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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의 진 == 문제는 화의 내용이었다. 오사카 성 외측의 해자를 메우고, 니노마루와 산노마루의 성벽을 허물기로 하는데 오사카 성 수뇌부는 천천히 시간을 끌것을 예상했겠지만 너구리 이에야스는 7만 병력을 투입해 한 달만에 해자를 전부 메우고 성벽을 철거한다. 도요토미 측이 해자를 다시 파자 이를 구실삼아 전쟁이 제기되니 이게 여름의 진이다. 여름의 진은 겨울의 진과는 달리 도요토미 측에 압도적으로 불리했다. 난공불락에 가까웠던 오사카 성은 외측 해자와 사나다마루, 외벽을 잃었기 때문에 벌거벗은 사람과 다를 게 없었다. 많은 백성들과 로닌들이 오사카 성에서 철수했고 로닌들 중 남은 자들은 5만 5천명이었다. 이에 오인중은 히데요리의 친정을 주문했으나(군주가 직접 나와 싸운다면 사기도 올릴 수 있고 다른 다이묘들의 이반을 유도할 수도 있다. 거기에 히데요리 측에 병력이 집중되는 틈을 노려 본진 털기도 가능하다) 역시나 씹혔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사카의 외성이었던 후시미 성을 기습공격하자는 제안을 했으나 이것도 씹혔다. (....) 유키무라는 별 수 없이 겨울의 진 때 이에야스가 본진으로 썼던 차우스산(茶臼山)의 요새를 재활용해 제2의 사나다마루를 만들었다. 모리 카츠나가, 고토 마타베에와 함꼐 사나다마루에 이에야사의 주력 병력을 묶어두는 동안 본진을 기습공격하는 작전이었는데 고토 마타베에가 오던 도중 이에야스의 병력과 마주쳐 먼저 교전하게 되고 전사하면서 틀어진다. 유키무라는 별 수 없이 차우스산에서 나오는데 기마철포부대를 이끌고 있던 다테 마사무네와 싸우게 된다. 이 때 유키무라는 총에 맞기 않도록 병사들을 바닥에 엎드리게 했다가 적이 접근하면 창으로 찌르는 야리부스마(槍衾)작전으로 기마철포대를 격퇴한다. 한편 나머지 오인중인 쵸소카베 모리치카와 키무라 시게나리는 유키무라를 지원하기 위해 오던 중 야오, 와카에 인근에서 도도 다카토라, 이이 나오타카의 부대와 싸움을 벌이게 된다.(야오-와카에 전투) 이 때 모리치카와 시게나리는 도도 군을 거의 전멸 직전까지 몰아넣었지만 이이 나오타카의 부대가 원군으로 도착하는 바람에 중과부적으로 패퇴하여 모리치카는 패주하고 시게나리는 전사했다. 유키무라와 모리 카츠나가는 이에야스를 죽여서 한 방 역전을 노리기로 하고 이에야스의 본진을 급습한다. 카츠나가 측이 적 병력을 상대하는 동안 유키무라의 병력이 본진을 3번 급습했는데 이에야스의 흑역사였던 미타카가하라 전투 이후 이에야스이 최대 위기라는 평이 있을 정도로 매서운 돌격이었지만 병력 수가 딸려 결국은 실패한다. 유키무라는 부상자 치료와 휴식을 위해 병력을 텐노지 인근으로 물렸는데, 그 때 기습을 받아 전사한다. 마침내 오사카 성의 성문이 뚫렸고 치열한 시가전 끝에 오사카 성은 함락되고 히데요리와 요도도노는 자결했다. (모리 카츠나가는 이 때 가이샤쿠를 한 후 자결) 이렇게 오사카의 진은 이에야스 측의 승리로 종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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