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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쟁]] == 1949년 5월 3일, [[6사단]] 7연대의 연대장으로 보직을 임명받게 되면서 ㅎㄷㄷ한 커리어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7연대는 지휘소는 춘천에 두고 양통리, 주목리에 진지를 두고 있었다. 1949년 8월 6일, 1개대대의 [[북괴군]]의 슴만튀를 막아내었다. 이후 7연대장으로서 연대의 전투력을 대대전투훈련으로 증강시키고, 1년동안 춘천의 지형들을 숙지했으며 연대를 군, 행정관서, 주민간의 커넥션을 만들어 어느연대보다 주민과 군, 행정관서의 연계가 튼튼한 연대로 바꿨다. 이러한 임부택의 노력은 [[춘천전투]]에서 빛을 발했고 북괴군의 남침을 최대한 지연시키는데 엄청나게 공헌하게 된다. [[육군본부]]의 명령으로 [[충북]] [[음성군|음성]]으로 철수했을 때도 [[김종오|상관]], [[김홍일|1군단장]]과 함게 [[무극리 전투]]에서 북괴군을 또 털어버렸다. 상관이자 2살 어린 동생이었던 [[김종오]]성님과 함께 전투를 지휘하면서 [[초산 전투]]까지 6사단이 북괴군을 상대로 빛나는 연전연승을 이루는데 큰 공헌을 했다. 초산에서 북괴군을 점령한 뒤 [[압록강]]물을 떠다 싱먼리에게 바쳤는데, 춘천때보 못받은 훈장을 이렇게 받을 수는 없다며 압록강물을 떠왔다고 싱먼리가 준 훈장을 깔끔하게 거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초산으로까지 7연대가 들어가도록 냅둔 것은 [[중공군]]의 계략이나 다름없었고, 7연대는 이 계략에 제대로 걸려 복날 개패듯이 쳐맞고 겨우겨우 철수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팽덕회]]가 '씨발 임부택을 죽이든가 7연대를 없애버려라'라는 특별지시를 내린 일화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살아 돌아온것도 존나 대단한거다만. [[1.4 후퇴]]이후 [[용문산 전투]]에서 [[중공군]]의 후장을 뚫고 [[파로호]]까지 쫓아가면서 중공군을 두들겨패서 복수에 성공한다. 1952년 [[준장]]으로 진급, [[11사단]] 사단장으로 임명되어 [[금성 전투]]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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