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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고려 말 권신인 [[이인임]]한테 찍혀서 벼슬길이 끊겻는데,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아예 글방 선생도 못하게 훼방을 놔서 정도전이 제대로 흐콰해 고려를 무너뜨리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된다. ㄴ 그것때문만이 아니라 나주부곡에 유배를 가서 민중들의 삶을 경험해보고 혁명을 결심한것이다. ㄴ 나주 부곡 쪽은 드라마에서 존나 창작한 게 많은데? 유배간 건 맞지만. ㄴ 유배 시절에 일반 백성들과 생활하며 혁명을 결심한 건 맞다. 그래서 당대 전쟁영웅으로 이름값이 올라가던 [[이성계]]한테 붙어서 역성혁명을 위한 플랜을 짠다. 도중에 [[정몽주]]한테 죽을 뻔도 봤으나 이방원이 선죽교 킬딸을 해서 구사일생. 근데 시발 막상 기록을 잘 보면 정도전 얘가 신진사대부 대장노릇한 건 맞는데 실무는 조준이 계책은 남은이 낸 거 같은 느낌이 많다. 지 말대로 정도전이 장자방이면 조준은 소하. 남은은 진평정도 될 수 있겠다. 제일 중요한 업적이 빠졌다. 전제개혁으로 흙수저들에게 땅을 나누어 주었다 근데 장자방은 유방이 적장자 조까고 다른 어린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했을 때 은밀히 적장자를 돕는 계책을 냈지만 정도전은 둘째마누라에 혹한 노망난 노인네 이성계의 고집에 순응했다는 게 차이다. 결국 빡쳐서 [[왕자의 난]]을 일으킨 [[이방원]]한테 죽었는데 이걸보면 확실히 장자방만은 못 하다. 어떤 미친놈들이 자꾸 이방원은 절대왕권 지상주의자라 정도전과는 척을 질 수 밖에 없다는 헛소리를 하는데 정도전 남은 조준이 첨에 이성계가 세자 책봉에 대한 조언을 물을 때 치세엔 장자 난세엔 능력있는 아들이라고 답했다. 시발 설마 10살도 안된 막내아들이 능력있는 아들이라고 할 수 있냐? 아니 그것 뿐만 아니라 뭐 공을 쌓은 게 아무것도 없다. 신덕왕후 소생인 무안대군 이방번, 의안대군 이방석 죄다 어렸다. 차라리 신의왕후의 아들들인 전쟁경험좀 있는 정종이나 과거 급제해서 관료물 좀 먹은 데다가 정치감각좀 있는 방원이지. 그리고 정도전이 무슨 재상중심을 위해 방원이를 일부러 내친 것처럼 말하는데 실제로는 이성계와 신덕왕후 강씨의 고집에 의해 신료들이 져준거다. 정도전, 남은은 그냥 왕이 까니까 까야죠. 하고 넘어갔지만 조준만은 큰일난다고 결사반대하다가 결국 홧병걸림. 특히 [[육룡이 나르샤]]만 봐도 조준은 맨날 화나있다. 그래도 왕자들한테 칼 뺏어야 한다고 사병폐지를 추진하고 중앙군을 육성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조사의의 난]]때 다름아닌 [[이성계]]의 반란군을 줘 털기 위해 [[태종]]이 잘 활용했다. 어떤 미친놈들이 자꾸 실제 요동정벌하려고 육성한 군이라는데 만약 겨우 5만가지고 요동을 쳤다면 명나라의 분석대로 20만은 되거나 못해도 10만은 끌고 가야하는데 아니니까 조선은 망했다. ㄴ 사실상 효종이 북벌한다고 입만턴거랑 비슷한 거였을거다. 본래목적은 국방력강화랑 사병철폐였을거고 실제로 정난의 변 때 동원된 황실과 주체의 군대만 봐도 각각 10 만 단위가 넘어간다.(황제군만 따져도 50만군대를 궤멸당했음에도 몇번을 보낸다. 그리고 영락제주체가 황제에 즉위하고 한 북쪽 친정만 보아도 답이나온다. ) 어떤 미친놈들은 이성계니까 다해주실거야 라는 개소리를 하는데 성계 나이를 보자. ㄴ 사실상 조광윤처럼 개국 직후라 사병들이 불안요소되니까 사병흡수하는 명분이라고 보는게 맞다. 태종이 써먹은거처럼 반란진압에도 좋고 그리고 조사의의 난에서 그 무패의 명장도 세월을 이겨내지 못하고 졌다. ㄴ 레알 정도전 말대로 요동 따먹었으면 몇년 후에 초원 불살라버리고 온 영락제에게 줘팸 당했을꺼다. 50만을 5번이나 초원에 보낸 국력인데 까짓 요동 쯤이야 50만 5번은 개소리하지마라 그정도 국력인데 토목의변때 10만도 못동원해서 개털리고 부랴부랴 20만명모아서 싸우냐? 중국병력동원 기록은 믿고 걸러라 여려모로 능력도 있었지만 하필 끝판왕 위치한게 정치 10단쯤되는 이방원이었다. 진짜 상대가 이방원만 아니었으면 정도전에게도 승산이 상당히 높았다. 이방원이 난을 일으켰던 시점을 봐라,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꼬맹이었던 이방석이 어느새 17살(당시에는 어른으로 보던 시기)에 애까지 가지고 있었고 사병 문제도 무기를 거둬드리며 해결을 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시대가 더이상 그의 편이 아니었다는 게 문제기 됐다. 적으로 희대의 먼치킨인 이방원이 있으며, 그 이방원에게 기가막힌 운들이 따라와줬다. 첫째로 신덕왕후가 젊은 나이에 죽어버림으로써 방석의 세자자리에 위험이 생겼고, 더불어 자신의 가장 큰 지지자인 태조가 누워버렸다. 물론 앞서 설명을 했듯이 이런 상황이라도 어지리떠지리가 난을 일으켰다면 실패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필 난을 일으킨게 이방원이고, 단 하루밤만에 모든 일이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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