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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조선 초기 인물== {{역사인물}}{{천재}}{{갓얀도}}{{저명성}}ㄴ이양반 자체가 최근에야 이름값이 높아졌지 과거엔 그런사람이 있었나?수준으로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 class="wikitable" border="1" rules="none" |- |align="middle" style="background:#8B008B; color:#FFFF00; font-weight:bold; text-align:center" colspan=2|<big>'''조준(趙浚)''' |- |align="middle" style="background:#8B008B; color:#FFFF00; font-weight:bold; text-align:center"|'''이명''' | 자 명중(明仲), 호 우재(吁齋) 혹은 송당(松堂) |- |align="middle" style="background:#8B008B; color:#FFFF00; font-weight:bold; text-align:center"|'''출생''' | 1346년 [[평안도|서북면]] [[평양|서경]] |- |align="middle" style="background:#8B008B; color:#FFFF00; font-weight:bold; text-align:center"|'''본관''' | [[평양 조씨]] |- |align="middle" style="background:#8B008B; color:#FFFF00; font-weight:bold; text-align:center"|'''사망''' | 1405년 11월 [[서울|한성부]] 사저 |- |align="middle" style="background:#8B008B; color:#FFFF00; font-weight:bold; text-align:center"|'''학력''' | 1374년 고려 함과에 급제 |- |align="middle" style="background:#8B008B; color:#FFFF00; font-weight:bold; text-align:center"|'''국적''' | [[고려]], [[조선]] |- |align="middle" style="background:#8B008B; color:#FFFF00; font-weight:bold; text-align:center"|'''작위''' | 충의군(忠義君),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 |- |align="middle" style="background:#8B008B; color:#FFFF00; font-weight:bold; text-align:center"|'''가족''' | 증조부 시중 [[조인규]] |- |} [[조선]]의 개국공신이자 제 死대 영의정. 본래 그의 집안은 [[중화군#現 북괴령 상원군 지역|토산현]] 흙수저집안이었지만 증조부 조인규가 [[몽골어]]통역관으로 출세하여 [[권문세족]]이 되었기 때문에 평양의 금수저집안에서 존나 잘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증조부빽을 통해 정계에 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가 과거급제자들이 위풍당당하게 행진하는 것을 보고 탄식하자 엄마 제가 과거급제할게요ㅠㅠ 하면서 빡공해서 과거에 급제했다. 이후 [[우왕]]시기 통례문부사(通禮門副使)로서 [[강원도|강릉도]] 안렴사(按廉使)로 부임했다. 거기서 정치는 잘했다는듯? 이후 개성에서 사헌장령으로 임명되었다가 감문위대호군지제교로 전입되었다. 1382년 [[최영]]의 천거로 [[경상도]]로 내려가 [[왜구]]를 토벌하면서 명성을 얻었고 또 1383년 밀직제학찌고 상의회의도감사찍고 강릉도검찰사가 되었을 때 강원도에 쳐들어온 왜구를 토벌하여 선위좌명공신(宣威佐命功臣)으로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권신의 발호에 실망, 4년간 은둔생활을 하면서 윤소종, 허금, 조인옥, 유원정, 정지, 백군녕등과 친목을 다지면서 [[우왕]]축출을 기도했다. [[위화도 회군]]으로 [[이성계]]가 조정을 장악하자 이성계에 의해 지밀직사사 겸 대사헌(知密直司事兼大司憲)로 발탁되어 주요 정치사안의 자문을 하게 되었다. [[신진사대부]]가 토지개혁문제로 [[정도전]]파와 반정도전파로 갈렸을 때 정도전파의 네임드로 활동했다. 이어 정도전, 이성계의 핵심 측근이 되어 [[조민수]], [[이인임]]. [[창왕]], [[공양왕]]까지 제끼는데 참여해 중흥공신에 서훈되었고 1391년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하지만 [[정몽주]]가 급진파 사대부들을 대거 투옥시킬 때 같이 엮여서 투옥되어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정몽주가 대낮에 [[이방원]]한테 철퇴맞고 죽으니까 석방되었고 조선건국에 참여, 1등 개국공신이 되어 평양백으로 봉해지고 문하우시중의 자리에 올랐다. 조선건국까지 정도전과 정치적 우군이었지만 건국이후 국정운영문제로 이래저래 싸우기 시작하더니 정도전이 이방석을 세자로 삼자고 하고 요동정벌드립을 치자 손절하고 [[이방원]]의 심복으로 활동했고 이후 칼방원과 랄부친구가 될 정도로 친해지면서 존나 잘나가며 천수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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