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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진 전쟁 당시의 전공 == {{간지폭풍}} {{전투종족}} {{진실}} 척준경 성님 기록보면 지림 ㄷㄷ. 아래 기록들은 모두 《[[고려사]]》 예종 세가, 《[[고려사]]》 [[윤관]] 열전, 척준경 열전, 《[[고려사절요]]》에 수록된 기록을 축약한 것이다. 인터넷 보면 키가 180이고 80근짜리 칼을 쓰고 이따위 소설을 사실 마냥 써놓은 거 있는데 그거 다 구라다. 솔직히 그런 구라 안쳐도 정사(正史)에 기록된 것만 봐도 괴물인 수준이다. ㄴ다만 저때까진 내가 알기론 역사는 이긴사람의 것이였다. 기록 자체가 과장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도 있긴 있다. 내 말이 틀렸다면 ㄴ으로 개소리지르지 말라고 해주길 바람. ㄴ 고려사에는 딱 "고려군이 발린다. 척준경이 나갔다. 여진새끼들 개쳐발랐다. 이겼다."라는 식으로만 나온다. 키등의 신체적인 특징이나 들고 있던 무기는 고려사, 고려사절요엔 언급 X. ㄴ 《[[고려사]]》는 조선 태조때, 《[[고려사절요]]》는 조선 문종때 편찬된 사서이다. 지들손으로 보내버린 국가의 기록을 굳이 뻥튀기 시킬일은 없을테니 실화일 가능성이 높다 ㄷㄷ (실제로 척준경 열전은 '반역열전'에 포함되어 있다. '충'과 '예'를 강조한 조선에서 얘를 띄울 필요가 더더욱 없다는 걸 생각하면 뻥이 들어갔을 여지는 없음.) *'''①''' 1104년 2월, 고려군이 정주성을 침공한 여진을 상대하려 가는데 총사령관이었던 [[임간]]이란 놈이 자기의 공을 세우고 싶어서 무리하게 공격당하다가 고려군이 전멸 위기를 맞이 했다. 이때 별가(別駕)라는 하위 공무원 중에서도 최하위 공무원이던 척준경이 다짜고짜 임간에게 달려가 "칼이랑 개마를 달라."고 요구. 평소였으면 "듣보새끼가 어디서 건방지게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야!"라며 척준경의 귓방망이를 때렸겠지만 하늘로 승천하기 직전이었던 임간은 군말 안하고 칼과 갑옷을 입힌 말을 한마리 내준다. 그리고 '''척준경은 적진을 달려가 적장 1명의 모가지를 따고 포로 2명을 되찾았으며''', 좆될뻔한 고려군이 모두 정주성으로 퇴각할때 추격해오던 '''여진족 기마대 100명을 인점(仁占)이라는 무관과 단 둘이서 막아선다.''' 그리고 '''달려오던 여진족 지휘관 2명의 머리통에 화살을 박아넣는데 성공'''하며 여진을 물리친다. 이 전투 이후 한동안 기록이 없는데 죄를 지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뒤질뻔한거 윤관이 구해준거 같다. 아마 임간이라는 놈이 헬고려인 답게 전투 끝나고 하극상등을 이유로 잡아 처넣은거 같다. 다음 기록은 3년후인 2차 여진 정벌때다. *'''②''' 1107년 고려의 최종병기 17만에 달하는 [[별무반]]이 여진족들 모가지를 따러 출격하고, 석성<ref>말 그대로 돌로만든 성이라는 뜻으로 고려사에는 성의 이름은 안나오고 그냥 석성이라고만 표기되어 있다.</ref> 에서 난항을 겪게 되는데 이때 윤관이 척준경을 불러 "니가 좀 힘좀 서야겠다."라고 하니 "죄를 지어 죽을뻔한 저를 살려주셨으니 그 은혜를 죽음으로서라도 보답하겠습니다."라는 씹간지폭풍스런 말과 함께 '''칼을 들쳐매고 갑옷을 둘러맨채 석성으로 돌격, 성을 기어올라 여진의 모가지를 따자 여진들이 겁에 질려 도망치기 시작했고'''<ref>고려사에는 이때 성벽에서 뛰어내리는 여진들도 많았다고 나와있다.