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유랴쿠 덴노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생애== 즉위 전 아버지 [[안코 천황]]이 암살당하자, 그는 아버지를 죽인 인물들을 찾기 시작하였는데, 맨 먼저 [[인교 천황]]의 4황자인 야쓰리노시로히코({{Lang|ja|八釣白彦}}) 황자를 범인으로 의심하여 죽인다. 그러나 그는 안코 천황을 죽인 사람이 아니었고, 이어 다시 사람을 찾던 웅략은 [[인교 천황]]의 3황자인 사카이노쿠로히코({{Lang|ja|坂合黒彦}})황자와 마요와 왕({{Lang|ja|眉輪王}})을 범인으로 의심하여 그 둘을 죽이려고 한다. 사카인쿠로히코와 마요와는 이를 알아채고 호족인 가쓰라기노 쓰부라({{Lang|ja|葛城円}})의 집에 숨으나, 웅략은 귀찮았는지 그냥 가쓰라기의 집에 불을 질러서 전부 죽여버린다. 이후 정적인 이치노헤노오시와({{Lang|ja|市辺押磐}})황자와 미마({{Lang|ja|御馬}})황자도 죽인 뒤에 곧바로 천황에 즉위한다. 이후 헤구리노마토리({{Lang|ja|平群真鳥}})를 대신({{Lang|ja|大臣}})으로, 오토모노 무로야({{Lang|ja|大伴室屋}})와 모노노베노 메({{Lang|ja|物部目}})를 대련({{Lang|ja|大連}}/군을 관리하는 관직)으로 임명하고 황권을 강화하기 시작한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사람들을 엄청나게 많이 죽인다. 황권을 강화한 웅략은 주변 국가들을 하나하나 자신의 세력으로 복속시키기 시작하였으며, 길비국이라는 매우 웅략 최대의 적국 역시 복속시키는데 성공한다. 이후 [[유송]]({{Lang|zh|刘宋}})으로부터 아야하토리({{Lang|ja|漢織}}), 구레하토리({{Lang|ja|吳織}})라는 사람을 등용하여 일본의 양잠업을 발달시켰다고 한다. ===한반도 정벌 및 임나일본부=== {{역사왜곡}} {{개소리}} 일본서기에서는 유랴쿠 천황이 어떻게 한반도 국가들을 박살내고 다니는 꿈을 꿨는지 아주 자세하게 개소리를 지껄여놓은 상태다. 그는 즉위 8년차에 [[고구려]]를 부수고, 이후 [[신라]]를 치려고 하였으나 기노 고유미({{Lang|ja|紀小弓}})가 전사하여 실패하였다. 근데 삼국사기에는 이 때 실제로 일본이 신라를 공격한 것은 맞으나 성 몇개만 함락시키고 결국 복속에 실패하였다고 적혀있다. 또한 고구려가 백제를 한강 유역에서 몰아낸 시기, 고구려군이 백제군을 전멸시키지 않은 이유가 '''백제군을 다 죽이면 천황폐하께서 노여움을 사 고구려를 또 조질 것이다''' 라는 아주 대단한 개소리를 써 놓은 상태이다. 그리고 한강에서 쫒겨난 [[백제]]에게 구마나리(久麻那利/현 [[공주시]])를 주었다고 했는데, 이건 빼박 임나일본부 이야기다. 백제 삼근왕(三斤王)이 붕어하였을 시기, 당시 왜에 인질로 있던 [[부여곤지]](扶餘昆支)의 둘째 아들인 부여말다(扶餘末多)에게 축자국의 병사를 호위에 붙여서 귀국을 도왔을 뿐 아니라 그 병사를 이끌었던 아치노오미({{Lang|ja|安致臣}})와 우마카히노오미({{Lang|ja|馬飼臣}}) 등이 고구려를 토벌했다고 전하고 있는데, 저 때 고구려의 왕은 [[장수왕]]이라는 천재 군략가가 왕으로 있었던 시기인데다가 토벌은 커녕 침공을 받았다는 이야기 자체가 일본서기 외에는 적혀있지 않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