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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신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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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이집트 제18왕조]] === [[이집트 제2중간기]] 동안 이집트는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로 분열되어 있었다. 하이집트는 [[힉소스]] 지배기로서 [[이집트 제15왕조]]의 지배를 받았고, 상이집트에서는 [[이집트 제16왕조]]와 [[이집트 제17왕조]]가 들어섰다. 15왕조와 17왕조 간의 대대적인 전쟁이 벌어지던 [[기원전 1550년대]]에, [[아흐모세 1세]]가 즉위하면서 [[이집트 제18왕조]] 시대가 시작되었다.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힉소스의 15왕조를 멸망시키고 이집트를 통일했다. 그 이후 [[아멘호테프 1세]]와 [[투트모세 1세]], [[투트모세 2세]]가 뒤를 이어서 이집트를 강한 나라로 만들었다. 고대판 MAGA인 셈 투트모세 2세가 뒤진 다음에는 [[근친|남매이자 아내인(!)]] [[하트셉수트]]가 [[투트모세 3세]]의 섭정을 하다가 나중에는 공동 파라오가 되었다. 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왕권을 오히려 강력하게 만들었고, 많은 건축물들을 남겨 현대 이집트가 관광 명소로 잘 써먹고 있다. 하트셉수트 사후에는 투트모세 3세가 파라오가 되었다. 이 양반 또한 강력한 파라오였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패권국이었던 [[미탄니]]를 탈탈 털면서 엄청난 금은보화를 쌔벼왔다. [[아멘호테프 2세]] 때는 미탄니와 냉전 상태에 접어들었고, [[투트모세 4세]]는 [[기자의 대피라미드]] 근처에 있는 [[스핑크스]]를 복원했다. [[아멘호테프 3세]]는 전쟁을 줄이고 경제와 문화에 신경쓰면서 이집트에 평화를 가져다준 명군으로 손꼽히게 된다. 그런데 아멘호테프 3세의 아들인 [[아케나텐]]이 즉위하고 4년째 되던 해에 갑자기 신관들을 겐세이 하겠답시고, 기존의 다신교를 디스하고 [[아텐]]만이 유일한 신임!을 선포해버린다. 다신교가 일종의 국룰이었던 이집트에서 이런 행동은 미친 짓으로 취급받았다. 수도도 테베에서 아마르나로 옮겼으나, 개혁은 좆망했고 오히려 당시 강해지던 [[히타이트]]를 막지 못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아케나텐이 골골거리며 뒤져갈 때쯤에는 가족인 [[스멘크카레]]와 아케나텐의 Waifu인 [[네페르티티]]가 대신 통치를 했고, 얘네가 다 뒤지자 그 유명한 [[투탕카멘]]이 파라오로 즉위했다. 좆망해버린 종교개혁을 전부 포기하고 다시 테베로 복귀했다. 급식충인 투탕카멘을 무시하고 횡포를 벌이는 신관들이 늘어났다. 투탕카멘이 18살 때 의문사하자 [[아이(파라오)|아이]]가 뒤를 이었다. 아이라는 이름과 다르게 그는 틀딱이었고 얼마 안 가 뒤졌다. 이후 [[낙트민]]이 파라오로 지명되었지만 [[호렘헤브]]의 쿠데타로 쫓겨나고, 호렘헤브가 뒤진 뒤에는 재상인 [[람세스 1세]]가 뒤를 이어 [[이집트 제19왕조]]를 열었다. === [[이집트 제19왕조]] === [[람세스 1세]]는 [[아케나텐]]이 조져놓은 [[이집트 신화]] 다신교를 원상태로 회복시켰고 무너진 왕권도 다시 강화했다. 즉위한 지 1년 뒤 [[세티 1세]]가 즉위했다. 당시 중동 지방의 최강국은 [[히타이트]]였는데, [[기원전 1284년]]부터 히타이트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집트 제국군은 히타이트군을 격파하고 시리아의 카데시를 점령했다. [[기원전 1279년]]에는 세티 1세의 아들인 [[람세스 2세]]가 파라오로 즉위했다. 이때부터 지중해에서는 [[바다 민족]]이 설치기 시작했는데, [[기원전 1277년]] 바다민족이 이집트의 항구를 약탈하자 람세스 2세는 바다민족을 초박살냈다. [[기원전 1275년]]에는 [[베이루트]]까지 진출했다. [[기원전 1274년]] [[5월 12일]], 히타이트와 카데시 지방에서 다시금 전쟁이 발발했다. [[카데시 전투]]는 [[기원전 1258년]]쯤 뚜렷한 승자 없이 흐지부지 끝났으며, 현재 기록이 남은 최초의 평화조약이 체결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기원전 1264년]]부터 [[기원전 1244년]]까지는 이집트 최대의 신전 중 하나인 [[아부심벨 대신전]]을 지었다. [[출애굽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라는 주장도 존재하며, 67년간의 치세를 끝마치고 [[기원전 1213년]]에 람세스 2세가 사망하며 [[메르넵타]]가 즉위했다. [[아멘메네스]], [[세티 2세]], [[십타]], [[투스레트]]가 뒤를 이었지만 이때부터는 왕권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세트나크테]]가 쿠데타를 일으켜 투스레트를 쳐내며 19왕조는 끝났다 === [[이집트 제20왕조]] === [[세트나크테]]가 [[기원전 1189년]]에 세운 왕조다. 그는 3년 만에 죽었으며 [[기원전 1186년]] 이집트 최후의 명군으로 불리는 [[람세스 3세]]가 즉위했다. 이때 바다 민족 해적새끼들이 다시금 대거 침략해왔다. 얘네는 이미 [[미케네 문명]]과 [[히타이트]]를 띨망시킨 전적이 있었다. 하지만 람세스 3세가 이끄는 이집트군에게 막히면서 다시금 이집트가 건재함을 보여줬다. [[기원전 1157년]]에는 역사 기록에 남은 최초의 파업이 일어났다. 이후 화산 폭발과 기근이 일어나면서 이집트는 쇠락기를 밟게 된다. [[기원전 1155년]] 람세스 3세는 암살당했다. 이후 [[람세스 4세]]와 [[람세스 5세]]가 뒤를 이었으나, [[아문]] 신을 섬기는 신관들이 힘을 키웠고 왕권은 떨어지고 있었다. [[기원전 1145년]] [[람세스 6세]] 즉위 이후에는 무덤을 짓는 노동자들도 파라오의 왕권을 만만히 보기 시작했다. [[람세스 7세]], [[람세스 8세]]가 뒤이어 즉위했고, 그 다음 파라오인 [[람세스 9세]] 때는 왕릉 대 도굴사건이 터지면서 왕권이 좆망했음을 똑똑히 보여줬다. [[람세스 10세]] 이후 [[람세스 11세]]가 파라오로 즉위했다. 이미 이집트는 신관들과 총독들이 나눠먹은지 오래였고, [[기원전 1077년]] 람세스 11세가 죽고 나서 왕조가 단절되었다. 람세스 11세의 장례식을 치른 [[스멘데스 1세]]가 [[이집트 제21왕조]]를 창건하며 신왕국 시대는 끝나고, [[이집트 제3중간기]]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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