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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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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 == {{어둠}} === 인사실패 === {{재앙}} {{노답}} {{범죄조직}} {{인용문|외교에는 귀신, 인사에는 등신|동아일보}} 인재 등용은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 최악의 능력을 보여줬는데 대표적으로 신성모와 이기붕이 있다. 신성모는 채병덕이나 김윤근 등 매우 무능한 인물들을 요직에 앉히는데 큰 도움을 줬고 이 때문에 채병덕은 6.25 개전기에 전쟁을 말아먹어서 전선을 낙동강까지 후퇴 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김윤근은 [[국민방위군]] 사건을 보길 바란다. 애초에 전쟁 초기에 우리가 이기고 있다고 이승만한테 구라 친 것도 신성모였다. 이기붕 역시 이승만의 인사 실패의 대표적 인물인데 능력이라고는 ㅈ도 없는 새끼가 권력 욕심만 존나 많았고 이후 이 새끼는 5대 부통령 선거에서 역대급 부정선거를 일으킨 뒤 경찰에게 시민들에게 총을 갈기라는 명령까지 공개적으로 하달했다. 3.15 자체는 이기붕 잘못이지만 결정적으로 이딴 새끼를 2인자로 키워준 이승만도 잘못이 있다. 그리고 이정재 같은 정치 깡패들이 판을 치는데 눈을 감아주기도 했고 [[서북청년회]]로<ref>창설자는 김구</ref> [[제주 4.3 사건|제주도에 피바람을 불게하기도 했다.]]<ref>물론 결정적인 책임과 잘못은 김달삼에게 있다.</ref> 결국 인재 등용을 ㅈ같이 못해서 자기의 몰락에도 일조했다. 그나마 성공적인 사례가 농지개혁법을 만들어 공산화를 막는데 이바지한 [[조봉암]]이 있는데 그마저 사법 살인으로 죽였다. 조병옥또한 이승만의 인사실패중 하나로 경찰간부들을 멋대로 해임시키고 그자리에 자기 측근들만 앉혀놓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승만은 자기에게 절대 충성을 맹세한 사람이라면 능력조차 확인 안하고 요직에 앉혔다는 것이다. === [[반민특위]] 해산 === {{친일파}} {{이미 늦음}} 정부 수립 초기에 친일파들을 족치기 위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일명 '[[반민특위]]'라는 걸 만들었는데 이승만이 이를 해체해버렸다. 당시 북한을 비롯한 공산당을 막는 게 먼저였던 것도 있고 제대로 배운 사람들이 대부분 친일파였다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감안하긴 해야 한다. 그러나 이때 청산하지 못한 게 지금까지 문제가 되고 있고 일제시대 친일파들은 지금은 거의다 자연사했기 때문에 연좌제가 금지인 우리나라에서 후손들을 제대로 처벌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솔직히 엘랑스의 나치 청산도 결국 정권 옹호 목적의 치적쌓기로 이어지긴 했는데 그래도 시도조차 무산되는 시나리오에 비하면 나은 선택인듯. 이후 노무현이 친일파 청산을 시도했으나 [[친일대첩|의도치 않게 팀킬만 하고 끝났다.]] 이승만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때문에 이승만 보고 친일파라고 까는데, 당연한 소리지만 이승만은 친일파와는 거리가 매우 멀다. 애초에 독립운동하던 사람이고, 임정에서 요직도 맡던 인물이고, 6.25 전쟁 중에는 일본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던 양반인데 친일파라고 지껄이는 좌빨 능지 ㅁㅌㅊ? 게다가 이 양반의 반일 하나만큼은 문재앙의 반일선동은 '따위'로 만들어버릴 정도였는데(물론 시대 상황 감안하면 당연하지만) 친일파라고 까는 건 그냥 병신이다. 가끔 가다 이거 때문에 북한은 친일파 청산을 했는데 우리는 못했다며 선동질을 하고 그걸 진지하게 믿는 병신들이 많은데 북괴놈들도 친일파 청산을 한 적 없다. 자세한 건 아래 [[평화선]] 내용 참조. === 런승만 === {{탈주}} {{부끄러운}} {{빠름}} {{구라}} {{인용문|서울 시민 여러분, 안심하고 서울을 지키십시오. 적은 패주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여러분과 함께 서울에 머물 것입니다. 국군의 총반격으로 적은 퇴각 중입니다. 이 기회에 우리 국군은 적을 압록강까지 추격하여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달성하고야 말 것입니다.|이승만}} 탈주 틀의 주인공이다. 이승만이 런승만이라고 까이게 되는 계기다. 6.25 버전으로 재탄생한 [[선조|선좆새끼]]다. 아니 선조보다 못한 것이, 선조는 최소한 이기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개뻥은 안쳤다. 물론 선조는 안 친 게 아니라 못 친 거다. 그때 라디오가 있었나 뭐가 있었나. 정보통신 기술이 더 발전했다면 걔도 한양은 안전합니다!라고 지껄이고 튀었겠지. 이승만은 외국으로 튈 생각은 전혀 안 했다. 