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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생 == 전두환은 학창 시절 돌대가리였는데, 이건 본인 스스로도 인정했다. 육사도 최하위권 성적으로 입학했고 졸업도 하위권(126/156 = 50명 중 41등 수준) 성적으로 했지만 싸움질 하나는 잘했다. 이거 완전 여포 아니냐? 전두환이 대구공고 축구부(포지션은 골키퍼)에 있을 당시 싸움을 엄청 잘해서 대구에서는 통이었다. 마산 통이던 [[강호동]]에 비견되는 싸움꾼이었다. 한마디로 1950년대에는 대구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전두환이었다. 그래서 육사에 들어갔을 때 싸움실력이 사람 성격을 좌우한다고 싸움을 워낙 잘하다 보니 용감하고 다른 사람을 부리는 능력이 탁월했다. 단 레알슐레 출신이라서 공부는 뒈지게 못했다. 그것 때문에 갑종 떨어져서 육사에 온 거고 그나마 육사에서조차 퇴교 심의위원회에 몇 번 회부될 정도로 심하게 공부를 못했었다. 그래서 쏘위 임관성적이 156명 중 120등 안에도 못 들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군은 무능할수록 교육 보직으로 많이 할당했고 유능하면 실전 투입 보직으로 많이 넣었는데 그래서 대위가 되자 서울대학교 [[ROTC]]로 배치되었다. 전두환이 [[대위]] 시절 [[서울대학교]] [[ROTC]]에서 훈육장교를 했는데 이때 훗날 자신의 스승이 되는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을 일으켰다. 당시 전두환은 이리저리 저울질을 해보더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해서 모교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서 생도들을 소집시킨 후 박정희 지지 퍼레이드를 하려고 했지만 당시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던 강영훈 [[소장]]이 전두환이 육사 생도들을 학교 밖으로 빼돌리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전두환은 바로 박정희한테 달려가서 이걸 고자질했고 박정희는 강영훈을 체포해버렸다. 강영훈이 잡혀가자 전두환은 육사생도들을 광화문으로 데려와서 박정희 지지 퍼레이드를 시켰다. 이후 박정희가 대통령에 오르자 자신을 도와준 대위 2명에게 [[국회의원]] 자리를 권유했는데 그들이 전두환 대위와 [[차지철]] 대위였다. 차지철은 여기에 응해서 [[중령]]으로 제대한 뒤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전두환은 국회의원 자리를 거부하고 [[군대]]에 남기 위해 박정희에게 이런 말을 한다. {{인용문2|각하, 군대 안에도 각하를 위해 움직여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박정희는 전두환을 위해 [[하나회]]를 만들어준다. 이 때 전두환의 위세가 어느 정도였냐면 고작 중령인데 [[장군]]들의 눈치를 하나도 안 봤을 정도였다. 전두환은 [[대령]]이 되자 [[연대장]]으로 [[베트남 전쟁]]에 파병갔다. 그런데 맨날 [[회식]]만 해싸고 전투를 아예 안 하니 군공이라는 게 없었다. 그렇다 보니 전두환은 무기 밀매상을 만나서 무기를 밀수해 적성화기라고 속여서 상부에 제출했지만, 상부에서는 총기를 열어서 총열 속을 들여다봤는데 약실 안에 탄약 가루가 하나도 안 묻어있어서 매우 깨끗했다. 즉, 단 한 번도 쏴본 적이 없는 총이었다. 이에 전두환의 직속상관인 [[사단장]] 조천성 소장은 전두환을 현역부적합전역 시키라고 했으나 박정희에 의해 제지당했다. 조천성을 포함한 여러 장군들이 전두환을 [[준장]]으로 진급시키면 안 된다고 강하게 항의를 하는 바람에 전두환은 준장 진급에 결국 누락되었다. 하지만 박정희는 꼼수를 하나 썼는데 전두환을 [[특전사]]에 넣고 대령 계급장을 단 채로 준장 보직인 1공수특전여단장으로 보직시켰다. <ref>참고로 이당시 문재앙이 1공수에서 특전병으로 복무중이었다</ref> 그리고 그 다음 진급심사에서는 준장 진급에 성공했다. 이후 전두환은 소장 진급에 성공하고 1사단장을 거쳐서 보안사령관으로 보직되었다. 아무튼 이러한 돌대가리였기에 당시 군부에서도 이 새낀 큰 인물이 못 될 놈이라고 생각해서 별로 견제를 하지 않았고 보안사령관을 맡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두환은 딱 쿠데타를 일으켜서 수뇌부들 모가지를 따고 정권 잡을 수 있는 정도의 지능은 갖고 있었고 그렇게 하룻밤 사이에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승화를 체포하고 군부를 장악했다. 애초에 전두환은 천재였으면 이곳 저곳에서 견제 받았기 땜에 차라리 돌대가리인 게 신의 한 수였다. 방심시키는 전략 쓰는 전 장군님 ㄷㄷ 전두환은 돌대가리였지만 스스로 돌대가리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쿨하게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은 인정할 줄 알았고 그 결과 [[김재익]]이라는 최고의 엘리트를 적재적소에 꽂아넣게 된다. 이로 인하여 대한민국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하게 되었다. 실제로 땅크 성님이 머통령하던 80년대는 단군이래 최대 호황을 누리던 시기였다. 각종 호재들+전두환의 용인술이 겹쳐 만들어진 게 당시 경제 호황이었다. 다만 3저 호황을 전두환 각하의 업적이다 이기야라며 빨아재끼는 일는 지양할 필요가 있는데, 1980년대 중후반의 3저 호황은 한국만 온 게 아니었다.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 엔화의 가치가 강제로 고평가를 받게 되면서 일본이 수출 강국으로써의 입지를 잃어버리고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은 원화 등의 통화들을 쓰는 국가들은 상당한 수출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한국은 그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딱 한 번, [[노태우|친구]]를 잘못 둬서 백담사에 갇히게 되었고 이후 그 [[노태우|친구]] 또한 다른 [[김영삼|친구]]를 잘못 둬서 사이좋게 둘 다 감옥에 들어간다. 1996년 5.18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슨상님을 비롯한 대선 후보들이 사면 공약을 내걸어서 YS 말년에 특별 사면됐다. 2010년 때 이명박의 주최로 대통령 정모를 해서 김영삼을 만났는데, 김영삼이 자신에게 온갖 폭풍디스를 하자 화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중에 김영삼이 죽었을 때 쿨하게 장례식을 갔다. 그러나 기자들의 둘이 화해했냐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은 걸 보면 그 폭풍디스가 아직도 가슴에 응어리져있었던 듯하다. 2021년 언론에 드러낸 모습이 과거와 급변했는데, 전에도 90이 다 되어가서 조금 삭긴 했는데, 이번에는 2021년을 넘길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엄청 수척해졌다.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혈액암에 걸려서 조만간 가실 듯하다. 그래도 역대 대통령 중에서 윤보선 다음으로 2번째로 장수하는 셈이다. 10월 21일 막내 동생 전경환이 지병으로 사망했다. 10월 26일, 친구 노태우가 병으로 사망하면서 유일하게 생존중인 20세기 대통령이 되었다. 이로서 5일 만에 친구와 동생을 둘 다 잃게 되었다. 노태우의 사망소식을 듣고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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