</ref> 결국 윤관이 성을 함락하는데 성공한다. *'''③''' 1108년 1월, 윤관이 이끌던 병력이 가한촌(加漢村) 인근의 병목<ref>병목(甁項)은 좁은 길목을 말한다.</ref> 에서 여진군에게 두들겨 터져 8천의 병력이 붕괴되고 총 사령관인 윤관 근처에 단 10명뿐인 상황을 맞이했다. 이때 '''척준경이 칼을 뽑아들고 적진을 돌파해 10여명의 여진 모가지를 따고 전황을 역전시켜''' 결국 지원군이 올때까지 시간을 버는데 성공한다. *'''④''' 가한촌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윤관은 영주성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곧이어 여진군 2만이 영주성을 포위한다. 다른 지휘관들은 성문을 굳게 닫고 지키자는 주장을 하는데 "짱박혀 있으면 우리 성안 곡식이 떨어지기 전에 지원군이 안오면 굶어 죽는데요? 다들 내가 날라다니는거 지켜나 보세요."<ref>고려사 원문은 다음과 같다. '''“만약 나가 싸우지 않았다가 적의 병력이 갈수록 증가하고 성 안의 양식이 떨어지며 외부의 원병까지 오지 않으면 우리는 고스란히 죽을 것입니다. 전날 싸움에 이긴 것을 공이 이미 보셨으나 오늘 또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테니 공들께서는 성에 올라가 구경하시오.”'''</ref> 라는 말과 함께 '''성문을 뛰쳐나가 여진족 19명의 모가지를 따서 2만명의 병력을 물리친다.''' 씨발 이게 사람이냐? *'''⑤''' 1108년 1월, 윤관의 지시로 [[왕자지]]는 고려군을 이끌고 영주성으로 이동중이었다. 이때 여진족 추장이던 사현(史現)이 "우리 고려 꼬추나 한번 볼까!"라며 달려들었고 기습을 당한 고려군은 좆망 직전까지 가게 된다. 왕자지는 말에서 떨어져 조리돌림 당할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때마침 척준경이 등장, '''고려군과 여진군이 엉켜있는 전장으로 달려들어 여진족의 목을 따고 심지어 여진족 부락까지 쳐들어가 거기 있는 말 한필을 도둑질해 자기 친구였던 왕자지에게 건네주기까지 한다.''' *'''⑥''' 1108년 2월 11일, 여진의 대군이 웅주성을 둘러싸고 공격을 퍼부었다. 이때 성을 지키던 지휘관 최홍정은 척준경을 불러 "우리 다 좆되게 생겼다. 힘좀 쓰는 니가 구원군을 데려와라."라며 적진을 뚫고 정주성까지 가라고 지시했는데 우리의 척준경은 까라면 까는 진짜 군인이셨는지 이 말을 듣고 "예썰!" 한마디와 함께 여행 준비를 하신다. 그리고 그날 밤에 '''성벽을 타고 내려와 여진의 포위망을 혈혈 단신으로 뚫고 지나가'''<ref>이거 뻥튀기 아니다 고려사 기록에 진짜 성벽타고 내려와 뚫었다고 나온다</ref>'''정주성에 도착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정주성의 구원군과 함께 웅주성 근처에 도달한 고려군은 길주에서 여진군을 격파하는데 성공한다. *'''⑦''' 이후에는 큰 전투가 아니라 자잘한 전투에서 짤막한 기록으로만 등장한다. 고려사에 따르면 '''[[왕자지]]와 함께 별동대를 이끌었던 것으로 추정'''하며 여진의 침공이 있는 지역으로 달려가 그들을 막아서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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