์)이다. 이는 천사의 도시, 위대한 도시, 영원한 보석의 도시, 인드라 신의 난공불락의 도시, 아홉 개의 고귀한 보석을 지닌 장대한 세계의 수도, 환생한 신이 다스리는 하늘 위의 땅의 집을 닮은 왕궁으로 가득한 기쁨의 도시, 인드라가 내리고 비슈바카르만이 세운 도시 이런 좆같은 불교힌두교 짬뽕된 좆되게 긴 이름을 가지고있지만 편의상 헬타이인들은 수도라는 의미에서 방콕 으로 부르고있다. === 19세기 초중반 태국 === 물론 차크리왕조의 관제나 법률같은거는 과거 아유타야왕조의 미개한 율령을 그대로 답습했다. 즉 계승을표방했는데 과거 아유타야왕조의 수도가 버마의침공으로 폐허가됬을때 버려진 그 자제들을 운반하여 새로운 도시 방콕을 건설하는데 사용했다. 시암식 창조경제 ㅍㅌㅊ? 어쨋든 이를통해 아유타야왕조의 계승의식을 명확히 하였고 국호를 시암으로 정하였다. 어쨋든 아유타야의 후계자임을 자처했으니 영토를 넓혀야지? 그래서 라마1세는 영토를 ㅈ나게 넓힌다.. 과거 크메르제국급으로 넓힌다... 먼저 좆만한태국남부지대에서 시작해서 일단 옆에있는 캄보디아로 쳐들어가서 조져놓고 합병시킨후 왕과왕자를 인질로데려와 방콕에 가둬논다. 두번째는 라오스 비엔티안왕국으로 쳐들어가 캄보디아처럼 합병시킨다. 어쨋든 라오스,캄보디아를 정리했으니 북쪽의 눈엣가시 란나를 완전합병하기로 하고 장군이었던 차오까윌라를 시켜 북쪽의 란나를 완전멸망시키고 치앙마이일대를 완전장악 곧 시암의영토로 흡수한다. 사실상 태국 최전성기의 시작이라볼수있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과거의 영광을잊지못했는지 옆나라이자 태국의 영원한 씹새끼 버마의 보도파야대왕이 14만4천명의 대군을 이끌고 5개방면에서 직접 군사를 몰아 태국을 공격하나 실패하고 영혼의 한타실패 이후 버마의 국력은 급운지하여 영국군의 침입에도 재대로 대응못하는(사실 버마가 반란일으킨 소수민족쫓다가 인도국경으로 들어가서 인도주인 영국에게 항의가 들어왔는데 버마는 지금같이 국경이라는 개념이없어서 지네들이 "아따 내가 들어간땅이 곧 영역이랑께?" 라는 개념이어서.. 영국이 닥치고 국제영토법이나 따르라고 버마좀 참교육시켜놨는데 계속개기니까 1885년에 영국령인도로 합병시켜버린다 ㅜㅜㅜ) 사실상 패망의길을 걷게된다. 물론 이를 격퇴한 시암은이후 말레이반도까지 원정하며 뺑뱅이좀돌리다가 1790년대에는 베트남의 통수를 거하게 후리는데 당시 베트남은 떠이썬당의 난이 일어나 나라가 혼란한상태에서 불안전한 떠이썬왕조가 성립된다. 떠이썬을 견제하기위해 라마1세는 베트남 안남정권의 수장가문 응우옌씨의 후예였던 응우옌푹아인을 시켜 4만의군사로 하여금 베트남을 공격하나 베트남사덱지역에서 떠이썬조의 광중제에게 격퇴당한다. 이후 푹아인은 라마1세밑에서 독자적으로 일하다가 광중제가 뒤지자 라마1세를 버리고 베트남으로 귀환하여 내분이일어난 베트남을 혼자서 프랑스,라오스용병들을 이용하여 정리하고 1802년 응우옌왕조를 성립한다. 이후 응우옌황제들은 시암의 왕들과 대립각을세우며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놓고 ㅈㄴ 으르렁거리다가 사자였던 영국,프랑스의 등판으로 정세는 급변하게되고 베트남은 프랑스로인해 운지하여 시암에게도 큰위기가 닥치게된다. 