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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 == 고대보다 더 구려졌다고 착각속에 까이고 있다. 현실은 농업도 더 발전했고 교육도 약간이나마 나아졌다. 니가 하층민이라면 중세에 사는게 더 나았을거다. 다만 고머보다 미개한 부분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이 말은 노예제도가 사라져서 맨날 주인한테 학대당하는 노예 보단 농노의 삶이 그나마 나았다는 소리. 문맹률이나 삶의 질 수준은 고대 로마 시민이 더 낫긴 했다. 물론 로마 '시민'은 소수고 대다수는 노예였다만. 중앙집권이 안되서 왕은 영주라는 힘센 동네 깡패 우두머리에게 땅줘서 달래줬고 그 영주는 기사라는 동네깡패에게 땅줘서 달래줬다 . 기사라는 놈들은 농사를 지을 줄 몰라 농노들에게 삥뜯으며 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좆지랄 덕분에 유럽이 발전할 수 있었다. 사실 중세봉건이 있기에 시민사화도 가능했던 것이다. 기독교 만민평등사상 때문에 노예가 없고 농노들만이 있는데 나증에 장원경제 좆되고 얘들도 차차 시민이 된다. 그리고 신중심 사회에서 인본주의를 부르 짖은 것도 비잔틴 새끼들이 아니라 미개한 서유럽 새끼들이다. 과연 로마제국이 존속 됐다고 지금의 우리가 아는 과학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비잔틴 애들도 한건 고전 학문 보존한 것이지 뭘 새로 창조한건 아니다. 그리고 유럽이 발전할 수 있던 것도 잘개잘개 분열되서 이새끼 저새끼 싸웠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 건축 === 고딕양식으로 대표되는 성당들이 유명하다. 뾰족하고 비대칭스런 기괴한 모습에 최대한 하늘 높이 짓는 식으로 세금낭비를 했는데 이건 이거대로 건축술 발달에 기여한다. 수원 화성 거증기 보다 큰게 중세 유럽 거중기다. === 교육 === 또한 신의 섭리는 무엇인가? 를 연구하기 위해 논리학이 발달하고 대학도 세워졌다. 애초에 이론인 theory의 어원이 수도승들이 관조하는 것의 테오리아에서 생겨난 것. 그리고 사실 고대 로마의 라틴어 서적을 보존한 것은 이탈리아의 수도승들이다. 이 당시 비잔틴 제국은 라틴어가 아니라 그리스어를 썼다. 또한 필사본으로 성서 관련 내용이 주였지만 지식을 보전한 것도 중세 교회였으며, 수도원에 학교를 세워 애새끼들 교육 시킨 것도 교회였다. 중세 초기에는 귀족들 중에서도 글자를 쓸줄 아는 새끼들이 드물었지만, 카를로스 대제가 수도원을 필두로한 교육기관 확충으로 중세 중기까지 문맹률은 60%까지 떨어졌다. 물론 10명중 6명이 글을 못쓰고 못읽는 건 노답이긴 하지만 그건 지금 기준에서 보면 그렇고 당시에는 획기적으로 끌어올린거다. 중세 교회를 종교에 미친 씹미개한 병신들로 보고 그들이 이끌었던 중세도 미개한 원시 동굴로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종교 미친 씹미개한 예수쟁이들이 너가 비싼돈 내고 가서 질질싸는 유럽문화유산에 막대한 돈을 댄것을 기억해야 한다. 중세 교회는 로마제국이 사라진 유럽에서 사회를 유지하는 등불이었다. 애초에 당시 공공기관들을 운영한 곳이 중세 교회였다. 각종 마을 업무들을 담당하는 분교부터, 도시부교회까지 전부 교회의 신부들이 담당했으며 정치인들 또한 종교인들이었다. 한마디로 동사무소, 구청, 병원, 도서관 같은 장소들을 교회에서 운영했으며 나아가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소리. 