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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속 == 이후 구화랑 곡사정이 당나라 조정으로 복귀함에 따라 자동으로 당나라 땅이 된다. 당속 시기에는 이름이 교주에서 안남도독부로 바뀐다. 이 안남이라는 명칭은 헬조선, 왜노국, 짱꼴라를 비롯한 똥양과 쎀양 국가들이 베트남을 부를때 쓰이는 명칭이 된다. 근데 헷갈리게시리 중간에 진남도호부로 바꾸다 다시 안남도호부로 바꾼다. 신라랑 돌궐처럼 도호부로 승격시켜서 좀 지배를 느슨하게 하긴 했다. 즈그네식 교육제도나 문화가 많이 들어와서 베트남의 중국화에 박차를 가했고, 당나라로 건너가서 빈공과에 합격한 베트남인들도 10명이 넘을 정도였다. 하지만 코끼리 상아, 대모거북, 유향, 금, 은, 명주 등 지역의 특산물들을 닥치는대로 글겅이질하는 등 수탈도 심각했다. 게다가 중뽕을 더욱 주입할수록 짱깨 일부가 되기는 커녕 베트남인들의 마인드가 선진화되어 저항의식이 싹텄고, 독자적인 문명권을 꿈꿨다. 그래서 반란 또한 심심찮게 일어났다. 이사선, 정겸 등이 대표적이다. 도서부 똥나마에서는 인도네시아의 샤일렌드라 왕조와 스리비자야 제국에서 건너온 해적들까지 베트남인들을 수탈하고 다녔다. 특히 722년 매숙란의 난은 남베트남의 짬빠랑 캄보디아의 쩬라까지 개입했다. 인도차이나에서 한가닥 하는 놈들이 끼어들어서 현지인까지 징병한 끝에 겨우겨우 진압했다. 설상가상으로 서쪽에서 토번과 회흘이 갑질을 시전하면서 베트남에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난이 진압된 이후로도 운남성에서는 남조의 침공까지 받았고, 남베트남의 짬빠에서는 판두랑가 왕조가 들어서면서 재침공을 시도했다. 당나라 자체도 망조가 들어서 끝물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고 있었다. 이와중에도 정신 못차린 당나라 짱깨새끼들은 세금 징수로 글겅이질하기에 급급했다. 얼마나 노답이었으면 탈중국한 화교 무역상인 출신인 풍흥이 난을 일으켰을 정도였다. 풍흥이 꾸린 왕조도 박살나면서 봉기는 진압됐고, 당나라 조정에서 직접 고병이라는 유능한 도독을 파견하면서 베트남은 안정기에 접어든다. 이 시기에 베트남은 안남도호부 명칭이 폐기되고 사실상 20년간 독립이나 다름없는 자치권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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