라마1세사후 라마2세는 몸이약해서 금방뒤지고 라마3세가 왕위에오르는데 이때까지만해도 시암은 동남아시아의 패자였다. 1821년 영국군이 시암을 침공한다던 헛소리를 쳐들은 라오스 루앙프라방지역의 위앙짠왕국킹 차오이누가 태국을 침공하지만 격퇴당하고 멸망당한다...1836년 캄보디아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나 휘청했는지 1845년 재독립시켜서 속국으로 놔뒀다. 라마3세가 죽을때에 이르면 시암은 최대영토를 보유하고있었으나 라마3세사후 라마4세가 왕위에 오르자 제국주의 물결이 동남아를휘몰아치게된다. 영국이 맨먼저 접근해 이미 라마3세시절 말레이지역을 삥뜯어갔고 영국의 압박으로 버마지역의 테나세림과 무앙퐁지역도 뱉어야했었다. 또 이번에는 프랑스가 접근해 존나게뜯어가는데 베트남을 속국화시킨 프랑스가 "유혈사태를 원치않는다면 라오스랑,캄보디아를 뱉으랑께?"라고 압박하는바람에 또 줘버려야했다. 라마4세는 사실 뭉꿋이라는이름에 승려코스프레하는 국왕이었는데 승려면 아무래도 평화주의자다 보니까 프랑스가 적은수의 병력으로 베트남을 조지는걸보고 좀 놀랐는지 개쫄아서 라오스+캄보디아라는 거대한영토를 할양해야했다. 라마5세때도 이게 이어져서 동남아의 패자를 자처하던 시암의 영토는 무려 100년도안되어 삽시간만에 영토가 현재의 영토로 쑤그라들어버렸다...... 태국의 운지가 시작되는것같았지만....... === 시암의 명군 라마5세의등장 === [[파일:Young king Chulalongkorn 1872.jpg|300px]] 라마 5세가 친정하기 1년전인 1872년에 찍은사진임 라마4세가 죽고나서 라마5세(이름은 출랄롱꼰)가 꼬맹이때 왕이되는바람에 모후가 섭정중이어서 영토에대한 욕심이있어도 신하들의결정에따라 포기할수밖에없었다. 1873년부터 친정에나선(헬조선의 곶종과 비슷하네?) 라마5세는 쪼그라든 시암의영토를 조금이라도넓혀보기위해 갖가지 개혁을 단행한다. 물론 넓히지못했지만 ㅎㅎㅎ . 일단 헬좆센과는 다르게 제도적으로는 1875년부터 영국,프랑스를 따라하여 추밀원과 내각평의회(의회),재무부를 신설하였고 강했던 귀족들의 권한을 대폭축소하였다. 이후 수구꼴통틀딱귀족들이 강하게 반발하였지만 라마5세가 외국으로 유학보냈던 젊은귀족들이 귀환하자 곧 그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틀딱귀족들의 반발은 수그라들었다. '''라마5세는 일본의 메이지유신처럼 태국의 문화에서 정치제도까지 전면적으로 서구식으로 바꾸려고했었다. 즉 짱깨나 헬조센처럼 유교를유지하되 서구무기만 받아들이자가 아닌 모든것을 서구식으로 뜯어고치자고 주장했었던 참(?)정치인이었다.''' 영토를자주뜯어가는 영국과프랑스는 라마5세에게는 분노와복수의 대상이었으나 곧 그들의 힘앞에 무릎을꿇어야했고 어쩔수없이 순응적인태도로 돌아섰던것이다. 이후 젊은귀족층들의 제안에따라 시암중립화론을 내세워 영,프를 왔다갔다하면서 대나무외교를 펼쳤고 이는 성공했다. 당시 영,프는 독일을견제하느라 서로 싸우는것을 원치않아했고 태국을 중립지대삼아 서로 태국의 주권을 인정하는것으로 끝을보았다. 이로써 '''태국은 영토셔틀+ㄱㅆㅆㅅㅌㅊ지리빨로 끝끝내 독립을유지'''할수있었고 동남아유일의 피지배지가 된다. 라마5세는 왕권강화를위해 왕족들을 요직에 앉히고 유럽식 정치제도와 법체계를 정비하여 수꼴귀족들을 찍어눌렀다. 1897년에는 두싯이라는 도시를 서양식도시로 탈바꿈시켜놨으며 1905년에는 조선보단늦지만 노예제를 완전폐지하여 신분평등을 이룩했다. 이후 교통망정비 및 재판소를설치하여 근대식 사법기관이 설립되게된다. 