일 못하든 잘하든 생활속에 가장 밀접한 인물들이 교회였고 그들의 개입으로 대도시를 제외하면 사회시설망이 전혀 없던 중세 유럽이 그나마 유지가 되었던 거다. 당시에도 욕을 존나게 먹었지만 우리가 정치인 욕하는 거랑 같은 거다. 그리고 미국보다 더 영향력이 강했던 제국이 사라지고 집단 미개화가 발생한 유럽에서 싸우지마 미개한 병신들아라고 예수님이 그랬어라며 세기말 전투왕들의 폭주하는 아드레날린 분출을 자제 시켰던 것이다. === 과학 === 그리고 어떤 좆문가새끼들은 과학이 발달 어쩌고 하는데 과학의 발달이 늦은 것은 분명하지만 아시아에 넘어온 과학기술들을 급속도로 개량한 것도 중세 유럽이었다. 종교적 교리에 의해 움직이긴 했으나 우리가 흔히 알듯이 자연철학(당시엔 과학자들을 자연철학자라 불렀다.)을 탄압한 것도 아니었다. 중세 중기까지는 실험 시설을 죄다 수도원에서 진행했는데 과학을 탄압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갈릴레오 갈릴레이 지구는 돈다 이지랄은 후세 창작이었고, 갈릴레이가 실험한 장소로 유명한 피사의 사탑도 수도원 안의 탑이다. {{인용문|"지동설이 '참된 논증'을 통해 입증된다면, 성경에 근거하여 지동설이 틀렸다고 단정해서는 안 되며.<br>성경을 신중히 재해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벨라르미노 추기경'''}} 천동설 지동설 논란도 현재로 치면 "기존의 A이론과 현재 새로이 발표된 B이론 중 어디가 맞는가"로 논의가 있었던 거였다. 상대성 이론이 처음에는 "니미 씹 개소리 자제좀."이라고 했지만 후에 증명이 이루어 지며 인정 받듯이, 초기엔 논란이 있었으나 결국 지동설이 과학적으로 옳다는 쪽으로 나가며 결국 중세 후기의 자연철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가 계산에 성공하면서 천동설은 폐기 되었다.<ref>당시 갈릴레오가 말년에 종교재판을 받은 적은 있다. 근데 그건 당시 종교개혁이 불타오르며 "씨발 좌빨새끼들이 교회를 뒤집어 엎으려 하네?"라며 골머리를 앓던 교회 분위기 때문이었다.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을 받은 건 1633년인데, 지동설이 옳다는 걸 발표하고 교황청이 대학자를 직접 로마로 초빙한게 1610년이었다. 만약 지동설이 진짜 교회에서 좆같이 여겼다면 한동안 "캬 갈릴레오님 지리구여. 님 존나 똑똑한듯."이라며 개빨아주다 20여년이 지나서 깜빵을 쳐넣을 리가 있을까.</ref> === 미술 === 중세는 미술의 암흑기라 까이는 시대이다. 종교가 미술을 장악해 거의 대부분의 미술들은 종교를 소재로 다루어졌으며 조각의 퀄리티도 고대 그리스•로마 보다도 딸렸다. 딴건 몰라도 우상숭배라면서 그리스•로마시대 고전 조각들을 부숴버린건 유럽 예술가들과 미학자들에게 르네상스 태동 이후부터 주구장창 까이고 있다. 오히려 이슬람보다도 반달리즘에 앞장섰던 이들이 유럽인들이었다. 미술이라고 해봤자 성당에 장식하는 석상이나 고딕성당 주례소에 걸어두는 판넬화, 스테인드글라스 정도. 이 시대 미술들은 유럽 미술사에서도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바자리, 알베르티, 빙켈만 같은 시대를 주름잡던 미술사학자들도 모두 중세를 까고 고전 그리스•로마 미술을 빨기 바빴다. === 의술 === 근데 의술은 좀 많이 씹창 났었다. 기초적인 절제를 통한 외과수술이 이루어 졌던 로마시대의 의술이 죄다 실전되었고 마취를 사용해 수술하던 이슬람과는 비교 자체가 쪽팔리는 수준. 당시에는 4체액설이라는 병신같은 이론이 주류를 이루었으며(근데 이것도 따지고 보면 그리스시대의 유산이다.), 십자군 전쟁 이후 이슬람의 문화가 들어오고도 한동안은 정체된 상태였다. 