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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과 == 이미 유엔군은 대략 1주일 전에 [[운산]]에서 몰래 들어온 [[중공군]] [[운산 - 영변전투|맞다이를 떴다가]] [[1사단]]이 소멸 당할 위기에 놓였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미 제1기병사단 3대대는 퇴각 도중에 중공군의 매복에 제대로 걸려들어서 전대원이 전멸하는 끔찍한 수모를 겪은 전례가 있었다. 좆됐다 싶었던 [[월튼 워커]] 성님은 [[청천강]] 유역에 전선을 재정비하고 [[유재흥]]이 지휘하는 [[7사단]]을 [[덕천]], [[8사단]]을 [[영원군|영원]]에 주둔시키고 있었다. 근데 어? 청천강 이북을 정찰해보니까 중공군이 안 보였다. 이걸 본 [[맥아더]]는 중공군 졸라 쪼끔 오니까 안심하고 [[크리스마스]]까지 밀어버릴 수 있다는 자신의 오만을 확증으로 굳히게 되었다. 그렇게 유엔군의 재공격이 시작되었다. 11월 24일 10시, [[박천군|박천]], [[영변]], 구장, 덕천, 영원을 연하는 지역에 주둔한 유엔군은 일제히 북진하고 3일 후, 11월 27일 잠시 멈췄던 [[에드워드 알몬드]]의 10군단도 공세를 가하기 시작했다. 운산 전투 때 중공군에게 크게 데였던 [[국군]] 2군단은 혹시 모른다면서 굉장히 느린 속도로 조심스럽게 진격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중공군과 북괴군에게 잡혔던 아군 포로들이 탈출하는 일까지 생겼다. 그래서 유엔군은 정말 반격을 해도 되겠다고 굳게 믿고 진격하지만 '''이건 중공군의 함정이었다.''' 당시 미군이 주로 즐기던 항공 정찰은 지금과 달리 대낮에 저공에서 비행해서 조종사가 맨눈으로 직접 둘러보는 방식이었기에<ref>야간투시경이 없는 건 아니었는데 매우 무겁고 효과도 안 좋았다. 제대로 된 야간투시경은 [[베트남 전쟁]] 때가 되어야 비로소 나온다.</ref> 이 새끼들은 야간에 산을 따라 몰래 이동해서 낮이 되면 방공호를 파고 숨는 방식으로<ref>들키면 [[산불]]을 냈다.</ref> 미군의 정찰을 쉽게 피할 수 있었다. 이렇게 몰래 움직이면서 서부 전선에 '''18개 사단'''을, 동부전선에 12개 사단을 지정된 위치에 잘 때려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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