근대식으로 우편제도도 정비하였다. 혀튼 태국인들에겐 세종대왕 그이상급으로 존경받을정도로 ㄱㅆㅆㅅㅌㅊ위인이다. 그를기리기위해 라마5세의 이름을딴 출랄롱꼰대학교도 있다. [[파일:Firstworldwar.jpg]] 신식 태국 군대의 열병식 === 미개태국에서 입헌군주제로 === 라마5세가 1910년 죽고난후 태국은 한동안 ㅈㄴ게 평화로웠다. 영국과 프랑스는 건드리지도않았고 제국주의 물결이 파동치는 시대에 태국의 안정적인 시대였다고 할수있다. 물론 라마5세가 호흡기달아놓고 시암을을 회생시켜놨으니 아들이었던 라마6세나 라마7세는 선왕을 하필 명군으로 둬서 ㅈㄴ게 먹고놀았다. 민비마냥 맨날 파티하고 놀고먹고하니 백성들은 빡칠수밖에;;; 결국 개화이후 근30년동안 잠잠했던 미개태국에서 왠일로 계몽사상을 내세우던 군부측의 쿠데타가 일어난다. 이때부터 태국의 신랄한 쿠데타가 일어난다. '''이 여러번의 쿠데타가없었으면 태국은 현재 한국보다 잘살지도모르나 경제개발을 주창하는 박정희같은 군인정치가가 안나타나는바람에 태국은 지금의 헬태국 헬보딸급의 국가로 좆망해버린다...''' 라마7세가 정치에 노관심인 사이 '''쁠랙 피분송크람'''이란 머령이 쿠데타를 일으켜 실권을 잡는다. 쁠랙 피분송크람은 대대로 군머집안이어서 사관학교로 들어가 공부하고 1차세계머전때는 헬프랑스로 입국하여 프랑스의 현대적 군사전력등을 배워오며 군의 엘리트로서 승승장구하게되고 1931년엔 대령으로 승진하게된다. 1932년 시암혁명 이른바 쿠데타를 일으켜 왕당파 군대를 분쇄시키고 방콕을장악한 후 왕궁앞에서 시위를 벌인다. 결국 국왕새끼는 거의 모든실권을 내려놓았고 드디어 태국에 최초의 입헌군주정이 들어서기시작했다. 시암의회는 1932년 말 유럽의 각나라의 헌법을 모방하여 법을만들었으며 시암에선 최초의 근대적인 헌법이 공포되었다. 이런헌법으로 인해 시암의 국왕이었던 라마7세의 권력은 나날히 실추해갔고 끠꺼솟한 왕은 계속 의회와 피분송크람내각에게 반발하다가 피분송크람의 반협박(?)및 해외망명 종용으로 1935년 왕궁에서 나온 라마7세는 영국으로 추방당하고 거기서 뒈짖한다. 왕자리가 비게되자 이참에 공화제로 돌아서자는 주장도 있었는데 워낙 미개한 헬태국의 노예근성상 왕제도를 없에버리는것은 전국의 반란이 일어날것이 뻔해서 스위스에서 유학중이던 젊은 라마8세를 태국으로 강제로 송환해 왕자리에 앉혔다. 물론 라마8세는 그냥 허수아비였고 실권은 모두 피분송크람에게 집중되있었다. (애초에 입헌군주제국가면 내각에 권력이 집중되있는건 당연지사.) 피분송크람 내각은 동북쪽에 위치한 개헬본좆국의 극우내각처럼 상당히 대국적이아니라 독재적이었는데 출판물과 방송등은 완전히 검열을 받았다. 아무도 송크람내각에게 반발할 세력이 없어진것이다. 송크람은 명목상 문민정부를 표방하고있어서 삐띠라는 정치인을 자신의2인자로 두고 서로 견제하며 정치를해나갔다. 물론 삐띠는 허수아비여서 그냥 송크람의 욕심대로 축출당한다. 자신은 평소 개헬본좆국의 도좆히데키나 히틀러 무솔리니등을 존경했었는데 그야말로 '''불지옥태국'''의 성립이다.1938년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벌여 자신에게 반대하는 세력들을 찍어눌렀으며 화교계들이 바퀴벌레전통을 따라하려하자 태국식을 강요하며 화교계들을 강제추방 및 감금등으로 억압했었다. 그야말로 짱깨 킬러... '''1939년 국호를 시암에서 쁘라텟 타이(자유의 나라)로 바꿔서 지금까지 타이 또는 태국으로 불리고있다.''' 