하지만 구호기사단이 설립한 병원은 이후에 어떤 병원도 따라오지 못할 ㅆㅅㅌㅊ였다고 한다. 심지어 피는 신성한 것으로 굳이 닦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의사들이 시체를 부검한 손을 그대로 산모의 출산을 돕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 학자가 손을 씻고 출산을 돕는 산파들이 의사가 출산을 도울 때에 비하여 산모와 아기의 사망률이 낮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나 당시 의사들은 자신들이 산파만도 못하다는 사실에 열등감에 휩싸여 그 학자의 주장을 무작정 비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 위생 ==== {{미개}} {{더러움}} 존나 더러웠다. 길거리에는 똥, 오줌, 시체가 나뒹굴고 악취가 매우 심해졌다고 전해진다. 뭐 과거시대니 안 더러운 곳이 있겠냐만은 중세는 특히 더 심했다. 집들도 다닥다닥 붙어있고 똥오줌 휘갈기는 가축들도 집안쪽에서 키웠으니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더럽고 미개한 위생상태때문에 유럽에서는 [[흑사병]]으로 최소 7천만명에서 2억명까지 한순간에 증발한 적도 있다. 새부리 가면을 쓴 의사들도 이때 전염되는 것을 막기위해 생겨난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 가면은 중세 이후에 나온 것이다. 이때 정신차려서 위생관리를 철저하게 한건지 그냥 쥐새끼들이 다 뒤져셔 그런건지 또 흑사병이 크게 돈 적은 없었다. 그에 반해 19세기 동양은 또 다시 흑사병이 돌아서 1200만명이 증발한다. 특이하게도 조선 역시 중세마냥 위생이 퇴화했다. 명불허전 조선의 얼굴마담이자 유일하게 촌티 안난다는 한양 길거리에는 똥이 넘쳐다녔다. 고려까지만 해도 오히려 짱깨들 보고 씻지도 않는 미개한 새끼들이라면서 멸시한 그 나라가 말이다. 결국 해외문물이 대거로 들어온 구한말이 되서야 위생상태가 개선된다. === 경제 === 화폐제조를 개나소나 다 했다. 농담이 아니라 『이야기 세계사』라는 책에 따르면 한자동맹의 유적지를 발굴했을때 발굴된 동전 가지수만 80여개가 넘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은이 존나 부족해서 남미 개척과 명나라에서 은자 수출을 하기 전까지는 금과 은의 공급이 부족했다. 참고로 동전 둘레에 있는 돌기, 그거 만든게 중세 잉글랜드다. 당시 금화 은화의 둘레를 살살 긁어서 금과 은을 모으는 새끼들이 널리니까 그걸 막기위해 새겨 놓은 거. 지금도 10원짜리 모아서 녹여 팔다 걸린 새끼들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ㅉㅉ 길드라는 조직이 탄생해 도시경제를 이끌어가는 주역으로 성장한 것도 바로 이때다. [[양판소]]나 [[이고깽]]물에서 존나 중2병 걸린 새끼들 모인 곳처럼 나오는 거기. 물론 쫌생이처럼 너고소 시전해서 상대 길드 좆되게 만드는 것도 있었고, 일종의 독과점을 구성해서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어쨋든 이 길드제도 덕에 도시부에서 생산되는 물품들이 최소한의 품질을 유지했으며 일부 대형길드는 각국에 지부를 설립해 1국의 왕보다도 더 큰 돈을 벌어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초보적인 실물보험이 등장하던 시기도 바로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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