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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삼척 무장 공비 침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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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1960년 후반은 [[데탕트]]의 싹이 트이기 시작했던 시점으로, 이때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슬슬 발을 떼기 시작하면서 마무리하고 있었다. 냉전의 긴장이 서서히 완화되어가던 시점에서 북조선은 한반도의 긴장 상황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안 그러면 중국과 소련이 지원을 잘 안 해줬을 테니까. 실제로 일성이가 이 사건으로부터 약 한 달 전에는 북한 건국 20주년 기념사를 통해서, 남조선에서의 혁명은 주권을 쟁취하기 위함이며 여기에 사용될 수단으로는 무력만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등, 남조선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관심을 건넸다. 김일성이 게릴라 전술을 광적으로 집착한 것도 있었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게릴라 전술은 잠입, 문화 적응, 교묘한 선동, 평화적 접근 등이 기본인데 이따위로 했던 걸로 봐서는 김일성이 뇌가 없다고 봐야 할 듯하다. 김일성 본인피셜로는 독립운동 할 시절부터 게릴라 전술을 많이 펼쳤다고 하지만 이걸 봐서는 게릴라 전술을 펼쳐 본 경험이 전무하다고 보는 게 좋을 듯한데... 애초에 이 새끼는 독립운동했다고 구라치는 새끼다. 무장 공비들이 위조지폐를 지참하고 있었다는 정황을 봐서 남한의 경제 마비를 통해서 경제 격차를 줄이기 위함이라는, 다소 찌질한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는 분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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