1940년 2차대전이 발발한지 1년이 되갔을때 개헬본좆국의 위대한 황군이 베트남을 점령하고 70만대군으로 동남아를 향해 진군해오자 일뽕,독뽕이었던 송크람은 그즉시 추축국에 가입해 같이 프랑스와 영국을 조지는데 도와준다. 1941년 태국의회에 국토회복계획을 제출하여 일본과함께 전쟁을 수행해나가자는 내용으로 일본군의 미얀마진군을 허락해주고 또 영국으로부터 헬본의 해군으로 방어를 하게되어 태국은 헬본의 버스를타며 승승장구하나 싶더니;;;; 결국 좆본은 원자폭탄으로 항복해버리고 '''이에놀란 의회와 군부는 연합국에대한 태도를 180도 바꿔 송크람을 즉각축출'''하고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동남아로 다시 돌아오는것을 방해하지않는다는 조건으로 패전국의 반열에 오르지않게되었다. 역시 눈치는 좆되게빠른 타이 ㅍㅌㅊ? 그러나 전후 문제가 끝난후 1946년 도쿄극동군사재판이 한창이던때에 좆본의 수장들은 차례차례 모가지가 메달려 뒤지고있었지만 개씹새끼 송크람은 용케도 안뒤지고 그냥 가택연금만 당하다가 1946년 6월 라마8세가 총기사고로 끔살되자 혼란한 정국을 수습한답시고 자기와 뜻을같이하는 극우장교단을 몰래 모아서 비밀리에 쿠데타를 성공시킨다. 물론 미국은 송크람을 군사재판에 회부하지않았는데 그이유는 상당히 반공적인 인물이어서 공산주의가 당시 동남아를향해 빠른속도로 퍼지고있었고 태국은 동남아의 중심부에 위치해있다보니까 미국도 송크람이 싫지만 공산주의 물결을 막기위해서 어쩔수없이 무기며 재정이며 지원을 해주었고 송크람은 이것을 발판삼아 1957년 9월까지 독재를 펼쳤다... 쿠바의 우익독재자 바티스타를 보는것같다. '''1957년 사릿타나랏이라는 군인이 부정부패를 문제삼아 국민의 지지를 얻고 쿠데타를 일으켜 또 축출당해버리고 일본으로 망명가서''' 1964년 일본에서 뒤짖한다. 역시 극우한마당 좆본 ㅍㅌㅊ? === 장기 군부독재와 민주화 === 1957년 쿠데타를 일으켜서 또한번 민주주의를 분탕질내버린 사나릿이 나름 깡패들도 캉소이라는 서있기도 힘든 독방에 가둬버려 죽여버리고 사회정화도 클린하게했다. 물론 공포정치로 악명이높았지만 10년도 못가고 1963년 뒈짖한다. 이후 쫄개였던 타놈키띠까쫀이라는 작자가 1963년 후계자로서 총리의 자리에오른다. 이후 1968년 헌법을 제정하여 총리의 임기를 늘려 장기집권의 기반을 다진다. 물론 1968년 방콕에서 대한민국의 광주민주읍읍에 버금가는 민주화운동이 일어났고 놀란 타놈은 긴급조치를 내려 무자비하게 진압한다. 이후 1969년즈음 라오스와 캄보디아에서 공산반군이 들고일어나고 베트남마저 공산화될 위기에쳐하는것을 본 키띠까쫀은 캄보디아내전에서 론놀의 캄보디아민주정부를 그리고 베트남의 남베트남정부를 군사를파견하여 돕는다. 이때 현 태국의 국왕인 라마10세도 공군파일럿으로서 참전하였다. (물론 왕자였으니까 군대사기진작용으로 투입됬고 후방에서 개꿀빨았겠지만..) 군사지원까지했는데도 캄보디아와 베트남 두개국이 쌍으로 나가리되자 태국국경인근에서도 공산개릴라들이 날뛰기시작하였고 공산주의자들마저 합세하여 곳곳에서 폭동을일으키자 왕족들까지 장교단으로 동원하여 시원하게 빨갱이새끼들을 정리하였다. 이쪽 빨갱이들은 베트남이랑 캄보디아,라오스가 지원도안해줘서 화력이약했고 또한 68년에 타놈이 미리 반공법을 제정해놔서 태국사람들도 빨갱이새끼들의 무서움을 알고있었다. 