선조는 명나라로 빤쓰런치려고 했지만. 구라 치고 튀어서 문제인 거지, 튄다는 행동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러면 이승만이 서울에서 혼자 맞서 싸우다가 포로로 잡히거나 살해당하면 권력 인수는 어떻게 할 거냐? 이승만 이 양반은 튀기는 튀는데, 적어도 팩트를 말하고 튀었어야 했다. [[6.25]] 당시 국군이 승전하여 북진하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킬링벌스를 내뱉고는 혼자 대전으로 빤쓰런을 쳤다. 사실 국군의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목숨이 중요한 건 사실이기에 도망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는 서울 시민들한테 남아있으라고 안심시키고 튀었다는 것이다. 이 일로 지금도 욕처먹는데 당시 국회의원들한테도 온갖 욕을 쳐먹었다고 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서울 수복 후 사과는커녕 오히려 서울 시민들 붙잡고 800명 가량을 이적행위 했다는 혐의 씌우고 사형 때렸다. 또한 하야 후 하와이로 간 것도 런이라고 불린다. 그래도 전시 상황에 튀었던 것보다는 훨씬 낫기 때문에 무지성 억지 밈에 불과하다. 어차피 죽을 날 얼마 안 남았고 대놓고 주작질하다가 좆된 거 스스로 내려놓았으니 하와이에서 쉬어도 되지 않겠나 하고 떠났는데 허정과 박정희에게 귀국이 막혀서 돌아오지 못했다. 그 때문에 사후에 귀국할 수 있었으며 현충원에 안장되었는데, [[박정희]]는 이 소식을 듣고 극대노 했다 카더라. [[아프가니스탄#카불 최후의 날|이후 아프간의 머돟령님이 이걸 보고 배웠는지 런승만의 탈주 방식을 그대로 따라했다.]] 최근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이 이와 반대되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어서 비교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다만 이승만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었기에 한국이 우크라이나 꼴이 안 났다고 재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근데 이승만이 그냥 국민 버리고 튀었다고 하는건 아니다. 안튀었으면 3일만에 서울 따이고 항복해야했음 진짜로 국민 버리고 튄건 아프간 대통령이다. === 보도연맹 사건 === {{인간도살자}} 전쟁 중 [[보도연맹]]에 가입되어있는 사람들을 대거 학살한 사건. 아래의 국민방위군 사건과 함께 최악의 흑역사이자 학살 사건이다. 대충 보도연맹이라는, 좌익에서 전향한 사람들이 만든 집단이 있었는데 이들이 북한 정권에 호응을 하여 사람들을 대거 죽인 사건이다. 하지만 진짜로 북괴에게 호응을 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이 무고한 사람들이었는데 그냥 다 죽여버렸다. 확인된 사망자만 4934명이고 추정 사망자는 20~30만 명이다. === [[국민방위군]] 사건 === {{원흉}} {{노답}} 런승만 휘하 신성모가 일으킨 대사건. 전쟁에 필요하다고 징집한 것은 좋았지만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병력을 이동하는 과정에서 터졌다. 그 당시 도로는 군사 작전을 진행 중이란 이유로 통행을 금지했기 때문에 작은 길이나 산길로 이동해야 했고 그 당시 한겨울이었음에도 병사들에게 겨울 피복은커녕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결국 가는 도중에 동사로 얼어 죽거나 굶어서 죽는 사람이 속출했고 집합 장소에 모였을 땐 인원의 절반만이 도착했으나 그마저도 얼마 안 있어서 다 죽어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국회에서 조사하기로는 약 72억 8164억의 국민방위군 사령부의 간부들이 맘대로 착복했다고 밝혀졌다. 사실 간부들마저도 굶을 수준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횡령을 하도록 환경을 제공한 신성모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평가 받는다. 이후 신성모 국방부 장관과 김윤근 국민방위군사령관 등이 경질되어서 처벌 받았고 그 휘하에 윤익헌, 박기환, 강석한, 박창원 등도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최고 책임자인 신성모는 왜 사형 아니고 고작 경질이냐. 전쟁 중에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죄목이었다. 국방부는 이 사건으로 약 1234명이 사망했다고 밝혔으나 낙오한 38만 명의 행방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답변했고 전체 인원의 20%는 사망, 나머지 80%도 노동 불가 상태라고 결론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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