때문에 쉽게 빨갱이화가 되지않았던것. 근데 '''타놈이 잘가다가 박정희마냥 말년에 정신이 헷가닥했는지 1971년 갑자기 내각과 의회를 해산시키고 72년도에는 갑자기 종신독재를 선포하는 신헌법을 제정하자 73년 전국에서 대학생들이 시위를벌인다. 이떄 자신을 지지하는 군대를 동원하여 대학생들을 진압하는데 대학교까지쳐들어가서 총으로 쏴죽여버린다. ㅎㄷㄷㄷㄷ 미개태국 헬보딸의 시작이다...''' 이에 대학 교수진들이 시국선언을 하는지경에이르자 사태를빨리도 파악한 군부장교단들은 타놈을 학살자라며 비판했고 '''왕족들역시 국민들이 동조자라며 비판할것을 우려, 라마9세는 얼마전까지 타놈의만행을 눈감아줬으면서 졸렬하게도 화근의 싹을 자르기위해 눈감아줬던 타놈정부를 강경비판하며 물러나게한다. 결국 타놈군부정권은 붕괴되고 1973년 태국은 다시 민주화가 이루어지게된다.''' 이후 타놈은 잠깐 해외로 ㅌㅌ했다가 74년도에 1년도안되서 귀국하여 몰래 살다가 2004년 뒤졌다. '''1974년 국민총선거로 새로운 총리가 뽑혔는데 군인출신의 총리가아닌 우리나라 고려대에 준하는 탐마삭대학의 법학과교수이자 사회정치운동가였던 산냐 탐삭이 새로운 총리로 임명되었다. 이후 내각과 의회는 부활하였고 군부독재정치는 종식되었다.... 는 개뿔 ㅎㅎㅎ 1977년 또 쿠데타가일어난다''' 이번엔 또 끄리앙삭이란 새끼가 나타나서 또 뭔놈의 빨갱이들이 폭동을 일으킬것같다느니 하면서 ㅈㄴ게 주장해댔고 이에속은 헬조선보다 더더한 개돼지 태국사람들은 또 군부정권을 인정해버렸다 ㅋㅋㅋㅋㅋㅋ... 이에따라 80년대 초중반 우리나라의 전땅크정권처럼 수많은 노동운동가들이나 흔히 '좌빨'로 불리는 종자들이 국가전복죄 또는 혼란죄로 사형대에 올라가 처형당하거나 깜빵신세였다... 이렇게 1980년으로 접어들고 공산주의 국가들이 80년대말 차례대로 붕괴하고 대학생과 시민들이 1988년 또 미친듯이 시위를 일으키자 이에 더이삳 빨갱이빨갱이 거릴수없었던 군부는 1991년 조속히 민정이양을하겠다고 발표 다시 직선제로 바꾸고 국민총선거가 실시된다. 물론 라마9세는 유연하게 군부가 시민들을 학살하는걸 막았다고 정신승리중 ^오^ 물론 군인들이 시민들을향해 발포하거나 과잉진압이 80년대에는 없었지만 억울하게 징역살이를 한 사람들이 적지않았다. '''1991년 태국의 2번째 민주화가 이루어지나싶었지만...... 응~ 군부의 쑈!쑈!쑈! 또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번엔 수친다라는 사람이 사회혼란방지를 목적으로 쿠데타를 일으키는데 한번속지 두번속냐???? 국민들의 엄청난 시위열기속에 1992년 사임하고 민정이양을 한다. '''드디어 태국은 92년 민주화운동 이후로 완전한 민주적인 선거가 정착되었으며 중간중간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며 집권을하지만 대부분 5년만 단기적으로 해먹고 민정이양을 했다. 왜냐하면 국왕과 국민들의 반발을 우려했기때문...''' 여튼 헬보딸태국은 지금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총리가 해먹고있으며 삼권분립이나 정치견제가 걸레짝인 쿠데타가 일상인 병신같은나라다. ㅎㅎㅎ === 병신태국의 지금과현재 === 쿠데타가 빈번히 일어나는 나라라서 경제발전도 다른 아시아선진국들에비해 더디었고 군인정치가들도 경제발전보단 정적숙청이나 견제에 신경을썼던지라 7~80년대에 작게나마 경제성장을 이룬것빼곤 한동안 발전이없다가 2000년대 들어서 민간인정부가 관광산업에 중점을 두었고 2001년 경찰중령출신의 탁신친나왓이 총리로 당선되면서 많은 경제발전을위한 건설과 해외주주투자 유치등 갖가지방면에서 노력을했다. 물론 이새끼도 비리로 삥땅친게 최순실뺨칠정도 ㅎㅎㅎㅎ '''보다못한 군인들이 2006년 또 쿠데타를 일으켰다...이정도면 그냥 일상이라 생각하자...''' 수라윳 쭐라논이 임시군사고문기관을 만들어 3년간 태국의 비리감찰 및 경제발전,투자유치등 노력해오다가 2008년 민정이양을 하였다. 이후 2011년 잉락친나왓(저 위의 탁신의 여동생)이라는 태국최초의 여성총리가 당선이되었는데 군부뺨칠정도의 독재적행보를 보였는데 자기맘에 안드는 새끼들은 다짤라버리고 정치고문이라든지 전문가라든지 자기맘에 드는놈들을 앉히면서 막판엔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 우리나라로치면 국정원원장을 짜른게 화근이되었다. '''이게 왜 문제냐면 국정원원장 교체하는게 뭔대수냐며 하겠지만 아무잘못이없다고 판명된 사람을 자른것이다...''' 결국 2014년 태국국회는 내각불신임을 결의하고 헌법재판소는 총리를 실각, 즉 우리나라로 치면 탄핵을 결정한다. 역시..... 태국판박근혜... 그리고 2014년 갑자기 총리가 실각을 당하자 정치계에선 혼란이 드리웠는데 2014년 쁘라윳 찬오차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총리로 취임하면서 국회의 동의에따라 국민의 의견은 개무시하고 '''태국역사상 20번째 쿠데타로 총리에 당선이되었다.''' 사실 전임 잉락친나왓이 너무무능했던지라... 태국국민들도 나름 새로운 정치인이 출두하길 바라고있었고 결국엔 찬오차가 당선된것이다. 물론 잉락을 따르던 반대파들이 시위를벌였지만 평화시위로 전개되었고 찬오차또한 강경진압을 명령하진않았다. 이후 찬오차는 5년중임제라는 기간동안 총리로 일하고있으며 자신의 반대파거점지역에 방문하여 직접 반대파국민들과 정치토론도 하는 패기를 보였으며 국내외 순방을 하고있으며 21세기 군인출신 대통령답게 민주주의와 정치에대해서 몰상식하지는 않은것같다. 본인도 태국이 민주국가로 발전하기위해 노력하고 민주주의를 거부했던건 자신도인정하는 바이다. 라고 말했으며 민주주의에대해 부정적인입장은 아닌것으로 보인다. 물론 2021년 현재 옆나라 미얀마가 개막장인상태라 이쪽이 정상적으로 보이는거지. 사실상 여기도 군부가 쿠데타를 밥먹듯이 일으킨 나라고 여기 국민들은 쿠데타가 지네나라 전통인것마냥 반쯤 해탈한 상태다. 쿠데타횟수만보면 시민학살로 악명높은 미얀마애들의 횟수를 넘어선지 오래다. 그나마 이나라는 왕권과 군부가 서로 견제하며 존재하는지라 미얀마처럼 군부가 국민들을 상대로 제노사이드 규모로 죽일순없다. 태국에서 군부의 폭주는 곧 국왕의 왕권에 도전하는 행위이기도한것. 태국 왕실역시 자금파워나 대외영향력 그리고 재산이나 자신들의 친위대까지 거느리고 있기때문에 군부의 수장역시 함부러 국민들을 죽이거나 폭주할수가 없다. 반면에 미얀마는 왕실자체가 폐지되었기때문에 군부가 국민들 학살하고 폭주해도 견제할 거대기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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